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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중앙] 시대 초월한 걸작 65점 따라 600여 년 미술사 시간여행

중앙일보

2025.12.07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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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작품은 특정 시대의 사회·문화·철학·종교적 배경을 반영하므로 이와 관련한 배경지식이 없다면 흥미가 떨어지죠. 그래서 우리와 다른 철학과 역사를 배경으로 한 서양미술을 제대로 즐기려면 작품이 만들어진 역사와 문화적 배경을 이해하고 나만의 방식으로 해석하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서양미술은 고대 미술의 이성과 조화에서 시작해 중세 미술의 종교적 상징성을 거쳐, 르네상스의 인본주의적 재탄생에 이르기까지 작품의 특징이 계속해서 변화해 왔죠. 이후 바로크·로코코의 극적이고 화려한 표현에 이어 신고전주의·낭만주의·사실주의를 거치며 600여 년간 다양한 변화와 시도를 통해 보는 예술에서 생각하는 예술로 확장됐습니다.

이러한 서양미술 변화의 거대한 궤적을 한자리에서 조망할 수 있는 전시 '르네상스에서 인상주의까지: 샌디에이고 미술관 특별전'이 오는 2월 22일까지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세종미술관에서 열려요. 2026년 100주년을 맞는 미국 서부 대표 미술관 샌디에이고 미술관(San diego Museum of Art)의 상설 소장품 65점 중 서양미술사를 대표하는 거장들의 걸작이 망라됐으며, 그중 28점은 미술관 개관 이래 한 번도 해외 반출이 이루어지지 않은 작품이라 관심이 집중되고 있죠.
베르나르디노 루이니의 ‘막달라 마리아의 회심(겸손과 허영의 우화)’은 예수를 따르기로 결심한 마리아의 순간을 나타낸 작품이다.
이번 전시는 단순한 명화 감상이 아니라, 미술사 그 자체를 따라가는 시간 여행을 하는 듯합니다. 이상적인 비례와 해부학적 정확성을 통해 인간 중심의 미학을 확립한 르네상스, 감정과 드라마를 강조하며 화면에 역동성을 불어넣은 바로크, 이성의 질서를 추구한 고전주의와 개인의 내면을 드러낸 낭만주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그려내려 한 사실주의, 그리고 찰나의 빛과 색을 탐구한 인상주의까지, 서양미술이 어떻게 변화하고 확장됐는지 보여주죠.

특히 교과서 속에서 만나던 거장들의 작품을 실제로 마주할 수 있어 매력적입니다. 시대를 대표하는 화가들의 시선으로 화면 위에 켜켜이 쌓인 색감과 구도, 그들이 포착한 풍경과 인물은 단순한 이미지가 아닌 ‘시대의 기록’으로 다가오죠. 각 시대의 미적 가치와 철학을 고스란히 담아낸 이번 전시는 '유럽 남부와 북부의 르네상스' '바로크' '로코코에서 신고전주의로' '사실주의에서 인상주의까지' '20세기 모더니즘'에 이르기까지 총 다섯 섹션으로 구성됐어요. 특히 섹션마다 명화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소개하는 '명화의 순간들' 코너가 마련돼 관람객들이 심미안과 안목을 확장하며 전시에 몰입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프란시스코 데 고야가 그린 ‘라로카 공작 비센테 마리아 데 베라 데 아라곤의 초상’은 살짝 벌린 그의 입이 독특한 점으로 평가받는다.
첫 번째 섹션에서 다루는 르네상스는 유럽 중세(14~16세기)시기에 등장한 문화 운동으로 이탈리아 피렌체와 로마, 베네치아를 중심으로 발전했죠. 인본주의가 퍼지면서 시각 예술 역시 합리적인 원근법과 사실성을 추구했고 그 결과 작품 속 인물은 평면적인 형태에서 벗어나 훨씬 사실적으로 표현됐습니다. 회화에 깊이감과 3차원적 환영을 만들어내기 위해 광학적 기법을 실험하기 시작했고요. 이탈리아에서는 인체의 이상적 비례와 기하학적 구도에 집중했는데 그 중심에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있었다고 해요. 그 영향이 베르나르디노루이니에게 이어졌는데, 과거 화려했던 치장을 버리고 예수를 따르기로 생각한 막달라 마리아의 결심을 표현한 '막달라 마리아의 회심(겸손과 허영의 우화)'을 보면 모나리자를 연상시키는 얼굴과 독특한 손짓 등 레오나르도 다 빈치 작품에서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죠. 또 현실적인 풍경과 일상의 사실적 묘사에 주목한 얀 반 에이크, 뒤러, 보스 등 북유럽 작가 작품들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다음 섹션 주제 '바로크'는 정치적·종교적 격변, 경제의 다변화, 그리고 유럽 열강들의 제국주의가 정점에 달한 시기에 생겨난 예술사조로 강렬한 시각 효과가 특징이라고 할 수 있어요. 시각적 강렬함은 정물화·풍속화·풍경화뿐 아니라 종교화 의뢰작에서도 중시됐죠.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화가는 단연 페테르 파울 루벤스로 예술적 재능을 넘어 다국어에 능통한 외교관으로도 활약하며, 서유럽 주요 왕실에서 박식한 예술가로 평가받았죠. 이 섹션에서 주목해야 할 작품은 프란시스코 데 수르바란의 '하느님의 어린 양'입니다. 평온하게 누워있는 어린 양은 예수를 상징하며, 후광을 띤 모습이 경건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관람객에게 깊은 공감과 고요한 묵상의 순간을 선사하죠.
클로드 모네의 ‘사이의 건초더미’는 동료 화가와 함께 숲을 찾아 그린 야외 풍경화로, 그의 유명한 건초더미 연작을 예고하는 선구적 작품이다.
이어지는 '로코코에서 신고전주의로' 섹션의 '로코코'는 바로크의 무겁고 종교적인 경향에 반발해 등장한 예술 운동이에요. 세련된 우아함을 강조하며 프랑스 왕실과 마드리드 부르봉 왕가 중심으로 널리 퍼졌죠. 이 시기 상류층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고전 문명과 예술을 직접 체험하는 ‘그랜드 투어(Grand Tour)’가 유행했는데, 이들은 풍경화에 관심이 많았다고 해요. 베네치아의 대표적인 건축물과 궁전의 정밀한 묘사로 명성이 자자했던 베르나르도 벨로토의 '베네치아, 산 마르코 분지에서 본 물로 부두'가 눈에 띕니다. 그랜드 투어 기간 베네치아를 방문한 수많은 영국인 관광객 중 한 명을 위한 기념품으로 제작됐다고 알려진 이 작품은 산마르코 유역에서 부두(Molo)를 바라볼 때 모습을 담았죠. 중앙에는 산마르코 광장과 시계탑이 배치돼 있고 안쪽에는 마르치아나 도서관과 산마르코 대성당(Biblioteca Marciana) 종탑이, 오른쪽에는 도제의 궁전(Doge's Palace)이 웅장하게 펼쳐져 있습니다.

당시에는 풍경화뿐만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데 탁월했던 초상화도 큰 인기를 끌었다고 해요. 프란시스코 데 고야가 그린 '라로카 공작 비센테 마리아 데 베라 데 아라곤의 초상'도 직접 볼 수 있습니다. 이 그림의 특이한 점은 공작 입을 약간 벌려 그림으로써 마치 관객에게 말하는 듯한 모습을 한 건데요. 이러한 착시적 효과는 그 당시 고야가 청력을 상실한 이후 시도한 실험적 방식으로 화제를 모았다고 전해져요. 고대 그리스·로마의 고전적 이상을 되살려 엄격한 균형과 명확한 윤곽을 중시한 신고전주의는 로코코의 화려함에 대한 반발로 생성된 예술 운동이었죠. 고고학적 정확성에 관심을 가진 만큼 당시 조각가가 크게 주목받았는데, 베네치아 출신의 조각가 안토니오 카노바가 바로 그 예입니다. 흰 대리석을 이용한 카노바의 작품들은 기교 면에서 미켈란젤로와 베르니니의 작품에 필적한다고 평가받았죠.
인상파 화가들 모델로 활동하다 영향을 받아 화가가 된 수잔 발라동의 작품 ‘창문 앞에 있는 젊은 여인’.
네 번째 섹션 '사실주의에서 인상주의까지'에는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를 지나 19세기 혁명·산업화 등 사회의 격동을 반영한 작품들이 전시됐습니다. 사실주의는 이상적 주제에서 벗어나 현실의 인간과 노동, 도시와 시골의 일상을 있는 그대로 표현했고 이는 인간 경험의 진실성과 사회적 현실을 예술로 끌어들였죠. 있는 그대로의 것을 재현하는 것보다 작가가 받은 순간적인 인상을 포착·표현한 인상주의에서는 클로드 모네와 ,에드가 드가 등이 유명합니다. 이들은 전통적 구도와 선묘 중심의 회화에서 벗어나 시각적 감각의 자유를 추구했다고 해요.

전시된 클로드 모네의 '사이의 건초더미'는 1865년 젊은 모네가 동료 화가와 함께 숲을 찾아 그린 야외 풍경화로, 그의 유명한 건초더미 연작을 예고하는 선구적 그림으로 평가받아요. 인상주의 대표 작가로 꼽히는 에드가 드가의 '발레리나'는 역동적으로 잘라낸 구도와 활기찬 붓 터치가 돋보이죠. 미국 작가 메리 카사트의 '푸른 보닛을 쓴 시몬느'는 유동적인 붓 터치, 밝은 색채, 그리고 아이의 솔직하고 자연스러운 표정이 특징으로 꼽혀요.

빠른 붓 터치로 찰나의 순간을 포착해 빛과 자연의 인상을 표현하는 데 탁월한 스페인 출신 인상주의 화가 호아킨소로야의 작품 '라 그랑하의 마리아'도 전시됐습니다. 사진처럼 생생하게 대상을 그려내는 섬세함으로 당대에 큰 사랑을 받은 소로야는 스페인뿐만 아니라 미국 회화에 큰 영향을 미친 작가로 1909년 미국 뉴욕에서 열린 전시는 역대 최다 관람객 기록을 세우기도 했죠. 이 작품은 라 그랑하(La Granja)의 왕실 별장에서 자신의 딸을 그린 것으로 당시 딸은 결핵에서 회복 중이었다고 해요.
아메데오 모딜리아니의 ‘파란 눈의 소년’은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며 관객들 시선을 사로잡는다.
마지막 섹션 '20세기의 모더니즘'은 과거의 전통을 거부하고 새로운 실험과 표현을 추구한 운동으로, 과학적 이성과 개인의 주관적 경험을 강조했습니다. 다양한 표현 방식과 양식이 동시에 발전한 이 시기 예술가들은 서로 대립하지 않고 개별적으로 활동했다고 해요. 당시 활동한 파블로 피카소,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등은 빠르게 변화하는 근대 세계를 독자적으로 구축하며 색다른 작품을 선보였죠.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며 관람객 시선을 사로잡는 모딜리아니의 '파란 눈의 소년'은 그의 독특한 예술 세계가 잘 드러난 표현주의 작품으로 유명해요. 특히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물감이 아직 마르지 않은 상태에서 모딜리아니가 남긴 뚜렷한 지문이 발견됐다고 하여 작품 제작 과정의 생생함을 느낄 수 있는 그림으로 관람객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죠. 이번 전시를 통해 서양미술 600년을 빛낸 위대한 거장 60여 명의 걸작과 함께 이상과 현실 감성과 이성이 교차하는 예술의 여정을 경험해 볼 수 있을 거예요.
스페인·미국 회화에 큰 영향을 준 호아킨 소로야가 결핵에서 회복 중인 자신의 딸을 그린 ‘라 그랑하의 마리아’.
'르네상스에서 인상주의까지: 샌디에이고 미술관 특별전'
기간: 2026년 2월 22일까지
장소: 서울시 종로구 세종로 81-3 세종문화회관 세종미술관
관람시간: 오전 10시~오후 7시 40분(입장 마감 오후 6시, 월요일 정상 운영)
입장료: 어린이 1만7000원, 청소년 2만원 성인 2만3000원



이보라([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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