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후(27)가 뛰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오타니 쇼헤이(31)의 소속팀 LA 다저스는 메이저리그(MLB) 내셔널리그 서부지구에 함께 속해 있다. 자연스럽게 두 팀이 맞대결할 기회가 많다. 이정후도 '타자' 오타니의 타격을 여러 차례 봤고, '투수' 오타니와는 한 차례 맞붙어 볼넷을 골랐다. 오타니가 더는 이정후에게 '신기한' 존재는 아니라는 의미다.
이정후는 8일 서울 강남구 호텔리베라 청담에서 열린 2025 일구상 시상식이 끝난 뒤 오타니와 관련한 질문을 받자 "KBO리그에서 뛸 때 국제대회에서 처음 만난 오타니는 그저 신기하기만 했다. 지금은 같은 지구에서 뛰면서 자주 봐서 그런지, 그런 느낌은 조금 덜 하다"면서도 "다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대단한 선수'와 맞붙어야 한다는 각오는 여전히 똑같다. 다들 열심히 노력해서 (오타니를 상대할)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 야구는 내년 3월 WBC에서 국제대회 명예 회복을 노린다. 지난 2023년 대회에선 예선라운드 조 편성이 달라 오타니를 만나지 못했지만, 내년 대회에선 일본과 같은 C조에 속해 있다. 일본 대표팀 이바타 히로카즈 감독은 이미 "WBC에서 오타니를 투수로 기용할 수 있다"고 공표했다. WBC 대표팀 발탁이 유력한 이정후와 오타니가 투타 맞대결을 벌일 가능성이 열려 있다.
이정후도 몸과 마음 모두 WBC를 정조준하고 있다. KBO리그 시절엔 슬로 스타터로 통했지만, 내년엔 WBC가 열리는 3월에 맞춰 페이스를 빠르게 끌어올릴 계획이다. 그는 "페이스라는 게 내가 마음 먹는 대로 맞춰지는 게 아니지만, 그냥 그 시기에 맞춰 열심히 하다 보면 잘 맞을 때도 있고 안 맞을 때도 있다"며 "WBC 대표팀에 뽑힌다면, 중요한 대회를 (정규시즌보다) 먼저 치르게 되는 거다. 최대한 잘할 수 있도록 열심히 몸을 만들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정후는 지난 시즌 MLB 무대에 데뷔했지만, 5월 어깨를 다쳐 시즌을 조기 마감했다. 올 시즌엔 건강한 몸으로 돌아와 150경기에서 타율 0.266, 8홈런, 55타점, 73득점, OPS(출루율+장타율) 0.734를 기록했다. 빅리그 첫 풀타임 시즌으로는 나쁘지 않은 성적. 다만 시즌 초반 돌풍을 일으키다 중반부터 긴 슬럼프에 빠져 아쉬움을 남겼다.
이정후는 "그 어떤 시즌도 선수는 만족하지 못한다. 그래도 최근 수년 간 자주 다쳤는데, 올해는 부상 없이 뛸 수 있어서 좋았다"며 "처음으로 (빅리그에서) 한 시즌을 다 뛰어 보니 나의 좋은 점과 안 좋은 점을 다 알게 됐다. 장점은 더 발전시키고, 부족한 점은 보완하고 싶다는 의지가 생겼다"고 말했다.
보람과 후회가 공존했던 올 시즌은 끝났다. 이정후는 내년 시즌 더 높은 도약을 꿈꾼다. 정규시즌 종료 직후 빠르게 귀국해 타격 훈련에 집중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정후는 "타격할 수 있는 몸이 돼 있을 때 더 훈련하고 싶어서 (비시즌 회복 훈련이 아닌) 배팅 훈련을 꾸준히, 열심히 했다"며 "연습 때는 뭘 해도 잘 되지만, 경기 때 잘하는 게 중요하다. 내년 1월 따뜻한 애리조나로 가서 더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구체적인 내년 목표는 미국으로 다시 출국할 때쯤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다"며 "중요한 건 늘 올해보다 나은 내년을 만드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