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후 직장생활을 이어갈 수 있을 거라고 보는 여성이 그렇지 않은 여성보다 출산 의향이 높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출산 의향이 개인의 가치관보다 '아이를 낳아도 일할 수 있는가' 같은 현실적 조건에 좌우되는 경향이 뚜렷하다는 분석이다.
김은지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4일 열린 여성정책연구원 '2025 패널조사 학술대회'에서 이같이 발표했다. 김 연구위원은 지난해 국내 세대·성별(GGS Korea) 자료 중 19~44세 남녀 1059명의 출산 의향을 분석했다. GGS는 유엔 유럽경제위원회(UNECE)가 주관하는 국제 패널조사로, 세대 간 가족관계와 출산·양육 관련 가치관 변화를 비교·분석하는 데 활용된다.
분석 결과, 여성은 아이를 낳은 후에도 일을 지속하길 희망하고, 또한 그럴 수 있다고 전망할수록 출산 의향이 유의미하게 증가했다. 반면 출산 후 일을 하고 싶어도 불가능하다고 전망하는 집단에선 출산 의향이 가장 낮았다. 이런 모습은 특히 무자녀, 중·저소득 여성일수록 뚜렷했다.
남성은 여성보다 전반적으로 아이를 낳고픈 생각이 컸다. 출산 후 노동 지속 가능성에 대한 전망이 출산 의향에 미치는 영향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김 연구위원은 "출산 의향이 가치관의 문제가 아니라 '출산 후 일할 수 있는 조건이 보장되는가'라는 현실적 가능성과 긴밀히 연결돼 있음을 보여준다"며 "한국 사회가 기존의 전통적 가족 모델에서 벗어나, 커리어와 가족적 성취가 동시에 가능한 구조로 정책적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날 학술대회에선 가사·돌봄 부담 완화를 위해 유연근무제를 확대해도 여성의 가사노동 시간을 줄이는 데 한계가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박수범 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여성가족패널 6~10차(2016~2024년) 자료를 활용해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이후 늘어난 유연근무제가 여성의 가사노동 시간에 미친 영향을 들여다봤다.
분석 결과, 코로나 팬데믹 후 여성의 가사 노동 시간은 주당 평균 약 55분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정 내 돌봄 수요가 급증한 영향이다. 이 시기 시차출퇴근제, 탄력근무제,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 등의 유연근무제도가 확대됐다. 하지만 이런 변화가 가사노동 시간을 줄이는 데 도움을 주지 못했다는 걸 보여준다.
박 연구위원은 "유연근무제가 근로자의 자율성을 늘려준다는 측면에선 긍정적이나, 코로나 팬데믹 같은 가사·돌봄 집중 시기엔 여성의 가사 부담을 실질적으로 줄여주지 못한 한계가 있음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이어 "성별 가사 분업의 변화 없이는 여성의 집안일 시간을 줄이는 데 한계가 있다. 유연근무제 설계를 개선하고, 남성의 유연근무 사용을 촉진하는 정책을 병행해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