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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계엄·탄핵 이념갈등에 30조 날아갔다…국민 1인당 60만원

중앙일보

2025.12.03 12:00 2025.12.03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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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찬반 집회 당시 모습. 서울 종로구 경복궁 동십자각 인근에서 열린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 주최 범시민 대행진(왼쪽). 오른쪽은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열린 대한민국바로세우기국민운동본부 주최 '대통령 탄핵 반대 자유민주주의 수호 광화문 국민혁명대회'. 연합뉴스

지난해 12·3 비상계엄 사태부터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 때까지 5개월간 이념·진영 갈등 비용이 약 30조원에 육박한 것으로 3일 나타났다. 이 기간 이념 갈등으로 국민 한 명당 약 59만5500원을 지불한 셈이다.


중앙일보가 단국대 분쟁해결연구센터에 의뢰한 ‘12·3 비상계엄 및 탄핵 갈등비용 분석’ 연구에 따르면,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난해 12월 3일부터 윤 전 대통령이 탄핵당한 올해 4월 4일까지 발생한 공공 갈등 비용은 약 48조3673억원 수준이다. 공공 갈등 유형은 이념, 노동, 환경, 지역, 계층, 교육 등 총 여섯 개로 분류했다.


연구센터는 ▶연인원 500명 이상의 집단적 행동 조직 ▶공중 접근성이 자유로운 장소에서 최소 100명 이상이 1회 이상 집단적 행동 조직 ▶상충된 쟁점을 두고 대립하는 행위 주체들의 상호작용이 7일 이상 지속 등 3개 조건에 모두 부합한 경우를 공공 갈등으로 판단해 비용을 추계했다. 비용은 1일 참여자 수·1일 법정 근로시간·최저시급·갈등 지속기간을 모두 곱해 계산했다.
김주원 기자
유형별로 보면 가장 큰 공공 갈등은 ‘탄핵 찬반’ 시위로 빚어진 이념 갈등이었다. 이념 갈등 비용은 약 30조7796억원으로 전체의 63.5%를 차지했다. 이어 노동 갈등(15조4126억원·31.82%), 환경 갈등(1조1174억원·2.31%), 교육 갈등(1조577억원·2.18%) 등 순이었다.

이념 갈등은 발생 건수 대비 평균 비용이 가장 많이 들어 심각한 사회적 비용을 유발한 것으로 조사됐다. 연구에 따르면 이념 갈등은 12번 발생해 건당 약 2조5649억원의 비용을 치렀다. 23번 발생해 건당 약 6701억원의 비용이 발생한 노동 갈등의 약 4배 수준이다.


계엄 직전 해 같은 기간 이념 갈등 비용과 비교하면 차이는 더 극명했다. 연구센터는 2023년 12월 3일~2024년 4월 4일까지 약 2억2133만원의 이념 갈등 비용이 발생했다고 추산했다. 여기에 약 13만9100배를 곱해야 비상계엄·탄핵 기간 치른 이념 갈등 비용에 도달한다.

지난해 12월 3일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회에 투입된 군이 본회의장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연합뉴스
계엄· 탄핵 이슈가 모든 사회 문제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면서 이념 갈등이 극단적으로 늘어난 현상도 문제란 분석이 나온다. 직전 해 같은 기간 각각 약 1조266억원, 2225억원이었던 지역의 갈등 비용과 계층 간 갈등 비용은 계엄·탄핵 기간 약 429억, 197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김강민 단국대 분쟁해결연구센터 교수는 “이념 갈등은 이해관계자 간 명확한 결론을 내리기 어렵기 때문에 다른 갈등보다 지속기간이 길고 해소가 어렵다”며 “평범한 공공 갈등도 이념화하는 순간 갈등 관리 시스템이 잘 작동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별도 연구에서 ‘갈등이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는가’를 묻는 항목에 2008년 광우병 파동과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은 긍정 답변이 많았지만 이번 계엄은 그렇지 않았다”며 “그만큼 중도층이나 평범한 시민의 피로도가 높고 사회 발전에 대한 기여는 낮은 사건이었단 의미”라고 덧붙였다.




“극한 갈등, 어떻게 승화할 지가 과제”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일인 지난 4월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인근 거리 통행이 통제되고 있다. 공동취재단
이번 연구로 추산한 계엄 이후 갈등 비용은 빙산의 일각이란 시각도 있다. 극한 갈등에 따른 유·무형의 경제적 피해와 사회적 상흔은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집회·시위 장기간 이어진 지역 상인들은 직접적인 타격을 받았다. 헌법재판소가 있는 안국역 인근 치킨집 사장 조회자(70)씨는 “월세와 인건비 등 고정비가 매달 1000만원은 나가는데 ‘진공 구역’으로 설정돼 손님을 거의 못 받았다”고 했다.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석광민(42)씨도 “평소 1000건 정도였던 예약이 지난 1~2월엔 200팀가량 줄었다”고 말했다.

서울 관악구에 사는 직장인 김모(34)씨는 “계엄을 옹호하고 탄핵에 반대하는 아버지와 심하게 다툰 뒤로 아직 관계를 회복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한 동남아 국가에 파견된 정부 관계자는 “반(半) 독재국가의 국민들한테 한국 민주주의를 걱정하는 소리를 들어서 멋쩍을 때가 많았다”고 했다.

의대 증원 등 사회적 논의로 해소됐어야 할 수많은 의제가 계엄 여파로 묻히거나 흐지부지된 것도 큰 손해라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호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번 계엄은 이성이 아닌 감정이 과다한, 불필요한 진영 갈등을 심화시켰단 점에서 숫자로 환산할 수 없는 중장기적 파급 효과를 미쳤다”고 말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갈등을 무조건 부정적으로 볼 수 없는 만큼 어떻게 승화할 지가 향후 과제라고 강조했다. 장승민 국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앞으로 몇 년은 극한 갈등을 관리 가능한 수준에서 가져가야 할 결정적 시기”라며 “협력을 통한 정치·사회 구조 개혁을 이룰 충분한 자원이 있는 집권 세력의 갈등 극복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영근.오소영.곽주영.이규림([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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