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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안의 시시각각] 아무것도 아닌 사람의 당정 우롱

중앙일보

2025.12.04 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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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안 논설위원
민중기 특별검사팀이 국민의힘 대표를 지낸 김기현 의원의 부인 이모씨에게 오늘(5일) 출석하라고 통보했다. 2023년 3월 김 의원이 당 대표에 당선된 직후 김건희 여사에게 100만원대 로저비비에 손가방을 제공한 혐의를 조사하기 위해서다. 지난달 6일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의 사저인 서울 서초구 아크로비스타를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찾아낸 이 손가방의 제공자를 특검팀이 단박에 특정한 사실은 여러 생각을 자아낸다. 이씨가 명품을 건넨 사실은 함께 발견된 편지 덕분에 드러났다. 이씨는 편지에 “남편의 당선을 도와주셔서 감사하다”는 취지를 담았다.

여당 대표 당선 도와 사례받고
법무장관에 문자 보내 답변 요구
아무것도 아니면서 왕을 꿈꿨나

그동안 드러난 김 여사의 증거 인멸 의혹은 대단하다. 반클리프 아펠 목걸이는 압수수색 과정에서 모조품이 오빠의 장모 집에서 발견됐다. 김상민 전 검사가 구매한 이우환 화백의 그림도 비슷했다. 물건만이 아니다. 건진법사 전성배씨는 김 여사 부탁으로 거짓말을 했다고 밝혔다. 최측근인 유경옥 전 대통령실 행정관까지 “전씨 심부름을 해준 것으로 진술해 달라”는 김 여사 부탁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 정도로 주도면밀한 김 여사가 명품과 편지를 함께 뒀다.

다른 금품들에 비해 저렴한 100만원대여서 간과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고가의 명품들로부터 특검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남겼을지도 모른다. 혹시 국민의힘을 공범으로 묶어두기 위한 포석은 아니었을까. 당 대표까지 지낸 김 의원 관련 비리는 국민의힘에도 타격이다. 김 의원이 내놓은 “여당 대표의 배우자로서 대통령 부인에게 사회적 예의 차원에서 선물한 것”이라는 입장은 예사롭지 않은 영부인과 여당의 관계를 암시한다.

계엄 직후 한남동 관저 앞으로 몰려갔던 국민의힘 의원들은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된 이후 꽤 달라졌다. 반면에 윤 전 대통령은 지난 3일에도 더불어민주당을 비난하는 입장을 발표하는 등 국민의힘에 기대는 모습이다. 그래서인지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계엄 1년을 맞고도 제대로 된 사과를 내놓지 않았다.

그러나 1년이 지나도 새 의혹이 돌출하는 윤 전 대통령 부부를 국민의힘이 안고 가긴 무리다. 한동훈 전 대표와 송언석 원내대표는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는 입장을 밝혔다. 안철수·송석준·박정하·김용태 의원 등도 “비상계엄은 자유민주주의를 짓밟은 반헌법적 행동이었다”는 사과문을 발표했다.

김 여사에 대한 비판도 격해진다. 서울시당 위원장인 배현진 의원은 “왕이 되고 싶어 감히 어좌에 올라앉았던 천박한 김건희”라는 글을 올리는 바람에 친윤 인사들에게 맹공을 당했다. 배 의원은 김 여사를 “선출직도 아닌 아무 권한 없는, 본인 말대로 ‘아무것도 아닌’ 민간인”이라고 규정했다. 그런 민간인에게 특검은 이례적으로 징역 15년의 중형을 구형했다. 김 여사는 법정에서 “진심으로 반성한다”고 했지만, 지난 8월 검찰에 출석하면서 자신을 “아무것도 아닌 사람”으로 과소 포장하는 바람에 신뢰를 더 잃었다.

김 여사는 명품백 및 주가조작 사건과 관련해 박성재 당시 법무부 장관에게 “내 수사는 어떻게 되고 있느냐”는 메시지를 보냈다. 두 사람은 어제 나란히 특검 조사를 받았다. 계엄 무렵엔 조태용 당시 국정원장과 문자를 주고받았다. 아무것도 아닌 사람의 문자도 소중히 여기는 국정원장과 장관을 칭찬해야 하나.

김 여사 부부로 인한 국민의 자괴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처벌을 줄이기 위해 갖은 수를 쓰는 건 피고인의 권리지만, 두 사람에겐 그런 계략이 오히려 독이 될지 모른다. 부하였던 사람에게 “피고인”이라고 불리면서도 한사코 책임을 아래로 전가하려는 윤 전 대통령과 샤넬백 두 개만 받았다고 주장하는 김 여사가 참으로 딱하다. 지금이라도 잘못을 참회하고 진실을 고하는 편이 그나마 처벌을 줄이는 길이라는 조언을 건네는 사람이 두 사람 곁에 없다는 게 비극이다.




강주안([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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