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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어내니 보였다, 심은경이 말하는 ‘나다운 것’

중앙일보

2025.12.08 07:26 2025.12.08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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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여행과 나날’은 ‘말이란 틀에 갇혀 있다’고 느끼며 더 이상 글을 쓰지 못하던 각본가 ‘이’(심은경)가 설국 같은 시골 마을로 여행을 떠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사진 엣나인필름]
영화 ‘여행과 나날’(10일 개봉, 미야케 쇼 감독)은 슬럼프에 빠진 각본가 ‘이’(심은경)가 눈 덮인 시골 마을로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다.

‘이’의 여행 속으로 관객을 끌어들여 푸른 바다와 폭우, 설산 등 대자연 속에서 접하는 마법 같은 순간들을 함께 체험케 한다. 일본의 주목 받는 신예 미야케 쇼 감독이 쓰게 요시하루의 만화 ‘해변의 서경’과 ‘혼야라동의 벤상’을 엮어 만들었다.

‘이’가 각본을 쓴 영화를 보여준 뒤, 후반부에 ‘이’의 여행을 그리는 극중극 형태로, 올해 로카르노 영화제에서 국제경쟁 부문 대상인 황금표범상을 받았다.

미야케 감독이 원작의 일본인 중년 남성 주인공 대신 심은경(31)을 주연으로 캐스팅한 건 “애써 잘 보이려 하지 않는 모습이 주인공와 닮았다”는 이유에서다.

지난 5일 서울 동작구 아트나인에서 만난 심은경도 자신과 닮은 ‘이’의 모습에 끌렸다고 말했다.

“‘나는 별로 재능이 없는 것 같다’는 대사에 꽂혀 출연을 결심했어요. 나 또한 부족함을 느끼는 순간이 많거든요. 그걸 많은 이들 앞에서 용기 있게 말하는 ‘이’의 태도를 보고 연기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심은경은 “여백이 많은 만큼 느끼는 대로 표현할 수 있어 자유로움을 느꼈다”며 “말로 표현되지 않는 것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걸 보여주는 영화”라고 말했다. 그는 일본에서 활동하면서 언어의 벽을 느꼈던 자신의 경험과 ‘이’의 고민이 비슷한 점이 있다고 했다. “슬럼프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이’의 캐릭터에 자신을 투영할 수 있을 것 같다”면서다.

설경을 즐기던 ‘이’는 호텔 방을 구하지 못해, 깊은 산 속 오래된 여관에서 속을 알 수 없는 주인 벤조(쓰쓰미 신이치)와 함께 지낸다. 그와 감정을 나누고 작은 소동에 휘말린, 꿈결 같은 시간은 ‘이’의 마음을 회복시켜 다시 펜을 들게 만든다.

심은경은 영화 ‘신문기자’(2019)로 일본 아카데미상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받고, 이번 영화로 싱가포르 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르는 등 일본에서 인정받는 배우로 성장했다. 하지만 영화 속 ‘이’처럼 끊임없이 자신의 재능을 의심한다.

“영화 ‘수상한 그녀’(2014)로 많은 사랑과 큰 상을 받은 뒤 ‘내게 그런 자격이 있는 걸까’란 생각에 무너지기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최고가 아니어도 된다, 연기를 좋아하는 마음이면 된다’고 마음을 다잡고 작은 영화에도 출연하고, 일본 활동에도 도전하게 됐습니다.”

그는 “작품에 어떻게 녹아들어야 하는지 간과했다는 걸 느낀 뒤 내 자신이 한없이 부족하게 느껴졌다”며 “지금은 스스로 만족하는 연기를 하고 감독의 만족스러운 표정을 보면서 짜릿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차기작으로 한국과 일본에서 드라마 두 편을 선보인다. 13일 방영되는 NHK 개국 100주년 기념 드라마 ‘화성의 여왕’에서 화성인을 연기하고, ‘대한민국에서 건물주 되는 법’(tvN, 내년 상반기 방영)이란 블랙 코미디에 출연, 기존 이미지와는 상반된 캐릭터를 연기한다.

“거창한 미래를 설계하기보다는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면 언젠가 가고자 하는 길에 닿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이번 영화를 하면서 일상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됐습니다.”







정현목([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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