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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규의 글로벌 머니] “중국에 포획된 애플”, 트럼프 압박에도 떠날 수 없다

중앙일보

2025.12.08 07:20 2025.12.08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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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작 『애플 인 차이나』 저자 스티브 맥기 FT 기자 인터뷰
강남규 국제경제 선임기자
미·중 갈등이 최고조다. 지정학적 갈등만이 아니다. 경제 부문에서도 대결이 치열하다. 이런 두 나라 사이에 낀 한 기업이 있다. 바로 정보기술(IT) 혁신의 아이콘 미국 애플이다. 글로벌 미디어는 애플 신제품에 반영된 화려한 혁신을 주목한다. 그런데,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의 미국 샌프란시스코 특파원 스티브 맥기는 애플의 화려하지 않은 이면을 추적했다. 아이폰 등이 어디서 어떻게 생산되고 있는지를 들여다봤다. 그 결과가 최근 펴낸 『애플 인 차이나(Apple in China)』(사진)다. 맥기는 책에서 “애플이 중국의 덫에 걸렸다”고 진단했다. 무슨 의미인지를 중앙일보가 화상 인터뷰를 통해 직접 들어봤다.

자체 생산공장이 없는 애플
중국의 저임금·저인권에 중독
특히 일용 노동자 의존도 커
인도는 중국만큼 일손 공급 불가

애플, 중국에선 을(乙)
애플은 중국에서도 큰소리치는가.
A : “중국에서 애플의 위상은 시진핑(習近平)이 국가주석에 오른 2013년 이후 바뀌었다. 이전까지는 애플이 갑(甲)의 지위를 누렸다(took the upper hand). 그 시절 시장경제 혁신의 상징인 아이폰을 만드는 애플은 건들 수 없는 글로벌 기업이었다. 애플은 중국의 저임금·저복지·저인권을 활용해 가장 성공적인 결과를 거뒀다. 중국에서 아이폰을 값싸게 만들어 많은 이윤을 챙긴 것이다.”


Q : 그런 애플의 위상이 시진핑 집권 이후 어떻게 됐나.
A : “중국 언론이 기업의 비리와 문제점 등을 비판하기 시작한 때는 1990년대 후반부터다. 불량식품을 만들어 파는 자국 기업을 먼저 거세게 비판했다. 그런데 2010년대엔 외국 기업도 비판하고 나섰다. 2012년 미국 맥도널드와 프랑스 유통업체 까르푸가 위생 문제로 지적받았다. 이듬해인 2013년에 표적이 된 외국 기업은 애플이었다. 그해 중국 관영 매체인 CC-TV는 애플이 중국 소비자들을 차별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해외에서는 고장 난 아이폰을 새 제품으로 교체해 주면서 중국에서는 재생 부품으로 수리해 준다는 내용이었다. 보도 이후 중국 정부가 나섰다. 결국 팀 쿡 최고경영자(CEO)가 CC-TV 사태 이후 18일 만에 중국어 사과 편지를 내놓아야 했다. 그런데 이는 시작에 지나지 않았다.”

390조원짜리 달래기

Q : 무슨 말인가.
A : “중국에서 미디어를 총괄하는 국가신문출판광전총국이 2016년 아이튠스와 아이북스 스토어 서비스를 막았다. 서비스가 시작된 지 반년만이었다. 애플이 중국 기업을 끼지 않고 단독으로 서비스했다는 게 이유였다. 다급해진 쿡은 중국 권력자를 찾아가 2700억 달러(약 394조원) 정도를 중국에 투자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투자 덕분에 ‘중국제조 2025’를 계획하고 추진할 수 있었다.”

중국제조 2025는 IT 등 10대 전략 산업에서 선진국과의 격차를 줄여, 중국이 ‘세계의 공장’에서 2025년까지 ‘제조 강국’으로 변신하기 위한 전략이다. 맥기에 따르면 쿡이 약속한 2700억 달러가 일본이 1979~2007년 사이에 한 중국 투자 300억 달러나 2차대전 직후 미국이 서유럽 부흥(마셜플랜)에 쓴 1300억 달러(2016년 달러가치 기준)보다 훨씬 많다.


Q : 이런 애플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좋아할 리가 없는데, 트럼프-애플 사이에 갈등은 아직 표면화하지 않고 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질문이다. 『애플 인 차이나』 5장엔, 쿡이 미국 워싱턴에서 어떤 식으로 플레이하는지가 설명돼 있다. 쿡은 시진핑이 주석이 된 2013년부터 중국 베이징에서 권위주의 정부와 거래해 왔다. 그 과정에서 위싱턴의 권위주의 정부(트럼프 행정부)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를 터득했다.”

“비밀스러운 이유”

Q : 영문판의 부제인 ‘세계 거대 기업의 포획(The Capture of the World’s Greatest Company)’이 눈길을 끈다. 여기서 말한 포획이란 무슨 의미인가.
A : “애플은 삼성 등 다른 IT 기업과는 달리 자체 공장을 갖고 있지 않다. 모든 제품 제작을 해외 생산업체에 아웃소싱해야 한다. 그런데, 아웃소싱 업체의 공장에는 애플이 소유한 제작 기계 수십억 달러어치가 설치돼있다. 게다가 생산 과정의 모든 일을 철저하게 통제한다. 스티브 잡스 전 CEO와 쿡이 중국 폭스콘에 원한 것은 무엇을 만들 능력이 아니라 자신들이 시킨 대로 하는 태도였다. 저임금에도 군소리 없이 시킨 대로 장시간 일할 수 있는 인력을 원했다. 이런 요구에 부응할 수 있는 나라는 중국밖에 없다.”

아이폰을 생산하는 중국 선전 폭스콘 생산라인. 이 공장의 생산설비는 거의 모두 애플 소유다. [AFP=연합뉴스]

Q : 미·중 갈등 때문에 애플이 생산기지를 인도 등으로 옮기려 한다는데.
A : “인도 인구가 중국보다 많다. 하지만 애플이 중국을 떠나지 못하는 비밀스러운 이유가 있다. 바로 일용 노동자다. 중국에선 수많은 일용 노동자가 서부 농촌 지역에서 선전 등 동부 해안 지역으로 흘러들어 일정 기간 일하다 순식간에 다른 곳으로 옮겨간다. 애플의 아이폰 생산은 봄철에 줄어들었다가 9월에 피크에 이르곤 한다. 애플이 봄철에 쓰는 일용 노동자는 90만 명 안팎이다. 반면에 9월에는 200만 명까지 늘려 생산을 대거 증가시킨다. 또 새 아이폰이 개발되면, 일용 노동자를 더 공격적으로 채용해 쓰다가 아이폰 판매가 정체되면 내보낸다.”


Q : 인도에도 그 정도 일용 노동자는 있을 듯한데.
A : “인도에는 17~19세 여성들이 고향을 떠나 먼 곳에서 일하는 문화가 거의 형성돼 있지 않다. 일부 지역에서 형성돼 있다고 하더라도 그런 여성 노동자가 애플이 원하는 만큼 많지 않다. 애플 경영진이 인도 등으로 생산기지를 옮긴다고 말은 하지만, 나는 뜻대로 되지 않을 것으로 본다.”

스티브 맥기
◇스티브 맥기=영국 런던대 SOAS에서 국제외교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7년부터 기자로 일하기 시작해 월스트리트저널(WSJ)에서 회사채 시장을 담당하기도 했다. FT에서 일하기는 2013년부터다. 홍콩에 주재할 땐 아시아경제 전체를, 독일에서 근무할 때는 자동차 산업을 담당했다. 애플에 대한 탐사보도로 2023년 ‘샌프란시스코 프레스 클럽 어워드’를 수상했다.

더 중앙플러스 글로벌 머니(https://www.joongang.co.kr/plus/series/110)를 구독하시면 다양한 해외 전문가 인터뷰를 보실 수 있습니다.



강남규([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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