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핑을 ‘경기력 향상을 위한 불법 약물 복용’ 정도로 생각하면 안 된다. 브레인도핑·혈액도핑·유전자도핑 등 스포츠의 공정성을 위협하는 도핑의 진화는 상상을 초월한다.
지난 1일 부산에서 열린 세계도핑방지기구(WADA) 총회 개막식에서 비톨드 반카 회장이 “도핑이 더는 개인의 일탈이 아니다. 고도화한 화학과 정교한 기술, 비밀 실험실이 시스템처럼 연계돼 있다”며 이에 맞서기 위한 “과학 연구에 대한 대담한 투자”를 강조했다.
아시안게임에 나서는 E스포츠나 바둑 선수도 도핑검사 대상이다. 반응속도 증가, 피로감 감소를 꾀하는 ADHD 치료제와 각성제는 대부분 금지약물이다. 브레인도핑은 전자기장으로 뇌의 특정 영역을 활성화해 경기력을 끌어올리는 방식으로도 발전했다. 양궁, 사격 등에 적용할 수 있는 이 기술은 일반적 혈액, 소변 검사에 적발되지 않는다. WADA의 금지 항목은 아니지만, 스포츠 윤리 차원에서 논쟁거리다.
혈액도핑은 고전적인 수법이다. 고지대에서 산소포화도를 높인 자신의 피를 채혈했다가 경기 직전 수혈하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산소 공급이 원활해지면서 지구력이 강화돼 육상, 사이클에서 기록 향상에 도움을 준다. 혈액도핑은 꾸준한 추적 관찰로 잡아낸다. 백병규 한국도핑방지위원회(KADA) 사업본부장은 “올림픽 메달권인 국내 집중 관리 선수 200여명은 연간 네 차례 불시에 도핑 검사를 받을 수 있어 늘 위치 정보를 보고한다”고 설명했다.
유전자도핑은 WADA가 가장 위험하다고 경고하는 차세대 도핑이다. ‘치료 목적이 아닌 유전자·세포를 조작해 경기력을 향상하는 모든 방법’을 WADA는 유전자도핑으로 정의한다. 근육 성장 유전자를 주입해 근육량을 늘리고 세포를 조작한 뒤 다시 주입해 운동 능력을 향상하는 행위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환경 오염으로 인한 의도치 않은 도핑도 논란거리다. 지난 4월 노르웨이 여자 축구선수 8명에게서 각성 효과가 있는 금지 약물이 검출됐다. 3개월여의 조사 끝에 경기장 인조잔디가 원인으로 드러났다. 약물이 검출되면 무조건 선수에게 책임을 묻던 기존 규칙을 좀 더 정교하게 바꿔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WADA는 “다만 오염 핑계를 대고 도핑을 시도할 수 있어 걱정된다”고 우려한다.
5일 폐막하는 이번 총회에서 WADA는 2027~32년 적용할 새 도핑방지 규약을 정한다. 또 스포츠 공정성과 선수 보호, 도핑방지 국제협력 강화를 위한 ‘부산선언’을 발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