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닷없이 한국 사회를 강타한 12·3 비상계엄 사태가 1년을 맞았다. 그 사이 여야는 자리 바꿈을 했고, “내란 정당”으로 내몰린 국민의힘은 더불어민주당으로부터 정당 해산 위협까지 받고 있다. 내년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보수 궤멸’ 위기론까지 거론되는 상황이지만 국민의힘은 계엄 사과를 놓고 분열하는 등 여전히 ‘계엄의 강’을 표류하고 있다. 중앙일보는 국민의힘의 중량급 인사인 나경원 의원과 박형준 부산시장에게 보수 재건을 위한 길을 물었다.
국민의힘에서 계엄 사태에 대한 대국민 사과를 처음 제언한 박형준 부산시장은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보수가 가장 큰 위기에 직면한 상황”이라며 “진정성 있는 사과를 토대로 계엄 이후 무너졌던 보수의 가치에 대한 재건을 시작해야 할 때”라고 했다. 박 시장은 “삼권 분립을 파괴하는 더불어민주당의 행태를 제대로 비판하기 위해 계엄이란 큰 얼룩을 지워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언론인과 교수를 거쳐 국회의원과 청와대 정무수석, 재선 부산시장을 지낸 그는 보수 진영에서 합리적 온건파로 통한다. 그는 “자유·민주·공화라는 보수의 원칙과 가치를 새롭게 하는 선언이 필요하다”며 “계엄 1년을 맞아 합리적 보수와 중도를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우리 당의 비전을 제시하는 게 중요해졌다”고 했다. 박 시장은 내년 6·3 지방 선거를 앞두고 갈라진 보수 진영에 대해 “용광로처럼 아우르지 못하면 선거에서 이기기 굉장히 어렵다”고도 했다. 중앙일보는 지난달 26일 박 시장을 부산시청 집무실에서 1시간 동안 만나 물었고, 3일 전화 인터뷰도 진행했다.
Q : 1년 전 광역단체장 중 가장 먼저 계엄 해제를 요구했다.
A : “민주당이 입법 독재와 횡포를 부린 것은 사실이나, 계엄을 선포할 정도로 국가적 위기는 아니었다. 계엄은 대통령이 쓸 수 있는 가장 최악의 수단이다. 후폭풍이 걱정됐다.”
Q : 이번엔 앞장서 계엄 사과를 주장했다.
A : “국민이 준 정권을 지키지 못한 죄송함이 컸다. 무엇보다 무너진 보수를 재건하려면 사과할 용기가 있어야 한다. 누구의 편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다.”
Q : 민주당의 ‘내란 프레임’에 걸려드는 것이란 보수 내부의 주장도 있다.
A : “침묵할수록 국민은 계엄을 옹호한다고 생각한다. 내란 프레임이 더욱 세게 작동하는 것이다. 우리 손이 깨끗해야 비판도 할 수 있다.”
Q : 보수를 어떻게 재건해야 하나.
A : “자유·민주·공화라는 보수의 원칙과 가치를 표방하고 확장하겠다는 선언을 해야 한다. 당이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Q : 계엄 이후 보수 진영의 분열은 더 커졌다.
A : “당장 내년에 선거를 앞두고 있다. 유연성을 발휘하지 않으면 선거에서 진다. 공동의 정치적 상대를 향해선 공동 전선을 펴야 한다. 서로 생각이 맞지 않더라도 이해관계를 조정하면 된다.”
Q : 개혁신당과는 즉시 연대해야 한다는 건가.
A : “같은 뿌리였다. 늦어도 내년 1월부터는 연대를 시작해야 한다. 용광로처럼 끌어안아야 한다.”
Q :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관계는 어떻게 하나.
A : “이미 당 바깥의 사람이다. 계엄에 대해 진정성 있게 잘못을 인정하는 순간, 윤 전 대통령과의 관계 문제도 포함된 거다. ‘윤 어게인’이라는 건 말이 안 된다.”
Q : 민주당도 강성으로 가지 않나.
A : “협치는 집권당의 포용력이 있어야 가능하다. 원칙과 법치를 지키지 않고 완장이나 선동으로 국정을 운영한다면 야당은 싸울 수밖에 없다. 추경호 의원의 영장이 기각됐듯 ‘내란 몰이’에 강하게 투쟁해야 한다.”
Q : 중도 확장은 어떻게 해야 하나.
A : “반반 갈라 싸우면 중도가 따라온다는 생각은 오산이다. 전체를 아우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누구는 ‘중도는 없다’고 하지만 일정한 현안마다 상황 판단을 하거나, 양당의 이념을 좋아하지 않는 부류가 중도다. 스윙 보터도 있다. 이들의 특성을 잘 이해하고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Q : 장동혁 대표 등 국민의힘 지도부는 ‘선(先) 지지층 결집-후(後) 중도 확장’ 전략인데.
A : “정치는 일종의 종합 예술이다. 순서대로 딱딱딱 되는 게 아니다. 장르를 구별해 단막극식으로 가려고 해선 안 된다. 아우르기 전략, 가치 재정립 등이 다 같이 가야 한다.”
Q : 20·30세대의 중요성을 강조하는데.
A : “40·50세대는 IMF 경제위기 등을 함께 겪으며 동조 의식이 큰 세대다. 반면 2030세대는 개인주의가 강하다. 우리 당이 자유·민주·공화의 가치를 정확하게 내걸면 지지층이 될 가능성이 굉장히 크다. 당내 청년당을 만들어 독자적 예산권과 선출권, 운영권을 주면서 활성화해야 한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청년을 과감하게 공천해야 한다.”
중도 확장을 강조하는 박 시장과 달리 국민의힘 지도부는 당심을 강조하고 있다. 지방선거 후보 경선 때 현재 50%인 당원 투표 비중을 70%로 늘리는 방안도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이러한 경선 규칙 변경을 놓고 야권에선 “오세훈 서울시장과 박 시장을 겨냥한 시도”란 분석도 나온다. 이에 대해 박 시장은 “당원이 공천권을 행사하는 게 원칙적으로 맞다”면서도 “지금의 당원 구조는 국민 눈높이와 안 맞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 일부 지역이나 일부 성향의 사람이 과표집돼 있다”고 했다.
Q : 2021년 4·7 재·보궐선거 때도 국민의힘은 소수 야당이었지만 서울·부산시장을 이겼다.
A : “당시엔 보수가 하나의 그릇 안에 담겼다. 반대로 민주당은 부산에서 진보당이 후보를 내며 분열했다.”
Q : 민주당 부산시장 후보로 유력한 전재수 해양수산부 장관과 오차범위 내 접전이란 여론조사가 잇따르고 있다.
A : “최근 민주당이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일을 하면서 여권에 반대하는 여론이 견고해지고 있다. 진영을 아우르고, 민심을 거스르지 않는다면 불리한 싸움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