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오후 1시, 서울 성북구 동덕여대 캠퍼스에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쉴 새 없이 울려 퍼졌다. 대자보를 붙이는 재학생들이 청테이프를 뜯는 소리였다. 남녀공학 전환에 대한 학교 측의 결정이 발표되며 재학생들의 반발이 다시 거세지자, 캠퍼스 내부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맴돌았다.
김명애 동덕여대 총장은 이날 “현재 재학생이 졸업하는 2029년부터 남녀공학으로 전환할 것”이라며 “학교 공학전환공론화위원회의 권고를 수용한다”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공론화위는 지난 2일 학교 재정 위기 극복을 위해 남녀 공학 전환을 추진하라는 내용의 권고안을 발표한 바 있다. 해당 권고안은 재정악화, 대학 정체성 재정립 등 내부적인 문제와 학령인구 감소,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한 대학 발전 필요성 등 외부적 문제를 위한 전략이 필요하다는 많은 구성원들의 공감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학생들은 학교 측 결정에 격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총학생회는 입장문을 내고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학생들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돼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끝까지 노력하며 대학본부에 요구하고 싸우겠다”고 밝혔다. 재학생연합 또한 “대학본부는 학생들의 우려와 반대를 충분히 수렴하지 않은 채, 공학 전환이라는 중차대한 결정을 일방적으로 진행하려 하고 있다”며 “학내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단호히 목소리를 낼 것”이라고 발표했다.
교내 곳곳에는 ‘래커칠’의 흔적 위로, 학생들의 목소리를 수용하라고 요구하는 대자보가 새롭게 붙고 있었다. 학생들은 대자보 위에 “여성들에게는 여전히 여대가 필요하다” “여대의 존재 의의를 잊지 말라”는 내용의 포스트잇을 붙이는 모습이었다. 교내 곳곳에는 건물 벽과 기둥, 바닥, 계단을 가리지 않고 “소멸할지언정 개방하지 않는다” “공학 반대” “동덕대가 웬 말이냐”는 글자가 여전히 커다랗게 남아 있었다.
대자보를 붙이던 한 재학생은 “공학 전환에 대한 의견 수렴을 하는 학교의 과정이 상당히 비민주적이었다”며 “학교의 장기적 비전을 생각했을 때, 과연 공학 전환이 의미 있는 의사결정인지 강한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하던 3학년 학생은 “지난 학생 총회 당시 참여한 학생 2000여명 중 90%가 공학 전환에 반대했는데, 학교 측에서는 학생의 의견을 묵살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현실적으로 교내에 남학생을 수용할 시설도 없는데, 기존 재학생에 대한 복지도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더더욱 기존 학생에 대한 보호가 축소되는 상황이 오지 않을지 우려된다”고 토로했다.
한편 학교 측은 지난해 학생들의 학교 점검 농성 및 ‘래커칠 시위’를 떠올리며 긴장을 더하는 모습이었다. 지난달 26일부터는 본관에 ‘출입 제한 공고문’을 붙이고 사설 경비 업체를 투입해 학생 출입을 제한했다. 학생들이 교내 곳곳에 대자보를 부착하자, 지난 2일부터는 인문관 게시판에만 대자보를 붙일 수 있도록 공지했다.
오는 4일 예정된 래커 제거 행사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더해졌다. 정문에는 “래커 시위 복구 비용으로 제시된 54억원의 산정 근거도 밝히지 않은 상황에서, 해당 행사를 추진하는 것은 학우들 신원을 미디어에 노출시키겠다는 의도로밖에 읽히지 않는다”며 “해당 행사에 학생들을 동원하지 말라”는 내용의 대자보가 붙기도 했다.
동덕여대 민주동문회 또한 이날 오후 3시 한국생산성본부의 공학 전환 분석 결과 발표회가 진행되던 100주년 기념관 앞에서 반대 시위를 열었다. 동문회원 20여명은 “재정난을 이유로 공학으로 전환하는 것은 여성 교육의 역사와 진정성을 배반하는 것”이라며 “김명애 총장의 공학 전환 날치기 승인을 규탄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만 지난해처럼 갈등 비용이 커져서는 안 된다며 학교와 학생 간의 적극적인 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난해 래커칠 등으로 인한 피해 금액은 최대 54억원으로 추산된다. 지난해 학교 점거 시위에 참여한 22명은 공동재물손괴 및 공동건조물침입 등의 혐의로 고소돼 현재 검찰에 송치된 상태다.
허창덕 영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학교와 학생 양측이 서로 신뢰를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학교 측과 학생 측 대표가 신뢰를 우선 회복하고, 대화에 나서는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학교 외부에서도 개입을 더하고 있는데, 지난해와 같은 상황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내부 구성 주체들이 나서서 갈등 상황을 해결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