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서울 시청역 역주행 인도 돌진 사고로 9명을 숨지게 한 운전자가 금고 5년을 확정받았다.
대법원 2부(주심 권영준 대법관)는 4일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과실치사상) 혐의로 기소된 운전자 차모(69)씨 사건에서 금고 5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금고란 수형자를 교도소에 가두어 두기만 하고 노역은 시키지 않는 형벌이다. 징역형이 아닌 금고형이 선고된 건 교통사고처리특례법에서 ‘운전자가 교통사고로 죄를 범한 경우 5년 이하의 금고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기 때문이다.
앞서 차씨는 지난해 7월 1일 오후 9시 30분쯤 서울 시청역 인근에서 제네시스 G80차량을 몰고 역주행하다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인도로 돌진해 사상자를 낸 혐의를 받는다. 이 사고로 9명이 숨지고 5명이 다쳤다. 이후 차씨는 급발진 사고 가능성을 주장했지만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정밀 감정 결과 운전자 과실로 판단했다.
1심에서는 차씨에게 금고 7년 6개월을 선고했다. 검찰의 구형을 그대로 받아들인 형량으로, 가중처벌 인정 시 법정 상한형에 해당한다. 재판부는 차씨의 범행이 ‘실체적 경합’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가중처벌을 적용했다. 실체적 경합이란 한 사람이 여러 개의 행위로 여러 죄를 저지른 것을 의미한다. 재판부는 각각의 피해자들을 들이받아 다치게 한 행동과 BMW, 소나타 등 차량을 들이받아 운전자를 다치게 한 행동을 각각 별개의 행위에 의한 범죄라고 판단했다.
2심 재판부는 이같은 1심 판결을 파기하고 차씨에게 금고 5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차씨의 범죄에는 ‘상상적 경합’을 적용해야 하므로 ‘실체적 경합’을 적용한 1심 판단은 잘못됐다고 봤다. 상상적 경합은 하나의 행위가 여러 개의 범죄를 구성하는 경우를 뜻한다.
재판부는 “이 사건 사고는 과속페달을 제동페달로 오인해서 밟은 업무상 과실이 주된 원인”이라며 “피고인 차량이 인도를 침범해서 보행자들을 사망, 상해에 이르게 한 것과 승용차를 연쇄 충돌해서 운전자를 상해에 이르게 한 것은 동일한 행위의 결과가 다르게 나타난 것에 불과하다”고 했다. 보행자들을 들이받고 난 뒤 주변 차량을 들이받기까지 소요된 시간이 2.4초에 불과한 점 등이 고려됐다. 차씨는 항소심에서도 급발진 주장을 이어갔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법원은 “법이 허용하는 처단형의 상한형을 선고하기로 한다”며 차씨에게 금고 5년을 선고했다. 현행법엔 다수의 생명을 침해한 범죄에 대해 가중처벌 조항이 없다. 검찰은 이 사건을 계기로 교통사고처리특례법에 다중 인명 피해 범죄에 대한 가중처벌 조항을 도입돼야 한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대법원이 상고를 기각하며 차씨의 형이 확정됐다. 이에 따라 사고의 원인을 “과속페달을 제동페달로 오인해서 밟았다”고 본 원심 판단도 인정됐다. 대법원은 “원심의 유죄 판단에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은 채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하여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피고인의 업무상 과실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