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나라는 폴란드가 재래식 잠수함 세 척을 도입하는 오르카 사업에서 복병 스웨덴에 패했다. 이 사업은 많은 국내 매체와 유튜브 채널에서 승리를 장담하던 사업이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그런 장밋빛 전망은 모두 빗나가고 말았다. 폴란드의 스웨덴 선택은 결국 역내 협력이라는 정치·외교적인 고려가 강하게 작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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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토의 첨단 기술 중심국, 네덜란드
그렇다고 우리나라의 유럽 방위산업 수출이 완전히 막힌 것은 아니다. 유럽 속에 녹아 들어가면 앞으로 기회는 계속 열릴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유럽에 녹아 들어갈 수 있을까? 해답은 유럽에 진출할 파트너를 찾는 것이다.
지난달 한국국방연구원(KIDA) 국방자원연구센터에서 K방산이 활로를 찾으려면 네덜란드와 같은 첨단 기술 중심 육성 국가와 협력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네덜란드는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에서 해양·방공·공중수송·지상·정찰 등 첨단기술 중심으로 방위 산업을 발전시켰고, ‘Defport’라는 관·산·학·연 플랫폼을 통해 국방 수요와 민간 공급 간 격차를 해소하는 체계를 갖춰 중앙에서 이를 통합 관리하며 효율적 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보고서는 네덜란드는 프랑스·독일 등 역내 다른 강대국에 비하면 국가 규모가 크지 않아 규모의 경제 측면에서 불리하기 때문에 특정 첨단분야를 집중적으로 육성해 나토에서의 입지를 다지겠다는 전략으로, 대량 생산력을 갖춘 한국과 협력 시너지가 클 수 있다고 의견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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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방위산업 현황을 한눈에 보다, NEDS 2025
그렇다면, 네덜란드 방위산업의 현주소는 어떨까? 그 해답을 찾으려 필자는 지난달 중순 네덜란드 제2의 도시 로테르담을 찾았다. 항구도시로 많이 알려진 로테르담에선 매년 11월 중순 하루 동안 네덜란드 방위 보안 전시회 (NEDS·NIDV Exhibition Defence & Security)가 열린다.
올해로 36회를 맞은 NEDS는 네덜란드 방위산업협회(NIDV)기 주관하며, 베네룩스 지역에서 가장 규모가 큰 방산 전시회다. 로테르담의 복합 문화공간인 아호이(Ahoy)에서 열린 행사는 전시장 규모도 우리나라의 아덱스나 마덱스와 비교할 때 규모론 훨씬 작다. 작지만, 앞으로 직접 국방비로 GDP의 3.5%, 도로 등 국방 관련 인프라에 GDP의 1.5%, 총 GDP의 5%를 쓸 예정인 네덜란드를 향한 미국과 유럽 방위산업계의 치열한 홍보의 장소가 돼 있었다.
11월 20일 아침, 행사장에 입장하려고 아호이에 입장하는 길은 생각보다 한산했다. NEDS는 실질적으로 행사장을 찾을 사람만 받으려 500유로의 비싼 등록비를 받고 있다. 그런데도 행사장 안은 전시업체 관계자와 방문자로 가득했다.
전시 부스도 대형 회사도 우리나라 전시회처럼 대규모 부스를 차리지 않고, 상대적으로 아담한 규모로 차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 때문에 실물 차량 전시는 파트리아의 6X6 장갑차, 이베코 디펜스의 전술차량, 네덜란드 육군 대포병 레이더 차량, 네덜란드 육군 구난전차 등에 그쳤다. 하지만, 200여개 가까운 회사와 단체가 참여해 상당한 볼거리를 제공했다.
홀 1에서 열린 전시회와 함께 홀 2에서는 오전 10~11시 NIDV 회장의 환영사와 네덜란드 국방 획득부 장관 등 고위인사가 연설해 이들의 발언을 듣기 위해 많은 이가 몰리기도 했다. 전시회엔 유럽 여러 국가에 지사를 둔 탈레스 같은 다국적 기업, 무인 지상로봇으로 유명한 에스토니아의 밀렘 로보틱스 같은 비 네덜란드 기업 외 다양한 기업과 연구소 등이 참석했다.
네덜란드에선 독일 해군의 F127급 구축함 건조 업체로 세계 군함 건조업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다멘과 세계적인 항공우주 연구소인(NLR)과 응용과학연구소(TNO) 등 네덜란드 기업과 연구소 등 다양한 업체, 연구소, 그리고 네덜란드 정부 부처가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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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방산 업체는 적어도 역량과 기술은 뛰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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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NEDS 전시회에서 참가한 업체는 대부분 영국·독일·프랑스 등 비 네덜란드권 업체가 많았고, 네덜란드 업체나 연구소의 비중은 크지는 않았다. 하지만, 중요 무기체계를 이루는 하부 체계와 기반 기술 그리고 신흥 분야인 무인체계와 관련해서는 네덜란드의 저력이 돋보였다.
KIDA에서 꼽은 네덜란드의 강점인 연구 분야를 대표하는 NLR과 TNO 등 주요 연구소는 현재 자신들이 진행하고 있는 연구 중 일부를 소개하고 있었다. 네덜란드 항공우주 연구소 NLR은 우리나라 관련 연구도 많이 수행한 곳으로, 행사 다음 날 여러 연구소 중 한 곳을 방문해 연구소 관련 브리핑도 받을 수 있었다.
네덜란드가 자랑하는 산·학·연 협력의 산물인 스타트업도 돋보였다. 많은 네덜란드 스타트업이 독자 부스를 차리기도 했지만, 국방부 부스 아래 여러 곳이 모여 참여하기도 했다. 네덜란드 국방부 부스에는 1600도 고온을 2시간까지 견딜 수 있는 탄소-세라믹 복합재를 만드는 업체와 저렴한 로켓 기반 요격 드론 제작 업체 등이 참가하여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았다. 다른 네덜란드 정부 부처 부스에도 스타트업이 자리했다.
그들 외 창업한 지 4~5년인 인공지능 기반으로 다양한 드론을 통제하기 위한 지휘통제(C2) 시스템 개발 업체, 휴대폰 기반으로 저렴한 사진이나 영상을 암호화해 전달하는 체계를 개발한 업체, 구호품이나 군수지원을 위해 낙하산을 대신해 저렴한 종이 박스를 사용한 업체 등 훌륭한 아이디어를 가진 업체도 많은 관심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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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 기회를 찾는 데 중요한 매치메이킹 행사
NEDS를 주최하는 NIDV는 NEDS에 앞서 많은 업체에게 중요한 연결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었다. NEDS 행사 전날인 11월 19일 아호이에서는 국제 협력 관련해 방위·보안 업계 관계자가 만나 기회를 논의할 수 있는 매치메이킹(Match Making) 행사가 열렸다. 매치메이킹 행사는 NIDV과 네덜란드 기업청(RVO)과 협력해 개최했다.
올해는 두 가지 행사가 열렸는데, 유럽 방위 기금(EDF) 프로그램에 중점을 두고 있으며, EDF 참여 자격이 있는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EDF 매치메이킹’과 네덜란드의 산업 참여 공약과 관련해 방위 관련 국제 협력에 관심 있는 모든 참가자에게 열려 있는 ‘글로벌 매치메이킹’이었다.
글로벌 매치메이킹은 육상·항공·해상·센서·무인 시스템·사이버 보안·우주 시스템 등 다양한 분야를 다루며, 해외 대표단에 주요 의사 결정권자와 원하는 전시업체를 직접 만날 기회를 제공한다. 그래서 사업 기회를 찾고자 하는 이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였다. 실제로 행사장에는 많은 이들이 새로운 기회를 찾기 위해 참석했다.
매치메이킹과 NEDS는 짧은 이틀에 걸친 행사였지만, 행사를 통해 부품·소재 위주 기업이 많은 네덜란드가 어떻게 유럽 방위산업의 핵심 일원으로 자리 잡을 수 있고, 첨단 기술 연구·개발의 한 축인 지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됐다. 특히, 매치메이킹은 대형 원제작사(OEM)가 거의 없는 네덜란드 방위산업이 유럽내 공급망 진입을 위한 창구의 역할을 톡톡히 하는 모습을 보았다. 유럽 진출을 노리는 국내 업체도 이를 활용하면 좋은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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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공략이 아닌 유럽과 함께 하는 전략이 필요
우리나라 방위산업은 수출 중심형으로 나갈 수밖에 없으며, 유럽은 앞으로도 중요한 공략점이 될 것이다. 그러나, 폴란드 잠수함 사업에서 보듯이 유럽 내 단단한 협력의 틀을 깨기 위해서는 새로운 전략과 파트너가 필요하다.
세계 방위산업 수출 시장에서 경쟁하는 이스라엘은 유럽 시장에서 PULS 다연장로켓, 스파이크 대전차미사일에 이어 트로피 능동방어시스템까지 유럽에서 현지화해 앞에 ‘유로’라는 명칭을 붙여 유럽에서 생산되고 있다. 이는 단순히 현지 조립 생산으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 방위산업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 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블록화해 가는 시장을 공략하려면 새로운 공략법을 찾아야 하고, 새로운 협력 파트너를 찾아야 한다. 네덜란드의 핵심연구기관인 NLR이나 TNO는 이미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의 기업·연구소와 활발한 협력을 하는 만큼, 협력 범위를 넓혀서 네덜란드 현지 R&D·공급망 협력을 통해 활로를 찾아보는 것을 제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