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 그로부터 1년 후 더불어민주당은 거대 의석을 가진 집권 여당으로 변모했다. 민주당은 ‘내란 청산이 곧 국민 통합’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계엄 세력 단죄에 몰두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사법 제도 개편까지 속도를 내고 있지만, 삼권 분립 침해 우려 또한 커지고 있다. 중앙일보는 이광재 전 국회 사무총장과 전현희 의원에게 청산과 통합, 두 가지 상반된 요구에 직면한 민주당의 길을 물었다.
지난 대선 때 이재명 대통령의 공동상임선대위원장을 맡았던 이광재 전 국회 사무총장은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과 한덕수 전 국무총리, 그리고 내란에 가담한 주요 전직 장관들이 유죄를 선고받으면 내란 청산이 끝난다”며 “이들에 대한
1심 선고가 이뤄지면 내란 청산은 7부 능선을 넘어가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 전 총장은 “내란 청산은 양보할 수 없는 원칙과 관련된 문제이지만, 과거 문재인 대통령 때 적폐청산이 길어져 국민들에 피로감을 줬다는 점을 되새겨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3선 의원과 강원도지사를 지낸 이 전 총장은 통합·상생을 향했던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 여정을 지근거리에서 함께했다. 진영 내에서도 통합 지향의 정책통으로 자리매김했다. 이 전 총장은 내년 지방선거와 관련해 “지금은 정치권이 대타협을 통해 AI(인공지능) 시대의 민생 경제, 외교 문제에 집중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인터뷰는 지난 1일 서울 정동 소재 식당에서 2시간 가량 진행됐다.
Q : 지난 1년간 ‘내란 청산’은 얼마나 진행됐다고 평가하나.
A : “윤석열을 비롯한 주요 인사들이 구속됐으니 50% 정도 된 것이라고 봐야 한다. 국회가 특검법을 만들었고, 그 법에 따라 특검이 수사했다. 민주주의라는 시스템 안에서 삼권 분립에 따라 이뤄졌기 때문에 그나마 빨리 했다. 특히 계엄 당일 CCTV를 확보한 건 특검의 성과다. 이제는 법원이 빠른 결정을 내려줘야 할 때다.”
Q : 내란전담재판부가 필요하다는 뜻인가.
A : “법원 스스로가 내란전담재판부를 만들지 않은 게 안타깝다. 국민들이 현재 법원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고, 법원 스스로도 빨리 결단하는 게 필요하다. 우리 사회가 정상적으로 작동되려고 특검과 재판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재판은 빨리 끝나야 한다.”
Q : 임기 내내 ‘적폐청산’을 외치던 문재인 정부를 답습한다는 지적이 있다.
A : “그 때는 문 대통령이 정권 출범 후에 적폐청산이라는 용어를 만들고, 전 정권 사람들에 대한 수사를 시작해서, 감옥에 집어넣었다. 지금은 윤 전 대통령이 먼저 죄를 저질러 수사를 받고 감옥에 들어갔다는 점이 본질적으로 다르다. 청산 작업은 오래 가지 않을 것이다.
주요 피고인들에 대한 법원 1심 선고가 (내년 초) 이뤄진다면 내란 청산은 7부 능선을 넘어간다.”
Q : 정청래 대표는 국민의힘 정당 해산을 주장한다.
A : “민주당이 굳이 정당해산을 이야기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국민들이 그 당을 소멸시키거나 해산시키거나 약화시키는 선택을 할 것이다. 내란 청산 지연의 책임은 국민의힘에 있다. 국민의힘이 진작 정말 잘못했다고 사과하고, 계엄 관련자들을 전부 출당시켰다면 지금 여의도는 이미 새로운 국면에 진입했을 것이다.”
이 전 총장은 인터뷰 중 국민의힘에 대해 “뭘 잘못했는지를 잘 모르는 것 같다. 윤석열의 내란이 성공했다면 피비린내와 함께 대한민국이 폭망했을텐데 여기에 대한 각성이 없다”고 여러 번 지적했다. 국민의힘 인사들이 “권력을 잃은 것에 대한 금단현상에 빠져 있다”며 “국민의힘이 변해야 민주당도 뭔가 이야깃거리가 될 수 있다”고 했다.
Q : 민주당은 내란 청산 외에 무엇에 집중해야 하나.
A : “‘투톱’인 대표와 원내대표가 이재명 대통령과 주파수를 맞춰서 집중적으로 경제, 외교와 관련된 정책적 메시지를 내는 데 집중해야 한다. 대통령과 원 보이스를 내는 게 중요하다. 오히려 정치적 메시지는 당 정책위의장과 상임위원장이 맡는 게 좋겠다. 워낙 많은 의석 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조용한 개혁’을 충분히 이루어낼 수 있는 환경이다.
Q : 현 지도부가 대통령과 엇박자를 낸다는 뜻인가.
A : “그런 지적이 있다. 국민의힘이 변하지 않고, 계속 여야가 격돌하고 있기 때문에 당 지도부 입장이 이해는 간다. 하지만 대통령 관련 사건에 대해서는 ‘(당이) 언급하지 말아 달라’는 게 정무수석을 비롯한 대통령실 관계자들의 간절한 마음이다. 이미 대통령실의 공개적인 경고가 있었다. 그러면 그만해야 한다. 충성 같지만 대통령을 도와주는 게 아니다.”
Q : 내년 지방 선거 키워드는 무엇이어야 하나.
A : “민생경제와 내란 청산이라는 두 가지가 6대4, 적어도 5대5 비중으로 나가야 한다. 지금은 앞 부분이 너무 적다. 이 대통령이 지지도가 높은 건 국민들이 경제, 외교 능력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이 행정 경험을 통해 국민들이 어떻게 사는지 잘 알고 있다는 점이 주효하게 작용하고 있다. 이미 정원오 성동구청장 등 행정 경험을 갖춘, 이 대통령과 비슷한 성향의 후보들이 약진하기 시작했다.”
Q : 본인도 지방선거 출마를 고려 중인가.
A : “지금은 답하기 어렵다. 지도자는 손해를 무릅쓰고 결정을 하는 사람이고, 평범한 사람은 대체로 자기 이익을 쫓는다는 노 전 대통령의 가르침이 요즘 자주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