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중앙은행인 분데스방크의 요하임 나겔(59) 총재는 지난 2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본부에서 한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겔 총재는 한은 초청으로 방한해 이창용 한은 총재, 이억원 금융위원장 등을 만났다. 그는 유럽중앙은행(ECB) 정책위원을 겸하고 있는데, 2027년 임기가 끝나는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의 후임 후보 중 한 명으로 거론된다. 그런 나겔 총재가 재정 건전성을 화두로 꺼냈다.
독일 정부가 올해 3월 향후 인프라 투자에 5000억 유로(약 859조원) 이상을 투자하고, 국방비는 사실상 제한 없이 쓸 수 있는 내용의 대규모 재정 패키지를 내놨기 때문이다. 연방정부의 구조적 재정적자 비율을 연간 국내총생산(GDP)의 0.35%로 제한하는 헌법상 ‘부채 브레이크’를 완화하는 조치다. 팬데믹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을 계기로 경기 둔화가 이어지자 내놓은 대책이다.
Q : 재정 확대와 재정 건전성의 균형을 찾기가 어려운데.
A : “독일 정부의 재정 패키지는 매우 이례적인 상황에서 나온 조치다. 이에 최근 분데스방크는 ‘부채 브레이크 2.0’을 제안했다. 이대로면 (2040년에)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90%까지 높아질 수 있다고 보고, 2029년 이후 유럽연합(EU)의 재정준칙(GDP 대비 60%)으로 돌아갈 수 있는 방안들을 담았다. 독일은 유럽에서 ‘안정의 닻(Stability anchor)’으로 인식되고 있기에, 독일이 재정 정책을 건전화하면 다른 국가들도 금리 곡선과 함께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Q : 한국의 새 정부도 확장 재정을 하고 있는데, 조언을 한다면.
A : “모든 것은 향후 몇 년 동안 경제가 어떻게 움직일지에 달려 있다. 경제가 현재 예측보다 조금 더 잘 돌아간다면 건전화 과정은 더 쉬워질 것이다. 중기적 관점에서 성장률을 더 높일 것으로 기대할 수 있는 분야에 투자해야 한다. 이런 투자가 뒷받침돼야 세수가 증가하고 실업자 등에 대한 지출이 줄어든다.”
Q : ECB 위원으로서 통화 정책을 결정할 때 가장 중요한 고려 요소는.
A : “물가 안정은 경제 성장의 조건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부당한 침략 전쟁 이후, 2022년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이 10%를 넘었다. 이를 잡기 위해 10차례 금리를 인상했다. 이런 명확한 신호를 준 후 금리를 8차례 낮출 수 있었고, 이제는 목표치(2%)에 근접해있다.”
Q : 독일의 경제 상황은 어떤가.
A : “독일은 전체 유럽을 대변하는 표본과 같다. 팬데믹 이후 너무나 많은 불확실성이 혼재돼 있다. 러시아 전쟁 이후 에너지 가격이 너무 올랐고, 올해 초 미국 행정부와 관세 분쟁이 있었다. 정부가 구조적 문제와 경기 회복을 위한 대규모의 재정 패키지를 내놨고, 일부는 내년에 가시화된다. 올해는 약간의 침체, 혹은 0% 경제성장률을 약간 웃도는 수준이지만 내년에는 1%에 가까워질 것이다. 특별히 좋지는 않지만, 과거와 비교하면 훨씬 낫다.”
Q : 스테이블 코인은 달러 패권에 어떤 영향을 줄까. 한국도 관련 입법을 추진하고 있는데.
A : “스테이블 코인은 ‘통화’가 아니라 ‘자산(asset)’이다. 암호화폐와 마찬가지로 투기성 자산군으로 본다. 대부분 미국 달러로 표시되고 미 국채에 연동돼있어 추가적인 달러 의존도를 더 키우는 위험이 있다. 미 국채 가격이 급락(국채 금리는 상승)하면, 심각한 문제 상황에 빠질 수 있다. 게다가 일부 은행은 스테이블 코인 발행자의 유동성을 공급한다. 덜 규제된 스테이블 코인 시장에서 더 규제된 은행 시장으로 위험이 파급될 수 있다. 발행자들이 규제시스템 밖인 ‘외딴 섬’(조세회피처) 등에 있는 경우도 많다. 강력한 규제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이유다.”
Q :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 유로(CBDC)의 차별점은.
A : “CBDC는 현금의 디지털 쌍둥이이자, 공공재다. 유럽은 결제 환경이 초대형 클라우드 기업뿐 아니라, 비자ㆍ마스터카드, 애플ㆍ구글페이 등 미국 회사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 2~3년 안에 도매ㆍ소매용 솔루션, 디지털 유로를 갖게 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는 미국 금융 시스템으로부터 유럽을 더 독립적으로 만드는 프로젝트의 일부로, 매우 중요하다.”
Q : 독일과 한국이 겪고 있는 고령화, 노동력 부족의 해법은.
A : “여성의 근로 확대와 인공지능(AI) 등 기술 활용, 이민 확대를 꼽을 수 있다. 많은 여성을 노동시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보육 정책이나 세제 혜택 등이 중요한데 한계가 있다. AI 기술도 어느 정도 격차를 메울 수 있지만, 이 또한 제한적이다. 나는 이민정책을 매우 지지한다.”
Q : 이민자에 대한 편견과 저항이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A : “장애물 중 하나는 언어인데, 분데스방크의 한 부서에서는 공식 언어인 독일어를 포기하고 영어로 말한다. AI 기술도 장벽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된다. 정치권에서는 이민자가 국가의 부를 위해 얼마나 중요한지 끊임없이 설명해야 한다. 사고방식의 전환은 어렵지만, 이것은 마라톤과 같은 일이다.”
Q : 한국에서는 정년을 60세에서 65세로 높이려는 움직임이 있다.
A : “독일의 정년은 67세로 한국보다는 약간 더 높다. 정년연장은 기대 수명과 연결돼야 한다. 독일 남성의 기대 수명은 79세, 여성은 83세다. 독일 시나리오에선 69세를 적절한 정년 연령으로 본다. 더 오래 일하는 사람이 정신적으로 더 건강하다. 세대 간 문제이기도 한데, 젊은 세대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오래 일해야 한다. 이것이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