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범호 KIA 타이거즈 감독은 2024시즌 2월 스프링캠프 도중 타격코치에서 지휘봉을 잡았다. 캠프를 앞두고 갑자기 김종국 감독의 뒷돈 사건이 불거지며 해임당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구단은 팀과 선수들을 잘 파악하고 있는 43살의 젊은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겼다. 첫 80년대생 감독의 탄생이었다.
당시 KIA 전력은 우승에 도전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감독이 누구든 앉아만 있어도 가을은 기본으로 간다"는 말도 나왔다. 외국인 원투펀치, 양현종 이의리 등 선발진이 탄탄하고 불펜진도 든든했다. 타선도 스피드와 중심타선의 파괴력까지 경쟁력이 있다는 진단이었다. 최형우와 나성범도 "누가 감독으로 오시든 우승할 수 있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형 같은 이범호 감독이 부임하면서 선수단의 결속력이 강해졌다. 개막 뚜껑이 열리자 선두를 달렸다. 김도영이 리그를 폭격하며 최강 타선을 이끌었다. 팀 타율 3할1리의 파괴력으로 상대를 제압했다. 메이저리그 22승 투수 윌 크로우가 팔꿈치 부상으로 중도하차했지만 제임스 네일이 에이스로 활약했고 김도현 황동하와 대체 외인들이 제몫을 했다. 2년 차 곽도규가 가세해 불펜도 강해졌다.
KIA 최형우./OSEN DB
이 과정에서 이 감독은 초보 감독으로 안정적인 경기 운영으로 9경기차 정규리그 우승과 한국시리즈 4승1패로 한국시리즈마저 잡았다. 대우도 달라졌다. 구단은 2년 9억 원 첫 계약(계약금 연봉 각각 3억 원)을 파기하고 3년 26억 원 짜리 계약을 안겨주었다. 계약금과 연봉 각각 5억 원, 옵션 6억 원 규모였다. 두둑한 우승 보너스에 2년 연속 계약금을 받는 대박을 누렸다.
이 감독은 2025시즌을 앞두고 통합 2연패를 외쳤다. 필승조 장현식이 FA 자격을 얻어 LG로 이적하는 유출이 있었다. 구단은 서둘러 키움과 협상을 벌여 조상우를 트레이드로 영입해 빈자리를 채웠다. 외부 FA 영입은 없었다. KIA는 특강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야심차게 시즌을 준비했다. 그러나 막상 시즌 뚜껑이 열리자 부상자들이 속출해 급전직하했다.
주포 김도영이 개막전에서 햄스트링 부상으로 이탈했고 나성범과 김선빈도 종아리 근육 손상으로 장기간 자리를 비웠다. 절정기에 오를 것으로 기대한 이우성 최원준 한준수도 부진했다. 최형우만이 제몫을 했을 뿐이었다. 우승을 이끌었던 강타선이 물타선으로 돌변했다. 득점력 부재는 고스란히 마운드 부하로 이어졌다. 함평 지원군을 앞세워 단독 2위까지 올랐으나 마운드가 버티지 못해 결국 8위로 시즌을 마쳤다.
KIA 박찬호./OSEN DB
우승과 함께 팬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았던 이 감독도 하루 아침에 리더십이 흔들렸다. 최종전을 마치고 "내년에는 반드시 가을야구를 하겠다"며 명예회복을 의지를 드러냈다. 그러나 FA 자격을 얻은 주전 유격수와 4번타자를 잃었다. 박찬호는 두산 베어스로 이적했고 최형우도 친정 삼성 라이온즈와 계약했다. 다행히 189승 양현종은 계약했다. 남은 조상우를 잡더라도 전력 약화는 불가피해졌다.
외부 FA 등 전력 보강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 감독은 이미 2024년과 2025시즌에도 외부 FA 선물을 받지 못했다. 현재의 전력으로 가을야구에 도전하기가 만만치 않다. 유격수는 제4의 외인 아시아쿼터로 메울 수는 있다. 상대적으로 야수를 선택하면 마운드 보강이 되지 않는다. 최형우 부재는 득점력 약화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마운드도 전반적으로 짜임새가 흐트러져 있다.
이런 전력으로 감독에게 무조건 성적을 내라고 강요하기 어렵다. 이 감독은 2년 동안의 성공과 실패를 다겪었다. 이제는 위기를 돌파하는 리더십이 절실해졌다. 공백을 메우고 새로운 길을 만들어내는 것도 감독의 몫이다. 어쩌면 이범호 감독은 진짜 시험대에 오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