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3시간 만에 금붕어 죽었다…역대 최악의 '식수원 오염'이 준 교훈 [창간기획 대한민국 '트리거60' <58>]

중앙일보

2025.12.04 12:00 2025.12.04 12:24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대한민국 '트리거 60' 〈58〉 낙동강 페놀 사건

1991년 3월, 두산전자가 낙동강에 페놀을 무단 배출한 사실이 검찰 수사로 드러나자 수돗물 공포가 퍼졌다. 분노한 시민들이 시위를 벌였다. [중앙포토]
1991년 3월 21일 밤, 서울 공해추방운동연합(공추련) 사무실. 탁자 위에는 금붕어 두 마리를 담은 비커가 놓였다. 비커에는 공업용 폐수 허용 기준인 5ppm의 페놀이 섞여 있었다. 실험 시작 20분 후, 페놀 용액 속 금붕어는 움직임이 둔해지며 천천히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3시간 45분 만에 두 마리 모두 죽은 채 물 위로 떠올랐다. 최예용(현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 당시 공추련 사무처장은 “그때는 페놀이 뭔지도 몰랐다. 실제 위험을 알리는 방법을 찾아보자고 해서 금붕어 실험이라는 아이디어가 나왔다”고 말했다. 당시 이 실험은 일주일 전인 3월 14일, 낙동강에 흘러 들어간 페놀이라는 화학물질이 얼마나 위험한지 단적으로 보여줬다.

페놀의 위험성을 보여준 한 환경단체의 금붕어 실험을 보도한 중앙일보 지면. [중앙포토]
사상 최악의 환경 사고로 기록된 낙동강 페놀 사건. 두산전자 구미공장에서 페놀 원액 30t이 파손된 파이프를 통해 낙동강 지류인 옥계천으로 흘러들었다. 발암성 유기물질인 페놀은 대구 지역 취수원을 오염시켰다. 이틀 뒤 “수돗물에서 악취가 난다”는 시민들의 민원이 빗발쳤다. 페놀 수돗물을 마신 시민들은 구토와 설사, 복통 등을 호소했다. 낙동강을 식수로 쓰던 영남 지역 전체로 수돗물 공포가 전염됐다.

처음엔 단순 사고로 알려졌지만 검찰 수사 결과, 두산전자가 5개월 동안 페놀이 함유된 폐수 325t을 무단 방류해 온 사실이 드러났다. 시민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두산그룹 제품인 오비(OB)맥주에 대한 불매운동이 전국으로 확산했다. 박용곤 두산그룹 회장이 대국민 사과를 하고 물러났다. 정부도 책임을 피할 수 없었다. 사건 처리 미흡을 이유로 환경처 장차관이 동시 경질됐다. 환경청에서 환경처로 승격한 지 불과 4개월 만에 벌어진 전례 없는 사태였다.

‘치킨’보다 검색량 많은 ‘미세먼지’
낙동강 페놀 사건은 국내 환경 운동이 급성장하는 트리거가 됐다. 상수도보호구역 지정 권한은 건설부에서 환경처로 넘어갔다. 물관리 업무 일원화의 출발점이었다. 정수장에는 고도정수처리가 도입되기 시작했고, 상하수도 시설에 대대적인 투자가 이뤄졌다. 대검찰청에는 환경과가 신설돼 환경범죄 단속과 처벌도 강화됐다. 중앙환경분쟁조정피해구제위원회(환경분쟁조정위)의 1호 사건도 낙동강 페놀 사건이었다.

당시 환경분쟁조정위 사무국장이었던 심재곤(현 환경·인포럼 회장)씨는 대구로 파견돼 시내 모든 산부인과를 돌아다녀야 했다. 페놀 오염 수돗물을 마시고 자연유산했거나, 기형아를 낳을까 두려워 인공유산했다는 임신부들의 피해 사례가 접수됐기 때문이다. 그는 “임신 중절술이 불법이다 보니 정확한 조사가 이뤄지지 못했고, 결국 정신적 피해에 대한 보상만 인정받았다”며 “제3자의 입장에서 환경 피해자를 위해 그 책임을 입증한 국내 첫 사례였다”고 했다.

환경운동도 전환기를 맞았다. 환경운동 대중화의 시작이었다. 각종 환경 캠페인과 언론의 환경 관련 보도 역시 크게 늘었다. 페놀 사건 이후 전국적으로 100개가 넘는 환경단체가 설립됐다. 국내 최대 환경단체로 꼽히는 환경운동연합도 1993년에 만들어졌다. 당시 대구에서 치과의사로 일하던 이재용씨는 “집사람이 물에서 냄새가 나 아이들한테 밥을 못 먹이겠다고 했다”며 “이 사건으로 수돗물의 소중함을 깨닫게 됐다”고 했다. 대구시 수돗물 사태 시민단체 대책회의를 이끌던 그는 훗날 노무현 정부 때 환경부 장관으로 입각했다.

 2007년 12월, 태안 기름 유출 사고가 터지자 전 국민적 자원봉사 운동이 벌어졌다. [중앙포토]
2007년 12월, 태안 만리포 앞바다에서 삼성중공업 해상크레인과 홍콩 선적 유조선 허베이스피리트호가 충돌했다. 이 사고로 원유 1만2547㎘가 유출됐다. 검은 재앙이 순식간에 태안반도를 휩쓸었다. 양식장 380곳, 해안선 167㎞, 해수욕장 15곳, 도서 24곳이 큰 피해를 봤다. TV를 통해 기름에 덮인 해안을 본 시민들은 팔을 걷어붙였다. 사람들은 기름을 닦고 오염된 모래를 걷어내는 등 자원봉사에 나섰다. 12월 강추위에도 불구하고 만리포 등 태안 지역 해안으로 가는 2차로 길이 전국에서 온 자원봉사자들의 차량 행렬로 꽉 막혔다. 하루 최대 6만여 명, 5년 동안 123만 명이 태안을 찾아 복구에 힘썼다. 이후 해양환경관리법이 개정되고 재난 대비 시스템 정비로까지 이어졌다. 또 해양 환경 오염 문제, 기업의 사회적 책임 등에 대한 국민적 관심도 커졌다. 2022년 11월, 태안 사고와 극복 과정을 담은 각종 기록물 22만2000건이 세계기록유산 아시아·태평양 지역 목록에 등재됐다. 국제사회는 거대한 환경 재난 사건을 극복한 상징적 사례로 인정했다.

김지윤 기자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환경운동은 또 한번 격변을 겪었다. 국지적 차원의 환경 보전을 넘어 기후변화와 에너지 등 전 지구적인 이슈가 불거졌기 때문이다. 특히 2010년대 중반부터 미세먼지로 인한 공기 오염 문제가 일상생활에 큰 영향을 줬다. 빅데이터 전문업체인 다음소프트에 따르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블로그 등의 키워드 검색량을 분석했더니 2014년 37만 건이던 미세먼지가 2015년 43만 건, 2016년 97만 건이었다가 2017년 200만 건을 넘어섰다. 당시 다음소프트 관계자는 “평상시 ‘치킨’ 검색량이 최상위권이었는데 2018년 ‘미세먼지’가 이를 앞질렀다”고 했다. 이는 2018년 3월, 중국발 스모그가 서울을 덮치면서 1급 발암물질인 초미세먼지(PM2.5) 농도가 관측 사상 최고치를 찍은 것과 관련이 있었다. 그해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초미세먼지 농도가 가장 높은 국가란 불명예를 안았다. 초미세먼지가 건강에 치명적이란 전문가들의 경고가 연일 뉴스를 통해 전해졌다. 학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숨 쉴 권리를 보장하라”고 외치며 정부 대책을 촉구했다. 정부와 지자체, 국회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그해 7월 ‘미세먼지 저감 및 관리에 대한 특별법’을 만들어 이듬해 2월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정부는 미세먼지를 ‘사회재난’으로 규정하고 대기오염과 전쟁을 벌였다.

‘도롱뇽 소송’으로 고속철도 공사 중단
이전에는 신경 쓰지 않던 공기 질을 매일 체크하는 습관이 생겼고, 마스크를 챙기는 일이 일상이 됐다. 미세먼지의 습격은 깨끗한 공기를 마시는 평범한 일이 얼마나 소중한 권리인지를 깨닫게 했다. 극한 폭염·폭우 등 잦아진 기상이변도 사람들의 환경에 대한 인식을 바꿨다. 2018년 여름 40도가 넘는 폭염을 경험한 시민들은 기후변화를 현실의 위협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2020년 정부는 ‘2050 탄소중립’을 선언하며 본격적인 기후위기 대응에 나섰다.

환경파괴 논란이 빚어진 KTX 천성산 터널 공사 현장. 공사 후 천성산 도롱뇽 생태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중앙포토]
환경 의제가 사회 전면에 등장하면서 개발 사업과의 갈등도 커졌다. 때로는 환경단체의 반대에 부닥쳐 국책사업이 표류하는 일도 종종 발생했다. 갈등을 해소하는 과정에서 지불하는 사회적 비용도 그만큼 커졌다. 2003년 경부고속철도 천성산 통과 구간(경남 양산 원효터널)을 둘러싼 지율 스님의 단식투쟁과 ‘도롱뇽 소송’이 대표적 사례다. 지율 스님과 환경단체 등이 “천성산 습지와 도롱뇽 서식지가 파괴된다”고 주장하면서 공사는 189일간 중단됐다. 2006년 대법원은 “환경 파괴의 구체적 피해를 입증하지 못하는 개인이 국가 개발까지 막는 건 헌법이 보장하는 환경권을 넘어선 것”이라며 도롱뇽 소송을 기각했다. 이후 여러 차례 도롱뇽의 알 분포도 등을 조사한 결과 터널 구간 지역 생태에 큰 변화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활동 반경을 넓히며 꾸준히 성장하던 환경단체들은 이 사건의 영향으로 한동안 침체에 빠지기도 했다.

환경파괴 논란이 빚어진 KTX 천성산 터널 공사 현장. 공사 후 천성산 도롱뇽 생태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중앙포토]
최근에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새로운 형태의 ‘녹색 갈등’이 나타나고 있다. 육상 태양광과 풍력 발전 확대를 둘러싸고 다양한 환경 가치가 충돌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주민과 지역사회는 물론 환경단체와의 갈등도 커지고 있다. 이제 환경과 개발을 대립시키는 이분법적 접근으론 지속가능한 해법을 찾기 어려워졌다. 환경운동도 반대를 위한 반대를 넘어 과학적 객관성을 바탕으로 한 전문성 강화가 중요하다. 더는 환경의 메시지가 ‘해악’이나 ‘보호’의 단순 프레임에 갇혀서는 안 된다. 환경의 가치는 살리되, 현실적 대안을 마련하는 유연하고 새로운 접근이 필요한 때다.

창간 60주년 기획 '대한민국 트리거 60'은 아래 링크를 통해 전체 시리즈를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joongang.co.kr/issue/11765

※다음은 ‘자유무역협정(FTA)’ 편입니다.





천권필([email protected])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