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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사주 소각 가시화에…속만 태우는 4분기

중앙일보

2025.12.04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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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사주 EB’ 추이 보니

여당이 추진하는 자사주 소각 의무화가 가시화되면서 올해 자사주를 대상으로 하는 교환사채(EB) 발행이 지난해와 비교해 급증했다. 다만 주주가치 훼손 ‘꼼수 논란’ 이후 4분기 들어서는 다소 위축된 모습이다. 소각 압박과 규제 강화라는 변수가 겹치면서 자사주를 쥔 기업들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4일 한국예탁결제원 증권정보포털에 따르면 올 1~11월 ‘자사주 기반 EB’ 발행액은 총 2조9906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6563억원) 대비 355.7% 급증했다. 타사주를 포함한 전체 EB 발행액 증가율(158.9%)을 크게 뛰어넘는다. 발행 건수로도 26건에서 89건으로 242.3%나 늘었다. EB는 기업이 보유한 자사주 혹은 타사주를 특정 가격에 교환해주기로 하고 발행하는 사채를 의미한다.

특히 자사주 기반 EB 발행이 늘어난 데엔 여당이 추진하는 3차 상법 개정 영향이 있다. 더불어민주당 코스피5000 특별위원회 위원장인 오기형 의원이 지난달 25일 발의한 상법 개정안에 따르면 기업은 자사주를 취득일로부터 1년 이내 의무적으로 소각해야 한다. 기존 보유 자사주는 6개월의 시간을 더 준다. 임직원 보상 등 특정 요건에 해당하는 경우에만 주주총회 승인을 받아 보유·처분할 수 있다.

여기에 개정안은 자사주 성격을 ‘자산’이 아닌 ‘자본’으로 규정하는 내용까지 담겼다. 자사주에 아무런 권리가 없다는 점을 명시해 자사주 기반 EB 발행을 원천 차단한 것이다. 자사주가 지배주주의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활용되는 것을 막겠다는 취지다.

자사주를 소각하면 발행 주식 수가 줄고 주당순이익(EPS)이 늘어나 주주가치 제고 효과가 생긴다. 반면 EB 발행 등을 통해 자사주를 처분하면 현금이 유입돼 재무구조가 개선되는 효과가 있다. 또 지배주주에 우호적인 제3자에게 매각하면 의결권이 살아나 경영권 방어에도 유리하다. 이에 기업들은 개정된 상법이 적용되기 전에 미리 EB를 발행해 의무 소각 적용을 피하려는 것으로 분석된다.

다만 주주가치를 훼손하는 꼼수라는 지적에 EB 발행도 다소 주춤했다. 올 9월 34건으로 정점을 찍었던 발행 실적은 10월 15건, 11월 13건으로 조금씩 줄어드는 모습을 보였다. 금융감독원은 지난달부터 자사주 기반 EB 발행을 결정할 때 ▶다른 자금조달 방법 대신 EB 발행을 선택한 이유 ▶타당성 검토 내용 ▶기존 주주이익에 미치는 영향 등을 구체적으로 기재하도록 공시 기준을 높였다.

거센 주주 반발로 자사주 발행 계획을 포기한 기업들도 있다. 태광산업은 지난 6월 신사업 추진 자금 마련을 위해 자사주 전량을 활용해 3200억원 규모 EB 발행 계획을 발표했지만, 주주 비판 끝에 지난달 말 철회했다. 광동제약도 EB 발행 계획을 철회한 바 있다.

이에 자사주 비중이 큰 기업들의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다. 주주환원을 위해 내년 상반기까지 자사주 전량을 소각하기로 한 ㈜LG 등도 있지만, 기업마다 경영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최근 일부 기업은 블록딜(시간외대량매매) 방식으로 할인된 가격에 자사주를 시장에 매각하기도 했다. 재계 관계자는 “자사주를 미리 처분하려 해도 조건이 까다로워진 데다 주가에 영향을 미칠 우려도 있어 선택의 폭이 넓지 않다”라고 밝혔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자사주는 주가 부양, 임직원 동기부여, 재무구조 개선 등 각 사 상황에 맞춰 다양한 용도에 쓰일 수 있는 수단인데, 자사주 소각은 일회성 효과에 그칠 뿐 부작용이 크다”며 “자율적인 경영 활동에 제약이 걸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나상현([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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