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영국의 글로벌 팹리스(Fabless·반도체 설계) 기업 암(ARM)이 5일 반도체 설계 인력 양성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양측은 반도체 설계에 특화된 교육 기관인 ‘ARM 스쿨’(가칭)을 국내에 설립해, 세계 최고 수준의 반도체 설계 인력 1400여 명을 양성한다는 계획이다.
이번 MOU는 이날 오전 이재명 대통령과 손정의 소프트뱅크 그룹 회장의 접견을 계기로 체결됐다. 이 자리에 배석한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과 르네 하스 ARM 대표가 ‘한국 반도체·AI 산업 강화를 위한 양해각서’에 서명했다. ARM은 반도체 설계 분야 최고 기업으로, 소프트뱅크가 지분 90%가량을 보유한 대주주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ARM 스쿨은) 한국 반도체 산업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팹리스 등 시스템반도체 분야를 강화할 귀중한 자산이 될 것”이라며 “이를 위해 산업부는 반도체 특성화 대학원 지정 등을 속도감 있게 추진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광주과학기술원(GIST)을 우선 후보로, 석·박사 400명과 기업 재직자 1000명을 대상으로 교육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 대통령은 손 회장과 만난 자리에서 “대한민국 정부는 인공지능(AI)이 가지는 위험성과 유용성을 동시에 인지하고 있다”며 “위험성은 최소화하고, 유용성 측면에서 많은 투자를 하고 기대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인공지능이 가진 엄청난 역량 때문에, 상하수도나 도로처럼 모든 국민, 모든 국가가 함께 누리는 정말 초보적인 인프라로 활용할 수 있다고 믿는다”며 자신의 ‘AI 기본사회’ 구상을 설명했다.
이에 손 회장은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초인공지능’(ASI·Artificial Super Intelligence)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손 회장은 “제가 정의하는 ASI는 인간의 두뇌보다 1만 배나 더 뛰어난 인공지능을 의미한다”며 “다음번에 임박한 기술”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인간과 어항 속 금붕어의 두뇌를 비교한다면 인간의 두뇌가 1만 배 더 뛰어나다고 할 수 있지만, 이제는 인류가 금붕어가 되고 AI가 인간이 되는 그러한 모습이 펼쳐질 것”이라고 했다.
손 회장은 특히 “이제는 우리가 AI를 통제하고 가르치고 관리하려는 생각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사고방식을 통해 AI와 함께 살아가고 어떻게 하면 동기화할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손 회장은 “앞으로 AI는 너무나 똑똑할 것이기 때문에 더 친절하고 사람들을 더욱더 행복하게 해줄 것”이라며 “ASI라는 것이 우리를 공격할까봐 걱정할 필요는 전혀 없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는 당초 40분 간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예정 시간을 넘겨 1시간 10분 동안 진행됐다. 손 회장은 “ASI 구현을 위해 반도체와 에너지, 데이터, 교육 등 4가지가 필요하다”며 “한국의 약점은 에너지 분야”라고 지적했다. 손 회장은 이어 “한·미 간 ‘메모리 동맹’을 강화하는 게 한국이 미국으로부터 존경받고 강력한 동맹 관계가 되는 길”이라고 조언했다. 최근 이어지고 있는 국내외 기업의 한국 내 데이터 센터 구축 계획에 대해 손 회장은 “한국이 가진 AI 국가로서 잠재력·비전에 비해 그 규모가 매우 작다”라고도 지적했다.
접견에는 배경훈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김정관 산업부 장관,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 김용범 정책실장 등이 배석했다. 소프트뱅크 측과의 ‘ARM 스쿨’ 협약은 앞서 블랙록(AI·재생 에너지 투자), 오픈AI(데이터 센터), 엔비디아(GPU 공급) 등과 체결했던 글로벌 AI 협력의 연장선이다. 김 실장은 이날 접견에 대해 “손 회장은 이미 대통령이 만난 샘 알트만(오픈AI CEO)이나 젠슨 황(엔비디아 CEO)과도 밀접하게 일하는 파트너”라며 “손 회장이 보다 넓은 주제를 다루는 만큼 별도로 만나고 싶다는 요청을 보냈고, (대통령실도) 만나는 게 국익이나 산업 진흥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