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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중앙] CT 찍고 적외선 조사…문화유산 아픈 곳, 숨은 보물 찾아 가치 되살려요

중앙일보

2025.12.07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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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내는 물론 외국 관광객까지 합세해 박물관을 찾는 발길이 끊이지 않으며 입장시간에 맞춰 오픈런을 하고 줄이 길게 늘어서는 경우가 많은데요. 박물관은 고고학적 자료와 역사적 유물, 예술품, 문화적·학술적 의의가 깊은 자료를 수집·보존하고 전시해 일반에 공개하며 학술 연구와 사회 교육에 기여하는 곳이죠.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들은 오래된 데다 땅속·물속 등에서 발굴되는 경우가 많아 부서지거나 빛바랜 채로 발견되기 십상입니다. 그럼 어떻게 우리들은 깨끗하게 세척·보수돼 제 모습을 되찾은 유물을 만날 수 있는 걸까요. 우리 문화유산을 지켜온 비법, 보존과학에 관한 궁금증을 풀기 위해 소중 학생기자단이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센터를 찾았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센터에서 문화유산을 과학적으로 연구하고 체계적으로 보존해 우리 문화의 가치를 미래 세대에 전하는 기술인 보존과학에 관해 알아본 김연우·김이재·이현우(왼쪽부터) 학생기자.
국립중앙박물관이 용산 이전 20주년을 맞아 지난 10월 28일 개관한 보존과학센터는 문화유산을 과학적으로 연구하고 체계적으로 보존해 우리 문화의 가치를 미래 세대에 전하기 위해 세워졌습니다. 총 연면적 9196㎡ 규모의 지하 1층, 지상 3층 건물에 첨단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문화유산의 재질 분석, 손상 원인 규명, 보전처리와 복원, 환경 관리 등 종합적인 연구를 수행하기 위한 공간이 가득 들어섰어요. 토기·자기부터 금속·목재·석재·벽화·서화·직물 등 재질별 보존처리실은 물론, 3D형상분석·방사선조사실, 스마트 원격진단실, 보존과학 아카이브 등이죠. 재질별 보존처리실을 살짝 둘러본 소중 학생기자단은 서화실의 거대한 좌식 테이블을 보고 놀랐는데요. 서서 작업하는 것보다 앉아서 작업할 때 손 닿는 범위가 넓어 효율적이라 좌식으로 작업하며, 최대 10m 크기 그림까지 복원작업을 할 수 있다고 해요. 또 보존과학센터 개관을 기념하는 특별전 ‘보존과학, 새로운 시작 함께하는 미래’를 센터 1층 전시실에서 내년 6월까지 선보입니다.
보존과학센터의 재질별 보존처리실 중 서화실 모습. 이곳에서는 최대 10m 크기 그림까지 복원작업을 할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김연우·김이재·이현우 학생기자가 보존과학에 대한 궁금증을 풀기 위해 특별전 기획에 참여한 양석진 학예연구사(이하 연구사)와 만났어요. 보존과학이란 용어부터 낯설어하는 소중 학생기자단에게 양 연구사는 “쉽게 설명하면 말 그대로 문화유산을 ‘보존’하기 위해 ‘과학’을 활용해 처리하는 것”이라고 알려줬죠. “모든 물질은 썩고 녹슬고 부서지죠. 그런 걸 좀 더 느리게 진행될 수 있게 약해진 부분을 과학적으로 강화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번에 보존과학센터를 개관하며 박물관 보존과학 50년 역사를 돌아보고 현재 모습과 미래까지 아우르며 보존과학의 방향을 제시하는 전시를 마련했죠. 먼저 과거 이야기를 살펴볼까요.”

우리나라 보존과학은 어떻게 발달했을까
우리나라의 보존과학은 1976년, 국립박물관 보존기술실이 만들어지며 본격적으로 체계화됩니다. 보존과학이라는 용어조차 생소하던 시절, 낡은 책상과 몇몇 도구만 갖춘 작은 사무실이었던 초창기 보존기술실의 모습이 ‘보존과학자의 방’이라는 이름으로 재현됐죠. 책상 옆에는 한 연구자의 영상이 나오고 있었어요. “우리나라 보존과학의 역사에서 이른바 시조라고 할 수 있는 고(故) 이상수 전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실장의 생전 모습을 인공지능(AI)으로 복원한 거예요. 이분과 더불어 이오희 한국문화유산보존과학회 명예회장 두 분이 처음으로 보존기술실에서 업무를 시작하셨죠.”
보존과학센터 개관 기념 특별전 ‘보존과학, 새로운 시작 함께하는 미래’를 찾은 김연우·김이재·이현우(왼쪽부터) 학생기자가 1976년 처음 만들어진 국립박물관 보존기술실을 재현한 ‘보존과학자의 방’을 둘러봤다.
초기 연구자들의 책상에는 국보인 ‘도기 기마인물형 명기(기마인물형 토기)’와 그 조각들, 그리고 막대와 이쑤시개가 놓여 있었죠. 소중 학생기자단이 그 용도를 궁금해하자 양 연구사는 “초창기에는 이쑤시개로 깨진 토기 조각이나 금속 조각의 이물질을 제거했다”고 설명했죠. “금속으로 된 뾰족한 도구도 많지만, 금속 도구의 경우 잘못하면 유물에 흠집을 내거나 손상할 수 있어서 이쑤시개로 살살 작업했어요. 금속 도구를 쓰더라도 앞부분을 나무로 만든 걸 사용하고 이쑤시개 말고 대나무칼도 쓰죠. 사실 각종 첨단 기술과 기구를 사용하는 지금도 필요한 경우 이쑤시개를 사용한답니다.”

현우 학생기자는 “국립중앙박물관 유물은 전부 이곳 센터에서 보존처리를 하나요”라며 보존과학센터의 역할에 대해 질문했어요. “맞습니다. 50여 년 전 보존기술실로 시작해 보존과학실, 보존과학부 등으로 연구 분야 및 규모를 키워오다 보존과학센터를 세우게 된 거예요. 여러 전시에 필요한 유물부터 상태가 좋지 않은 유물을 선별해 보존처리하고, 소속 국립박물관은 물론 우리 문화유산을 보유한 국외 박물관과도 협업하죠. 이를 위해 디지털 원격지원에 필요한 데이터 구축 작업이라든지, 회화 등 조명을 오래 받으면 훼손될 수 있는 유물을 전시할 때 요새 많이 쓰는 LED 조명을 어느 정도 사용하면 괜찮은지 그런 연구도 하고 있어요.”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의 역사를 보여주는 1980년대 보존기술실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책상 주변에는 유물을 상세히 관찰하기 위해 근접 사진을 촬영하기 위한 접사대, 고압의 압축 공기로 유물에 붙은 흙·녹 등의 이물질을 제거하는 샌드블래스터, 금속 유물 강화에 사용하는 진공함침기, 온습도 기록계 등이 놓여 있었죠. 양 연구사는 그중 적외선 조사장비를 가리켰죠. “여기 전시된 장비는 보통 2000년대 이전 사용한 것들인데요. 이건 저도 써본 적 있어 아마 2003~2005년 정도까지 사용했을 거예요. 그림이나 글이 적힌 목간 등에 적외선을 비추면 가시광선이 통과하지 못하는 채색층이나 이물질을 투과·반사돼 나오는데요. 먹이나 목탄 등이 쓰인 탄소 입자로 이루어진 부분은 적외선을 거의 흡수해 검게 나오죠. 이를 통해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서화의 밑그림이나 목간에 쓰인 묵서 문자 등을 관찰할 수 있어요.”
보존처리자의 계명
-장인의 입장에서 당시 장인처럼 작업한다.
-작업 전 작업 내용과 결과를 충분히 검토한다.
-복원에 왕도는 없으므로 순리대로 진행한다.
고(故) 이상수의 강의 노트(1995년) 중에서
‘보존과학자의 방’ 맞은편에는 우리나라 보존과학의 역사가 간략한 연표와 사진으로 표시됐어요. 그 아래에는 실제로 유물 보존처리 작업에 참여한 사람들이 작성한 노트가 전시됐죠. 양 연구사는 그중 5~6세기 삼국시대 신라의 고리자루칼을 예로 들었어요. “이 칼은 1921년 조선총독부에 의해 발굴된 경주 금관총에서 출토된 건데요. 2011~2013년 보존처리 과정에서 칼집 장식의 이물질과 부식물을 제거하면서 녹에 덮여 보이지 않던 ‘이사지왕(尒斯智王)’ 등의 글자가 확인됐어요. 그때까지 고신라 무덤에서 왕의 이름이 확인된 적이 없었기에 매우 중요한 발견이었죠.”

소중 학생기자단은 붓으로 섬세하게 작업하는 사진과 처리 전 상태를 묘사한 글·그림이 적힌 노트를 번갈아 보며 “저렇게 복잡한 유물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그리는 것도 어려워 보인다”며 혀를 내둘렀어요. 이재 학생기자는 “땅속이나 물속에 오랜 시간 묻혀 있던 유물을 어떻게 다시 깨끗하게 복원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며 “그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뭔지” 알려달라고 했죠.
양석진(오른쪽) 학예연구사가 소중 학생기자단에게 우리나라 보존과학의 역사에 대해 설명했다.
“금속·목재·유리·도자기·책·그림 등 다양한 종류의 문화유산이 있고 재질도 다 달라 각각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선생님이 다 따로 있어요. 제가 담당하는 목재를 예로 들면, 우리나라 토양 성질상 나무로 만들어진 물건은 땅속에 묻으면 대부분 썩어요. 지금 남은 목재 유물들은 보통 바다에서 인양하거나 호수·늪 등지에서 꺼낸 겁니다. 그럼 물로 가득 찬 상태인데, 이걸 그대로 두면 건조돼 다 쪼그라들고 갈라져버리는 데다 원래대로 되돌릴 수도 없죠. 그래서 물 대신 단단하게 형태를 유지해줄 물질을 넣는 강화처리 작업을 해요. 이때 그 농도와 비율을 잘 맞춰서 천천히 작업해야 하는데 무척 어렵고 오래 걸리죠. 이게 끝나야 부서진 부분을 붙이고 복원하는 작업을 할 수 있어요. 목재는 또 세척할 때도 붓이나 면봉 등으로 아주 조심스럽게 살살 해야 하고, 부서진 부분이 결대로 떨어졌어도 잘 안 맞는 편이라 조각 맞추기도 쉽지 않죠. 방금 본 진공함침기는 금속 재질 문화유산에 사용하는데요. 금속은 감압·진공한 뒤 강화제를 넣으면 바로 강화되고 보호 코팅되는데 목재는 감압하면 쪼그라들기 때문에 그런 기구를 사용할 수가 없어요.”

“그럼 보존 처리를 하는 데 평균적으로 목재 유물이 가장 오래 걸리나요?” 연우 학생기자가 묻자 양 연구사가 고개를 끄덕였어요. “유명한 고려시대 무역선인 신안 해저선의 경우 배의 형태를 되돌리는 데 20년 정도 걸렸고요. 제가 여기 오기 전에 2005년에 창녕 송현동 고분군에서 발굴한 목관을 보존처리하고 있었는데, 이 작업이 아직도 안 끝났답니다. 이 목관의 경우 고분 근처가 개간되며 봉분이 깎여나갔고, 거기서 농사를 짓다 보니 고분 안으로 물이 스며들어 남을 수 있었죠.”
문화유산 보존 연구와 교육, 현장 지원을 아우르는 종합 보존과학 허브로 나아갈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센터 전경.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 속 다양한 첨단기술
이어 ‘빛으로 보는 보존과학의 세계’로 들어갔습니다. 앞서 살펴본 적외선 조사장비처럼, 보존과학에서는 다양한 빛을 활용해요. 빛은 눈으로 볼 수 있는 가시광선과, 그보다 긴 파장의 적외선, 그보다 짧은 자외선·엑스선·감마선 등의 종류가 있는데요. 보존과학에는 그중 엑스선이 가장 많이 활용됩니다.

“소중 학생기자단 여러분이 넘어지거나 운동하다 뼈를 다치면 엑스레이를 찍죠. 그때 사용하는 엑스선으로 유물도 관찰할 수 있어요. 엑스선은 자외선보다 파장이 짧아 물질을 투과하는데, 해당 물질의 밀도와 두께에 따라 투과 정도가 달라져 이를 통해 유물 내부 구조나 상태 등을 확인하는 거죠. 최근에는 컴퓨터단층촬영(CT)법을 통해 수많은 2차원 엑스선 이미지를 재구성해 3차원으로 볼 수 있게 만들기도 해요. 예를 들어 청자 항아리라면, 눈으로 겉모양은 관찰할 수 있지만 그 안쪽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깨보지 않으면 알 수 없잖아요. 그런데 엑스선을 활용하면 그 유물의 재질부터 내·외부 구조와 제작 방법, 어디가 두껍고 얇은지, 균열은 어떻게 분포하는지, 수리했는지 여부 등을 비파괴적으로 정밀하게 조사할 수 있어요.”
고구려 개마총 고분 벽화편(맨 위 사진)을 초분광 영상기술로 조사(가운데 사진)해 빛바랜 그림의 원래 색을 추정할 수 있게 됐다. 국립중앙박물관
QR코드를 통해 엑스선·자외선·가시광선·적외선 등의 활용 사례를 살펴본 소중 학생기자단은 초분광 영상기술에 대해서도 알아봤죠.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은 특정 파장의 빛을 흡수하거나 반사하는 고유한 특성(분광지문)이 있는데 이를 활용해 유물 표면의 먹이나 안료 등이 어떤 물질인지 확인하는 겁니다. “분광이란 말이 어려울 수 있는데, 빛을 프리즘에 통과하면 빨주노초파남보의 스펙트럼으로 나타나는 걸 생각하면 돼요. 초분광은 이를 더 세밀하게 나눈 것으로 가시광선뿐 아니라 적외선 영역도 포함하죠.”

양 연구사는 고구려 벽화무덤 중 개마총의 벽화편과 그 초분광 영상을 가지고 설명을 이어갔어요. “고분벽화는 바깥공기에 노출되면 원래 색을 잃어버려요. 지금 여러분 앞에 놓인 벽화편에는 그림이 그려졌는데, 무슨 색인지 어떤 형태인지 흐릿해서 자세히 보이지 않죠. 그래서 초분광 조사와 성분분석을 해보니까 크게 4가지 색상과 진사·먹 등 각각의 성분이 무엇인지 나왔어요. 개마총은 일제강점기에 처음 조사됐는데, 당시 그린 모사도와 비교해 원래 색을 추정할 수 있게 됐죠. 이는 앞으로 복원 연구는 물론 고구려 벽화 연구에 도움이 됩니다.” 초분광 조사 재현 영상을 보니 948nm에서는 옷 문양과 선이, 1254~2145nm에서는 옷고름·밑단 색이 옷·옷깃 색과 구별되고, 2200nm이 되니 얼굴 윤곽이 나타나는 등 파장대 별로 자세히 관찰할 수 있었어요.
소중 학생기자단이 양석진(오른쪽) 학예연구사와 함께 CT 조사 데이터로 기마인물형 토기의 구석구석을 관찰했다.
앞서 ‘보존과학자의 방’의 책상 위에 놓였던 기마인물형 토기를 CT로 살펴보기도 했죠. 기마인물형 토기를 둘러싼 투명 스크린을 정면과 좌우에서 각각 터치하면 원하는 만큼 확대해서 어떤 구조로 되어있는지 다양한 각도에서 볼 수 있어요. 몸통 부분이 검게 나타나자 양 연구사는 “안쪽이 비어있는 것”이라며 “CT를 통해 액체를 담고 따를 수 있는 구조임을 짐작할 수 있다”고 설명했죠. 희게 빛나는 부분은 접착제로 수리한 흔적이라고 해요. “흙을 반죽해 토기를 만들 때 공기가 많이 들어 있으면 구울 때 팽창해서 터질 수 있죠. 그래서 손이나 발로 계속 흙반죽을 눌러주며 공기를 빼는데 그 작업 흔적을 뒷면에서 기공 분석 데이터로 확인할 수 있어요. 빨간색이 많이 분포한 말 엉덩이 부분은 기공 크기가 큰 거고, 빨강에서 파랑으로 갈수록 공기가 적게 남은 겁니다.”

기마인물형 토기의 구석구석을 살핀 뒤에는 조선시대 목조여래좌상을 통해 CT 조사에서 보존처리까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알아봤어요. 이 불상은 2021년 특별전 ‘조선의 승려 장인’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조사하게 된 유물 중 하나로 육안 조사부터 3D 스캔, CT 조사 등을 진행했죠. 그 결과 보존처리가 필요한 부분과 불상의 구조 및 내부의 복장품을 확인했어요. CT 조사 이미지를 보니 불상의 몸체 안에 책이 겹쳐져 있고 병 같은 물건이 들어 있었는데요. 수정 사리병과 후령통·오보병 및 『묘법연화경』 등의 경전, 향목 등의 유기물, 직물류·광물·금속 등 총 253건의 복장품이 나왔죠. 불상에서 복장품을 꺼내고 재질별로 보존처리하며 금박이 벗겨진 부분을 섬세하게 복원하는 과정은 영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 목조여래좌상을 통해 CT 조사에서 보존처리까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여러 이미지와 영상을 보며 알아봤다.
현우 학생기자는 “옛날에 복원해서 기술이 발전한 지금이라면 더 잘했을 것 같아 아쉬운 유물이 있을 것 같다”며 “보존처리 분야에서 과거와 비교해 가장 좋아진 점은 무엇인지” 질문했죠. “지금 여러분이 살펴봤듯 CT 조사나 초분광 영상 등 기술 발전으로 비파괴 조사가 늘어났고, 몰랐던 복장품을 발견하기도 해요. 과거 보존처리 관련해서 가장 널리 알려진 예로 익산 미륵사지 석탑이 있죠. 창건 당시의 정확한 원형은 알 수 없지만, 9층으로 추정되며 절반가량 붕괴돼 6층 일부 정도만 남아 있었는데요.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무너진 부분에 콘크리트를 보강했죠. 당시 최신 기법으로 돌과 유사하고 튼튼해서 그렇게 보존처리를 한 건데, 지금 우리들이 보기엔 왜 그랬을까 더 잘할 수 없었을까 싶잖아요. 보존처리는 언제나 지금 현재에 최선의 선택을 합니다. 앞으로 더 좋은 기술이 나오고 더 좋은 방법이 생길 걸 알지만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어요.”

미륵사지 석탑은 콘크리트 노후화와 구조적 불안정이 우려돼 2000년대, 석탑의 역사적 가치 보존과 구조적 안정성 및 진정성 확보를 위해 국제적인 문화유산 보존원칙에 기초해 보수정비안을 만들어 체계적으로 조사·연구해 수리·복원했어요. 7층 이상의 원형을 입증할 수 있는 근거가 확인되지 않았기에 남아있는 6층까지만 수리하고, 원래 기법과 재료를 최대한 보존·활용하며 현대적 기술은 최소한으로 썼죠. 1999년 해체 수리가 결정된 후 2001년 해체를 시작해 발굴조사·보존처리·구조보강 등을 거쳐 2017년 조립을 마치고 주변을 정비해 2019년에 일반 대중에 공개됐습니다.
보존과학센터의 재질별 보존처리실 중 금속실 모습. 부식으로 인해 훼손된 금속유물의 제 모습을 찾아주는 곳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어떤 유물이나 유적의 경우 ‘흠집까지 역사’라는 말을 하던데, 그런 흔적을 지우지 않고 보존하는 이유는 뭔가요?” 이재 학생기자의 질문에 양 연구사는 “그런 흔적 자체로 역사이기 때문”이라고 했어요. “도자기를 보면 거미줄처럼 미세하게 금 간 것처럼 보이는 빙열이 있고, 금속의 경우 현대의 것처럼 빛나지는 않죠. 완전히 깨끗하게 만들 수도 있고 번쩍번쩍 광낼 수도 있지만 그 유물의 역사와 가치이기 때문에 다 그대로 보존하는 거예요.”

디지털 기술 기반으로 발전하는 보존과학
1924년 경주 식리총에서 발굴된 금동신발은 그동안 상태가 좋은 화려한 바닥판만 전시되고 측면 조각들은 복원되지 못한 채 별도로 보관하고 있었는데요. 그 원형을 복원하기 위해 2022년부터 3D 스캔, 현미경 분석, CT 조사 등을 진행했죠. 그 자료를 일제강점기 발굴보고서와 유리건판 사진 등과 디지털로 병합해 사라진 부분을 일부 추정 복원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소중 학생기자단은 100년 만에 완전한 형태를 갖춘 식리총 금동신발 재현품을 360도로 관람했죠. 또 전시된 이미지로 디지털 복원 전후 모습을 비교해보고, 신발에 있는 상서로운 동물과 새·용 등의 무늬도 자세히 살폈어요.

“남아있는 측판 편을 참고해서 반대편 부분을 재현했고, 바닥판도 남아있는 스파이크 위치를 활용해 사라진 부분을 추정 복원하고 주조 성형과 U자형 고리 구조 등 제작기법을 새롭게 규명할 수 있었죠. CT 자료와 기존 자료를 함께 체크하며 확인했고요. 이러한 디지털 복원은 앞으로 계속 늘어날 겁니다.”
디지털로 복원해 100년 만에 완전한 형태를 갖춘 식리총 금동신발 재현품을 살펴보는 소중 학생기자단.
연우 학생기자는 “이렇게 부서지고 깨진 유물을 복원하고 보존해야 하는 이유와 보존과학센터의 목표”를 궁금해했죠. “부서진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을 수 있지만, 완전한 형태로 만들면 그 유물의 가치와 의미를 더 잘 알 수 있고 일반 관람객 또한 훨씬 쉽게 이해할 수 있어요. 없는 부분은 마음대로 만드는 게 아니고 식리총 금동신발처럼 각 분야 전문가들이 역사적 고증을 통해 유사한 형태를 찾아보고 3D 스캔과 현미경·CT 조사 등의 기술도 활용해서 관련 자료를 종합해 복원하죠. 우리나라 유물을 모두 잘 보존처리할 수 있도록 국내뿐 아니라 국외에도 지원하고, 앞으로도 계속 잘 보존되도록 연구 여건을 마련하는 등 할 일이 많네요.”

보존과학센터는 50여 년간 축적된 보존 데이터를 통합하여 인공지능(AI) 기술과 결합한 ‘디지털 보존과학 시스템’을 구축 중입니다. 유물 연구는 물론, 손상도 측정 및 보존처리, 최적의 모델링 기술을 이용한 가상 복원, 객관적인 가치 평가, 스마트 원격 진단 등이 가능한 플랫폼으로 활용하고자 하죠. 이외에도 기후변화에 따른 환경 모니터링 및 대응 연구들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예정이고요. 소중 학생기자단은 영상을 통해 디지털 보존과학 시스템을 살짝 엿봤어요.
상태가 좋은 바닥판(맨 위 사진)만 전시되던 식리총 금동신발을 3D 스캔, 현미경 분석, CT 조사 등을 통해 일부 추정 복원하는 데 성공했다.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자가 되려면 어떤 공부를 해야 하고, 또 전망은 어떤가요.” 이재 학생기자의 질문에 양 연구사는 “유물의 배경을 파악하기 위한 역사적 지식, 약품 등을 다뤄야 해서 화학적 지식, 보존처리 작업에 필요한 미술적 감각과 손재주도 있으면 좋다”고 했죠. “CT 조사 자체도 재밌고, 보존처리를 마치고 유물이 전시돼 많은 사람이 관람하고 뭔가 느끼고 가는 그런 모습을 보면 뿌듯하죠. 조사·연구를 통해 남들이 모르는 걸 제일 먼저 알게 되고 그게 의미가 큰 경우, 또 그런 걸 아는 것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일반 대중에게 알리는 역할을 한다는 것도 보람이 큽니다. 나라의 보물을 다루고 소개하는 이런 직업은 흔치 않고 아무나 할 수 있는 직업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앞으로 기술 발전에 따라 보존과학도 더 발전할 가능성이 큽니다. 소년중앙 독자 또래 어린이·청소년 여러분이 자주 박물관에 와서 문화유산에 관심 갖고 궁금한 점 생기면 질문하고 그러면 더 좋을 것 같아요.”
동행취재=김연우(경기도 위례초 6)·김이재(서울 아주중 1)·이현우(인천 중산초 4) 학생기자
소중 학생기자단 취재 후기
유물은 우리에게 과거의 역사를 보여 줄 수 있는 가치 있는 물건입니다. 그건 유물을 복원하는 일도 충분히 가치 있다는 뜻이기도 하죠. 저는 이번 보존과학 취재를 기회로 유물을 보존하고 복원하는 방법을 자세히 알 수 있었습니다. 제가 취재하고 배운 여러 가지 유물 복원 방법 중 저는 유물을 파괴하지 않으며 유물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는 비파괴 관련 기술이 특히 인상 깊었습니다. 덕분에 보존과학에 대해 더 관심을 갖게 됐어요. 소중 친구 여러분도 보존과학센터에 방문해 보존과학에 대해 한번 알아보세요.
-김연우(경기도 위례초 6) 학생기자

‘보존과학’이라는 말을 예전에 들어본 적 있어 이번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센터 취재가 더욱 흥미로웠습니다. 다양한 기록물을 통해 우리나라 보존과학의 역사와 처리 방법에 대해서 알 수 있었고 보존과학 담당 학예연구사 선생님을 만나 가장 궁금했던 유물 재질별 처리법에 대해서 자세히 알게 됐죠. 특히 선생님이 담당하는 목재 분야는 조각 맞추기가 굉장히 까다롭고 오랜 시간에 걸린다는 점이 기억에 남았어요. 보존과학을 자세히 배울 수 있어서 유익한 시간이었고 유물 복원에 참여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답니다. 유물은 곧 보물이에요. 미처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던 우리나라의 많은 유물들이 복원되고, 훼손돼 가는 유물들이 보존과학의 손길로 다시 살아나기를 바랍니다.
-김이재(서울 아주중 1) 학생기자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센터 취재를 통해 진공항침기·적외선 조사장비 등 문화유산 보존에 사용한 장비를 보고 보존작업에 사용되는 여러 과학기술을 만날 수 있었어요. 세월이 오래되어 지워진 그림 등은 초분광 영상을 통해 알아내고요. 병원에서 쓰는 CT를 활용해 불상 등의 안에 숨겨진 보물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평소 집에 있는 40년 된 아빠의 책은 누렇게 변했고 종이도 으스러지는데, 박물관에 있는 백 년도 천 년도 넘은 문화유산들이 어제 만든 것처럼 멀쩡한 것이 신기했었는데요. 이번 보존과학센터 취재를 하면서 그 비밀을 알게 되어 너무 좋았습니다. 취재하는 2시간이 짧게 느껴질 만큼 재미있었어요.
-이현우(인천 중산초 4) 학생기자











김현정([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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