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시골식당선 '고수 반찬' 내준다…'농촌 큰손' 된 외국인 근로자

중앙일보

2025.12.04 12:00 2025.12.04 12:24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4일 오전 전남 영암군 도포면 한 무밭에서 베트남 국적 외국인 근로자들이 무 수확을 하고 있다. 황희규 기자
4일 오전 11시쯤 전남 영암군 도포면 한 무밭. 외국인 근로자 20여명이 허리를 숙이고 앉아 무를 수확하고 있었다. 이들은 베트남 출신 작업반장의 지시에 따라 무를 뽑아낸 뒤 비닐로 포장하거나 트럭에 싣느라 분주했다.

이들을 지켜보던 조광호 나눔농업법인 대표는 “김장철에 일손을 구하기가 힘들어 공공형 계절근로자로 입국한 외국인들을 고용했다”며 “외국인 없이는 농사 짓기가 불가능한 상황이어서 고마우면서도 꼭 필요한 존재”라고 말했다.

지난달 24일 오후 경북 고령군 개진면 들녘에서 농민과 외국인 계절근로자들이 단무지용 무를 수확하고 있다. 뉴스1
같은 날 오후 영암군 삼호읍의 한 식자재마트. 진열대에 도시 마트에서는 보기 힘든 아열대 채소들이 가득했다. 마트 측이 외국인 노동자들을 겨냥해 들여온 베트남산 코코넛과 태국산 타마린드 열매, 코끼리망고 등이었다.

영암에서는 전통시장에서도 아열대채소를 손쉽게 구할 수 있다. 영암군 시종면의 5일장에는 차요테, 오크라, 바나나꽃 등이 등장했다. 인근 농협 하나로마트에서는 파파야, 타마린드, 커밋가지 등 동남아 식재료를 팔고 있다. 농협 관계자는 “매년 늘어나는 외국인의 지갑을 열기 위해 6~7개 종류의 동남아 식재료를 항상 들여놓고 있다”고 말했다.

4일 오전 전남 영암군 삼호면 한 식자재마트에 타마린드 열매, 코끼리망고, 용과, 파파야, 코코넛 등의 식재료와 과일이 진열돼 있다. 황희규 기자
농촌 일손을 돕는 외국인 근로자들이 지역 경제의 한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매년 한국을 찾는 외국인 근로자가 증가하면서 단순한 노동력 제공을 넘어 농촌 상권의 중요한 손님이 된 것이다.

행정안전부의 ‘지방자치단체 외국인 주민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 국내 외국인 주민은 258만3626명으로 총인구(5180만5547명)의 5.0%에 달한다. 영암군은 인구 6만323명 중 외국인이 20.8%(1만2569명)에 달해 안산시(15.7%)보다 외국인 비중이 높다.

영암에서는 원룸촌을 중심으로 아시안마트와 식당, 술집, 당구장 등이 항상 외국인들로 북적인다. 대불국가산단이 있는 영암군 삼호읍에는 출·퇴근 시간마다 자전거를 탄 외국인 근로자들로 거리가 붐빌 정도다.

영암군 내 식당에서는 고수를 재료로 한 반찬도 등장했다. 특유의 향을 지닌 고수는 한국인에겐 낯설지만, 동남아인들이 선호하는 채소 중 하나다. 포장마차를 운영하는 김모(54)씨는 “단골 외국인들이 한 번씩 식재료를 가지고 와 음식을 해달라고 해 가게에 고수를 준비해 둔다”고 말했다.

인천국제공항에서 입국 수속 중인 외국인 근로자들. 뉴시스
조선업 호황 속에 외국인 근로자가 늘어난 경남 거제시에도 이들을 위한 식당이 줄줄이 들어서고 있다. 거제에 체류하는 외국인 근로자는 2022년 5861명에서 2023년 1만1773명, 2024년 1만4969명으로 늘어난 데 이어 올해는 8월 기준 1만5790명까지 증가했다. 거제시 전체 인구(23만1000명)의 7%에 달한다. 거제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 관계자는 “최근 조선소 앞에 베트남 음식점을 비롯해 우즈베키스탄, 러시아 식당 등이 눈에 띄게 많이 늘었다”고 말했다.

울산시 동구 방어동 HD현대중공업의 기숙사 인근 ‘프레시 푸드마켓’ 등에는 베트남에서 생산된 쌀부터 에그누들(계란국수), 열대 과일인 잭프루트, 코코넛 통조림 등을 구매할 수 있다.

4일 오전 전남 영암군 삼호면 한 식자재마트에 코코넛, 타마린드 열매, 코끼리망고, 용과, 파파야 등의 식재료와 과일이 진열돼 있다. 황희규 기자
외국인 근로자가 많은 강원도 춘천에서도 외국인들이 이웃이자 손님으로 자리매김했다. 춘천 지역에는 올해 외국인 근로자 509명이 입국해 농촌 일손을 도왔다. 주민 김모(47·춘천시 사북면)씨는 “외국인들이 농사만 짓는 게 아니라 이웃 어르신이 힘든 일을 하고 있으면 도울 정도로 주민들과 잘 어울려 지낸다”고 말했다.

박창덕 한국이민사회전문가협회 교제교류협력본부장은 “한국을 찾는 외국인 근로자가 증가하면서 국내 인력난 해소와 지역 경제 활성화 효과가 커지고 있다”며 “정부가 현지 선정 작업부터 입국 후 관리·감독을 강화함으로써 이탈 근로자를 최소화해야 장기적인 안목에서 경제적인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경호.박진호.이은지.황희규([email protected])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