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워싱턴DC 케네디센터에서 열린 월드컵 조 추첨식 프레스룸 현장에서 전 세계 취재진이 조 추첨 결과를 실시간으로 보도하고 있다. 강한길 기자
월드컵의 서막이 오르며 취재 전쟁이 시작됐다.
5일 워싱턴DC 케네디센터에서 진행된 조 추첨식은 축구공 하나를 두고 사실상 전쟁이 시작됐음을 알리는 신호탄과 같았다. 프레스룸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조 추첨식이 끝나자마자 가장 먼저 기자들의 치열한 탐색전이 벌어졌다.
이번 조 추첨식에는 전 세계에서 900명 이상의 기자들이 몰렸다. 미디어 믹스트존에서 각국 감독들을 인터뷰하기 전, 기자들은 자신 국가가 속한 상대국 기자들을 찾아다니며 인터뷰를 하느라 프레스룸은 그야말로 시끌벅적했다.
한국은 개최국 멕시코와 맞붙게 됐다. 방송사 ‘텔레비사’의 마누엘 포르티요 기자는 “우리는 1998년과 2018년 월드컵에서 한국을 이겼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멕시코는 황금 세대가 아니며 예전처럼 스타도 없고 상황도 좋지 않다”며 “홈 이점과 조직력은 장점이지만 개인 능력은 한국이 더 나을 수 있다”고 평가했다.
‘엘 에랄도’의 프란시스코 도밍게스는 “조 추첨 결과를 보니 A조가 매우 복잡한 상황이 됐다”며 “객관적으로 보면 멕시코와 한국이 1위와 2위를 차지할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이번 대회는 월드컵 역사상 처음으로 48개국이 출전한다, 대규모 포맷 확장으로 치러지는 첫 월드컵이라는 점에서, 보는 눈은 더 많아졌다.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조 추첨식인 만큼, 행사를 주최한 국제축구연맹(FIFA)은 장소 대관에도 막대한 비용을 지불했다.
케네디센터 홍보 담당 로마 다라비 부사장은 “이번 행사를 위해 FIFA가 케네디센터 측에 투입한 비용은 스폰서십 및 기부금 명목으로만 740만 달러”라고 말했다.
취재 열기도 뜨거웠다. 이날 수백 명의 기자들은 조 추첨식이 열리기 전 새벽부터 현장에 나와 분위기를 앞다퉈 보도했다.
조 추첨식 당일 워싱턴DC에는 눈이 내렸다. 케네디센터 인근은 행사가 열리기 4시간 전부터 주변 도로가 전면 통제되기 시작했다. 세계 각국에서 몰려든 기자들은 케네디센터 주변으로 차량 진입이 막히자 카메라, 삼각대, 노트북 가방 등을 들고 눈길을 걸어 행사장으로 향했다.
보안 검색도 철저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포함한 각국 정상들이 참석하는 행사다 보니,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보안 요원들이 기자 한 명씩 스크리닝을 하느라 미디어센터 입장 자체가 2시간가량 지체됐다.
프레스룸의 현장은 축구 경기장보다 빠르게 돌아갔다. 기자들은 실시간으로 기사 작성과 본국과의 전화 연결 인터뷰, 생방송 등을 동시에 진행했다.
조 추첨에서 나라 이름이 호명될 때마다 현장에서는 환호와 탄식이 교차했다. 일부 기자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환호성을 지르거나 고개를 숙이는 모습도 보였다. 이날 기자들의 반응에서 카메라 너머 각국 축구 팬들의 반응 역시 엿볼 수 있었다.
조 추첨식은 단순한 축구 이벤트 이상의 자리였다. 조 추첨식은 총성 없는 전쟁인 월드컵이 이미 시작됐음을 보여주는 가장 극적인 첫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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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A조 감독 일문일답
2026 북중미 월드컵의 시계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난 5일 조추첨식이 끝난 직후 홍명보 한국 대표팀 감독을 비롯한 한 조에 속한 멕시코, 남아프리카공화국 감독들은 본지에 조 편성에 대한 평가와 대비 계획을 밝혔다. 다음은 A조 감독들과의 일문일답.
“매 경기 전쟁이라 생각하고 준비”
홍명보 한국 대표팀 감독
홍명보 대한민국 감독
-개막식 날 경기를 치르게 된다.
“소집 후 훈련 기간이 짧다는 점이 아쉽다. 일정이 뒤로 배치됐다면 훈련 시간이 더 길었을 것이다. 매 경기가 전쟁이라는 생각으로 준비하겠다.”
-현지 적응은.
“첫 번째와 두 번째 경기가 해발 1600m 고지대에서 열린다. 세 번째 경기는 매우 습하고 35도 이상의 무더위가 예상된다. 고지대 적응에는 최소 열흘, 길게는 2주 이상이 필요하다.”
-개최국 멕시코와 한 조가 됐는데.
“홈팀의 이점은 실력 이상의 것이 나온다는 점이다. 지금 한국 선수들은 경험과 실력이 높아졌다. 충분히 준비해서 경기하겠다.”
“한국과 일전, 위험한 경기 될 것”
휴고 브루스 남아프리카공화국 감독
-어떤 팀이 강세를 보일 것으로 보나.
“멕시코가 우세할 것으로 본다. 유럽 플레이오프에서는 덴마크가 합류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그렇게 되면 멕시코와 덴마크가 진출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축구는 항상 예상대로 흘러가지는 않는다.”
-한국팀을 평가해달라.
“아는 바가 많지 않다. 앞으로 몇 달 동안 한국 경기를 많이 연구하겠다. 4개월 후쯤이면 어떤 선수를 주의해야 할지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한국과의 대결을 어떻게 전망하나.
“나에게는 완전히 새로운 영역이다. 벨기에가 과거 한국과 맞붙은 적이 있어 조금 알고는 있다. 한국과의 일전은 위험한 경기가 될 수 있다.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한국은 조직력이 뛰어난 팀“
하비에르 아기레 멕시코 감독
-한국은 어떤 상대인가.
”우리는 최근 한국과 비겼다. 서로를 매우 잘 안다. 한국은 언제 만나든지 항상 어려운 팀이다. 선수들이 제 역할을 다하고, 조직력도 뛰어나다. 나는 한국 대표팀의 감독을 매우 좋아한다. 힘든 상대가 될 것이다.“
-A조의 경쟁 구도를 어떻게 보나.
”한국은 터프하고 피지컬이 좋다. 많은 선수가 유럽에서 뛴다. 그 부분을 경계해야 한다. 팀이 규율도 갖추고 있다. 남아공 역시 쉽지 않다.“
-이강인과 인연이 있는데.
”이강인은 내 아들 같은 존재다. 경기가 과달라하라에서 열리는데, 매우 매력적인 도시다. 한국을 환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