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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 '피켓팅' 불만에도 공급 못 늘리는 이유, '선로'에 있었다

중앙일보

2025.12.07 12:00 2025.12.07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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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여의도에서 근무하는 직장인 이모(32)씨는 친구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주말 광주행 기차표를 예매하려다 곤욕을 치렀다. 이씨는 “결혼식 2주 전에 KTX 표를 예매하려고 보니 서울 출발 티켓은 이미 매진된 상태였다”며 “하루종일 ‘무한클릭’을 한 끝에 겨우 취소표를 잡았다”고 말했다.

정근영 디자이너
고속열차 ‘티켓 전쟁’이 가열되고 있다. 연말연시 기차표 예매를 앞두고 온라인에서 ‘피켓팅(치열한 예매 ) 성공하는 법’ ‘매크로(특정 작업 자동으로 반복하는 프로그램) 써서 티켓 예매하는 법’ 등이 공유될 정도다.

7일 코레일과 에스알(SR)에 따르면 올해 연말연시 열차표(이달 30일~1월 4일)는 오는 15일과 16일 오전 10시부터 판매된다. 15일에는 경부·경전·중앙·동해선, 16일엔 그 외 호남·전라선 등 표 예매가 가능하다. 연말과 명절 예매 사이트 ‘먹통’ 사태가 반복되자 올해 말 기차표도 명절처럼 지역을 분산해 티켓을 팔기로 한 것이다. 오는 30일 이후 중앙선ㆍ동해선에서 KTX이음과 ITX마음 운행이 확대되는 것에 맞춰 시스템에 과부하가 걸리는 걸 예방하려는 조치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런 노력이 무색할 정도로 여객 수요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KTX·SRT 여객 수는 1억787만4000명으로 2022년(8792만4000명)보다 22.7% 급증했다. 올해 상반기도 5825만 명으로 지난해보다 1.6% 많았다. 직장·학교·병원 등이 수도권에 집중되면서 이동 수요가 늘어난 데다, 외국인 이용객까지 급증하면서 열차표 품귀 현상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올해 상반기 외국인 철도 이용객은 284만 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3.4% 늘었다.

현재 고속철도 좌석 공급량은 KTX 하루 평균 20만2000석가량, SRT는 5만2000석 수준이다. 입석 이용 고객으로 인한 혼잡도(공급 대비 수요)는 KTX 106%, SRT 132%에 이른다. 그럼에도 좌석 공급을 쉽게 늘릴 수 없는 건 ‘평택~오송’ 구간 선로가 포화 상태이기 때문이다. 경부선과 호남선 열차가 만나는 구간이라 이곳에서 병목 현상이 일어나면 앞뒤로 수많은 열차가 연달아 지연될 수 있다. 새 객차를 들여와도 추가로 투입하기 어려운 이유다. 추가 선로는 2028년이 돼야 완성될 전망이다.

14년째 동결 중인 열차표 가격이 구조적인 문제를 악화시킨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동 시간 대비 가격이 저렴한 고속철도로 고속·시외버스 이용객까지 쏠리고 있어서다. 국가데이터처의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지난달 시외버스 요금(소비자물가지수 기준)은 10년 전인 2015년 11월 대비 22.6% 상승했지만, 같은 기간 열차 이용료의 상승률은 -2.9%에 그쳤다. 정부의 물가 상승 억제 정책으로 인해 2011년 12월 이후 매번 운임비를 인상하지 못한 결과다.

지난 3월 서울역 승강장에서 한 승객이 KTX 산천 열차에 탑승하기 위해 뛰어가고 있다. 뉴스1



티켓 당일 취소, 매크로로 티켓 구입 시도 급증

좌석 수가 부족한 탓에 미리 예매하고 취소하는 건도 급증하고 있다. 평일엔 출발 3시간 전까지 취소 수수료를 내지 않는 점을 악용했다. KTX 승차권 반환(취소) 건수는 2021년 1867만3000건에서 지난해 4494만9000건으로 140.7% 늘었다. SRT도 2021년 871만8000건에서 지난해 2134만6000건으로 144.8% 많아졌다. 코레일과 에스알에 따르면 당일 취소율은 11~12%가량이다.

김주원 기자
코레일과 에스알은 ‘매크로와의 전쟁’도 벌이는 중이다. 에스알에 따르면 매크로를 써서 승차권을 구매하다가 IP(사용자의 인터넷 식별번호) 주소가 차단된 건수가 올해만 2만4202건(10월 17일 기준)에 이른다. 2022년 차단 프로그램을 도입한 이후, 2023년 7797건에서 지난해 2만5962건으로 치솟았다. 코레일도 하루 평균 1만6000건을 차단하고 있다고 밝혔다. 중고거래 플랫폼에는 매크로를 이용해 티켓을 대리해서 구매해주고 수수료를 받는 아르바이트까지 등장할 정도다

에스알은 내년에 차세대 SRT를 도입하면 현재보다 하루 2만 석가량 운영 좌석을 늘릴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또 정부가 코레일과 에스알 통합을 추진하는 가운데, 이를 통해 노선을 효율적으로 이용하면 하루 최대 1만6000석을 증량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다만 조정과 증편에 시간이 걸리고, 좌석 수를 늘린다 해도 급증하는 수요를 따라갈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강경우 한양대 교통물류공학과 명예교수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논의가 필요하다”며 “시간대별 요금 차등안은 물론 근본적으로는 요금 인상까지 여러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정은혜([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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