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자율주행차, 이제는 놀랍지도 않다. 중국 광둥(廣東)성 선전(深圳)에서 탄 딥라우트(deeproute.ai)의 자율주행차 역시 그랬다. 앞차를 능수능란하게 추월했고, 깜빡이를 켜 뒤차를 먼저 보내기도 했다. 차선 바꾸는 게 자연스럽다. 정작 기자를 놀라게 한 건 다른 데 있었다. 가격이다.
“딥라우트의 L4급(운전자 개입 없이 스스로 운행) 자율주행 솔루션은 2000달러(약 286만원)에 공급된다. 소프트웨어를 포함해도 3000달러를 넘지 않는다. 웨이모·모빌아이 등 미국 기업의 동급 제품가의 10분의 1이다.” 기자를 안내한 후젠(胡鑒) 마케팅 매니저의 설명이다. 그는 “창청(長城)자동차에 솔루션을 공급하고 있고, 올해 20만 대 정도 팔렸다”고 말했다.
싼 게 비지떡? 아니다. 글로벌 ICT(정보통신기술) 시장 조사기관인 IDC가 발표한 2025년 보조 주행기술 평가보고서에서 딥라우트는 도심 내비게이션, 고속도로 차선 중앙제어 등에서 최고 점수를 받았다. 특히 인간에 가까운 연쇄적 사고(Chain-of-Thought) 분야 혁신을 이뤘다는 평가를 받았다.
중국의 ‘하이테크 가성비’ 사례는 많다. BYD가 지난 4월 시판에 들어간 전기차 시걸은 1000만원짜리 전기차로 유명하다. BYD는 당시 5만6800위안(약 1147만원)에 판매를 시작했다. 미국 GM의 보급형 전기차인 쉐보레 ‘볼트’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모건스탠리는 ‘중국 휴머노이드 로봇은 미국 동급 제품보다 대략 75% 정도 싸다’는 보고서를 내기도 했다. 연초 세계 인공지능(AI)업계를 놀라게 했던 딥시크 충격도 본질은 챗GPT4 대비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한 비용이었다.
하이테크 제품도 중국이 만들면 싸다. 왜 그럴까.
“경쟁 치열한 중국, 살아남는 것 자체가 혁신”
첫째, 인건비다. 중국은 해마다 500만 명의 STEM(과학·기술·공학·수학) 인재가 쏟아져 나온다. 공급이 많으니 가격은 내려갈 수밖에 없다. 석사 출신의 3년 차 엔지니어를 기준으로 볼 때 미국 테슬라에서는 22만(약 3억2000만원)~30만 달러(4억3000만원)의 연봉을 받는다. 선전 자율주행업계에서는 40만(약 8000만원)~65만 위안(1억3000만원)에 고용할 수 있다. 4분의 1 수준이다.
둘째, 생태계다. 딥라우트가 활동하고 있는 중국 선전에는 지금 거대한 ICT 생태계가 형성되고 있다. BYD가 있는 선전시 룽강(龍岡)구의 경우 전기차 제작을 위한 부품 90%를 1시간 이내 거리에서 조달할 수 있다. 진레이(金雷) 딥라우트 CFO는 “주변에 산재한 영상 기기 관련 회사를 통해 최고의 라이더 부품을 싸게 조달받고 있다”며 “그들과 함께 부품을 개발하고, 주변 완성차 업체와도 협력한다”고 말했다.
셋째, 규모의 경제다. 중국은 세계 최대 자동차 생산국이자 소비국이다. 지난해 세계 순수 전기차 판매의 70%가 중국에서 팔렸다(약 772만 대). 이들 모두 딥라우트의 잠재 고객이다.
자동차 시장은 가혹한 경쟁이 벌어지는 곳이기도 하다.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가격을 낮춰야 하고 비용을 줄여야 한다.
김명신 KOTRA 선전 무역관 관장은 “워낙 치열한 시장이기에 중국 시장에서 살아남는 것 자체가 혁신의 한 과정”이라며 “시장의 압력은 중국 하이테크 제품 가격을 떨어뜨리고, 대외 경쟁력을 높여준다”고 분석했다.
넷째, 정부의 지원이다. 중국의 하이테크 지원은 지속적이고 치밀하다. 정부 기금 투자 등 직접 지원이 있는가 하면, 인허가 등을 통한 간접 지원도 수두룩하다. 초기 제품을 대거 사주는 빅 바이어 역할도 한다. 이 모든 게 비용 절감 요인이다.
중국 하이테크 제품의 ‘가격 파괴’는 우리에게도 도전이다. 취재단과 함께 항저우 로봇 회사 딥로보틱스를 방문한 엄윤설 에이로봇 대표는 중국 로봇 산업의 경쟁력을 ‘상업화’에서 찾는다.
그는 “딥로보틱스의 4족 로봇 M20은 성능으로 볼 때 스위스 취리히연방공대의 로보틱 시스템즈랩에서 개발한 애니멀과 비슷하다”며 “그러나 가격은 10분의 1 수준”이라고 했다. 가성비로 무장한 중국의 하이테크 제품은 빠르게 시장을 파고들어 현장 데이터를 생성하고, 고도화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