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중앙시평] 문명 전환기, AI 거품론을 어떻게 볼 것인가

중앙일보

2025.12.04 07:26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김명자 KAIST 이사장·전 환경부장관
인공지능(AI) 열풍은 거품인가, 혁신인가? 19세기의 전기(電氣), 20세기의 인터넷을 능가하는 혁신적 기술 AI에 대한 투자 열기가 뜨겁다. ‘놓치는 것에 대한 두려움’(FOMO)도 작용해 정책 경쟁도 치열하다. 그 가운데 챗GPT·딥시크 등장, 빅테크·GPU주의 급등·급락, 미 연방준비제도(연준)의 금리·유동성 언급 등에 따라 AI 거품론이 춤을 춘다.

“AI 거품인가, 혁신인가” 논란 한창
“광란의 1920년대와 유사” 경고도
기술가치 비물질화가 AI시대 특징
기술-휴머니즘 생태계 구축 필요

2016년, 클라우스 슈밥의 『4차 산업혁명』이 출간되고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국이 있었다. 그 현장을 옆방에서 지켜본 필자는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으로 4차 산업혁명 포럼 시리즈를 진행하면서 『산업혁명으로 세계사를 읽다』(2019)를 쓰게 됐다. 제2차 산업혁명기(1870∼1930), 미증유의 물질적 성장의 한가운데서 1929년 미국 월스트리트 증권시장 붕괴를 신호로 세계를 강타한 대공황이 수수께끼였다.

연준 이사회 의장(2006∼14)을 지낸 벤 버냉키는 ‘미국처럼 강력한 경제가 왜 대공황을 막지 못했을까’에 대한 연구로 MIT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3년 논문(‘금융위기가 대공황 전파에 미친 비금전적 영향’)에서 그는 “금융시스템 붕괴가 실물경제를 마비시켜 대공황으로 번졌다”고 결론지었다. 2008년 금융위기 회고에서는 수년간 경고음이 울렸음에도 시스템 리스크를 과소평가했다며 실수를 인정했다. 하지만 위기국면에서 과감한 유동성 공급으로 대공황 재발을 막았다는 평가로 노벨경제학상(2022)을 받았다.

지난 10월, 2020년대 AI·암호화폐·금융시장 팽창이 “1920년대 미국의 ‘광란의 10년’과 놀라울 만큼 닮았다”고 재조명한 책이 나왔다. 금융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앤드루 소킨의 베스트셀러 『1929』(1929: Inside the Greatest Crash in Wall Street History)인데, 저자는 100년 전 대공황을 인간심리·제도·사회구조가 맞물린 복합적 비극이라면서 “이번만은 다르다고 확신할 수 있는가”를 묻는다. 그리고 1920년대 미국 사회가 전기·자동차·전화·라디오의 기술혁신에 홀려 주가가 계속 오를 것이라는 집단적 착각에 빠졌고, 10%만 내고 90% 대출로 주식 투자하는 마진거래, 유동성 과잉, 누구나 참여하는 ‘금융민주화’, 규제 부재와 권력기관의 방임이 맞물려 시장이 붕괴했다고 진단한다. 기술혁신, 금융민주화, 신용팽창의 조합은 엄청난 기회지만 동시에 파국적 위험이며, “역사를 기억하지 못한다면 그 역사가 반복된다”는 것이 소킨의 경고다.

AI 낙관론은 AI가 본질적으로 1929년 대공황, 닷컴 버블(1995∼2000), 암호화폐 버블(2017)과는 다르다고 본다. 이를테면 “닷컴 때는 인프라 부족으로 생산성 효과가 제한적이었으나, AI·디지털화는 생산성·품질을 끌어 올리며, GPU·데이터센터 투자도 생산성 인프라 구축이다.” “AI는 강력한 범용기술로서 단기적 과열과 거품의 선별적 조정기를 거쳐 획기적 생산성 향상을 이끌 것이다”(에릭 브린욜프슨 스탠포드대 교수).

역사적으로 산업혁명은 자원·자본·노동의 생산성을 높이는 엔진 혁명이었다. 21세기 AI-데이터-코인-플랫폼 경제는 알고리즘 혁명으로서 기술가치 실체의 비물질화가 특징이다. 일례로 세계 금융자산은 세계 GDP의 4∼5배이고, 장외 파생상품 등 비실물 기반 자산의 명목 잔액이 수백조 달러에 이른다(FSB 추정). “디지털 자산 거품이 실물경제를 왜곡하고 통화정책의 효과를 약화할 위험성이 우려”되므로(IMF, 2024), 가상의 가치를 실물경제의 생산성으로 연결하는 것이 시급하다. 또한 AI 경제는 생산력과 고용보다는 기대심리와 서사, 즉 “AI가 모든 산업을 재편한다, 인간을 대체한다, AI 강국이 미래를 지배한다”라는 ‘이야기’로 움직이는 ‘내러티브 경제학’(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 2019년 출간)의 영역이다. 따라서 실물보다 서사에 따라 움직이는 투기적 기술자본주의의 부작용을 제어하는 것도 과제다.

AI 지능 인프라는 노동·과학기술·교육·의료·문화 등을 송두리째 재편하며 세계 정치·경제 패권을 좌우하고 있다. 문명사적 대전환이다. 기존의 경제 프레임과 GDP 개념으로는 가상자산이나 산업 없는 성장을 측정할 수가 없다. 옛날 환경부 장관 시절, 2001년 김대중 대통령께 자연생태계 보전과 환경오염 상태를 반영한 녹색 GDP 체계를 단계적으로 도입하겠다고 보고한 적이 있다. ‘시대가 무르익지 않아’ 이 야심 찬 계획은 2년여의 기초연구로 그치고 말았다.

오늘날의 상황에서는 자연생태계는 물론 ‘AI 경제의 윤리적·환경적 영향을 모니터링하고 정책 설계에 반영하는’(OECD, 2023) 테크노-휴머니즘 생태계 구축이 절실해 보인다. 급증하는 전력수요와 그리드, 생태계 파괴, 기후-기술-금융 윤리, 양극화, 불평등, 신뢰 등을 포괄하는 GDP 지표가 반영되지 않고서는 문명의 지속가능성이 위협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인류문명 자체를 재정의할 수 있는 ‘문명경제학’(?)의 새로운 프레임이 출현할 때다.

김명자 KAIST 이사장·전 환경부 장관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