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자살예방연구실천네트워크(대표 김현수ㆍ박건우ㆍ이현정, 이하 KASPR)와 조국혁신당 백선희 의원, 별의친구들이 공동 주최한 ‘자살예방 다시 생각하기’ 세미나가 지난 6일 성황리에 개최됐다.
이번 세미나는 최근 10여 년간 한국 자살예방정책이 큰 변화를 이루지 못했다는 문제의식 아래 왜 자살예방이 실패하는지, 그리고 실제로 효과적인 자살예방은 무엇인지를 과학적ㆍ현장적 관점에서 짚어보기 위해 마련됐다.
발표자들은 공통적으로 “중앙집권적 구조, 의료 중심 접근, 선별검사ㆍ경고징후 의존 정책이 오히려 자살예방 효과를 약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는 자살률 감소가 어렵다”며, 지역 기반 맞춤형 모델, 환경 설계(Environmental Design) 중심 국가전략으로의 전환을 촉구했다.
참석자들은 “위험군을 예측해내려는 방식은 구조적으로 한계가 뚜렷하며, 개인에게 예측 실패의 책임을 떠넘기는 방식은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세계자살예방협회(IASP) 한국대표인 박건우 서울대 의생명연구원 교수는 “한국 자살예방은 여전히 ‘불안ㆍ우울’ 같은 진단 중심 접근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하며, “하지만 실제로 더 중요한 것은 심리적 고통(distress)과 자살행동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추는 변화”라고 강조했다. 또한 박 교수는 “자살은 극히 드문 사건이기 때문에 통계적 예측은 필연적으로 실패한다”며, “선별검사나 경고징후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정책은 근본적 한계를 안고 있다”고 말했다.
김현수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한국 사회의 특수성을 지적했다. 그는 “한국은 유명인 자살 보도 이후 자살률이 급격히 상승하는 등 모방자살 효과가 매우 큰 나라”라며, “SNS를 통한 감정 전염, 갈등 확산, 해시태그 기반 위험 정보 공유 등 디지털 환경에 맞춘 새로운 대응 전략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또한 김 교수는 “개인의 회복탄력성만 높여서는 충분하지 않다”며 “사회적 지지 분위기와 지역 안전망을 강화하는 국가·지역 차원의 환경 변화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세미나에서는 자살예방을 심정지 예방 시스템(응급 구조망), 교통사고 감소 정책(환경 설계 기반), 세멜바이스의 손씻기 혁명(원인을 몰라도 효과가 있는 개입 도입) 등 국가적 예방정책 모델에 준해 다뤄야 한다는 의견도 이어졌다.
전문가들은 “자살은 복합적이고 맥락 의존적인 위험행동이기 때문에 개인 치료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며 국가가 구조적ㆍ환경적 개입을 혁신적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참석자들은 한국의 자살예방전략이 오랫동안 제자리걸음을 해온 데 대해 우려를 표했다. 특히 2026년 정부 조직 개편과 예산 재조정을 한국 자살예방정책의 중요한 전환점으로 보고, “지금과 같은 중앙집권형 사업 구조에서 벗어나 지역 중심ㆍ환경 중심ㆍ증거 기반 체계로의 개편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백선희 조국혁신당 의원은 자살예방은 국민의 생명권과 직결되는 문제이며, 더 이상 ‘선별검사 숫자 늘리기’ 같은 형식적 사업에 머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근본적 정책 전환을 위해 국회에서도 적극적인 입법·예산 활동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한편 KASPR 김현수 공동대표는 “당사자ㆍ유가족ㆍ현장 실천가의 목소리를 중심에 둔 새로운 자살예방 생태계가 필요하다”며 "앞으로도 지속적인 공동 논의의 장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