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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나라서 ‘김백화’ 될래요

중앙일보

2025.12.04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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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할머니를 둔 레베카는 2021~22시즌을 다 마치지 못한 채 한국을 떠났지만, 올 시즌 흥국생명 유니폼을 입고 V리그로 돌아와 맹활약하고 있다. [연합뉴스]
프로배구 여자부 흥국생명의 아포짓 스파이커 레베카 라셈(28·미국)은 한국과의 인연이 각별한 선수다. 한국인 할머니와 주한미군 할아버지가 한국에서 만나 지금의 레베카 가족 등 일가를 이뤘다. 레베카는 미국에서 태어나 자랐고 배구를 시작했다. 선수로서 이탈리아를 거쳐 지난 2021년 4월 한국배구연맹(KOVO)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에서 IBK기업은행에 뽑혔다. 마침내 할머니의 나라에서 뛰게 됐다. 하지만 V리그가 만만치는 않았다. 주전 공격수로 기대를 모았지만 제 기량을 보여주지 못한 레베카는 한 시즌도 채우지 못하고 방출됐다.

눈물을 흘리며 한국을 떠난 레베카에게 다시 기회가 주어진 계기는 지난해 5월 튀르키예에서 열린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였다. 한층 발전한 기량과 바른 품성을 높게 평가한 흥국생명이 레베카를 다시 호명했다. 등록명을 IBK기업은행 시절의 라셈에서 레베카로 바꾼 뒤 날개를 활짝 폈다. 레베카는 지난 3일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한국도로공사와의 홈경기에서 31점을 기록하며 팀의 세트 스코어 3-2(21-25, 18-25, 25-19, 25-19, 18-16) 대역전승을 이끌었다. 세트스코어 0-2까지 밀렸던 흥국생명은 레베카가 11득점으로 활약한 3세트를 25-19로 잡은 뒤 4, 5세트도 연달아 따내 역전승했다.

레베카는 경기가 끝난 뒤 “오늘의 역전승으로 자신감을 얻었다. 특히 한국도로공사의 11연승을 저지해서 더욱 의미가 있다. 누구든 이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며 웃었다. 이어 “한국에서 생활하다 보면 내게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 것을 더 잘 느낄 수 있다. 앞으로도 즐겁게 선수 생활을 이어가고 싶다”고 덧붙였다.

레베카는 팬들이 ‘김백화’라는 한국 이름을 담아 제작해 준 주민등록증을 받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사진 흥국생명 인스타그램]
특히 이날 귀화와 관련한 레베카의 발언이 관심을 모았다. 현재 미국 국적자이지만, 특별귀화 제도를 통해 한국 국적을 취득한 뒤 한국 국가대표로도 활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한국 무대로 돌아오며 한 차례 귀화 의사를 밝혔다. 그는 “태극마크를 달고 2028 로스앤젤레스(LA)올림픽에 나간다면 매우 영광스러울 거다. 귀화는 전부터 관심사였고 아버지와도 이야기를 나눴다”고 전했다. 최근 팬 투표를 통해 레베카에게 한국 이름을 지어주는 이벤트가 진행됐다. 이벤트를 통해 결정된 한국 이름이 영어 이름과도 비슷한 발음의 ‘흰 꽃’이라는 뜻의 ‘김백화(金白花)’였다.

레베카가 일방적으로 원한다고 태극마크를 달 수 있는 건 아니다. 우선 대한배구협회의 추천과 대한체육회 스포츠공정위원회 심사를 거쳐 우수 스포츠 인재로 인정돼야 하고, 법무부 국적심의위원회 면접도 통과해야 한다. 실력도 물론 중요하지만, 한국어 구사 능력도필수요소이다 보니 탈락 사례도 여럿 있었다. 레베카는 “일단 지금은 V리그에 집중해야 한다. 현재 신분이 흥국생명의 외국인 선수인 만큼 귀화에만 신경을 집중하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다.





고봉준([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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