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권(sovereignty)은 무서운 말이다. 법조차 주권 앞에서는 침묵해야 한다. 주권은 법 위에 있다. 권력자는 늘 주권에 유혹된다. 자신과 주권자의 의지를 동일시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권력자가 주권을 앞세우면 조심해야 한다. 러시아의 푸틴처럼 ‘주권 민주주의’를 내걸고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주권을 악용하는 대표적인 방법은 총투표다. 기존 법·제도의 제약을 벗는 데 더 효과적인 도구는 없다. 박정희 정권은 국민 총투표로 유신체제를 만들었다. 야당과 학생들의 반대가 커지자 또 총투표를 했다. 1975년 2월 ‘유신헌법 유지 여부’를 묻는 총투표를 했고, 찬성률은 73%였다. 그 뒤 유신 반대는 주권자의 결정에 반하는 것으로 탄압됐다.
정당-당원은 주권 관계일 수 없어
정 대표, 총투표 무리수 끝에 낭패
권력화한 팬덤 당원 믿고서 강수
진퇴양난 덫에 빠져버린 민주당
주권은 절대적이다. 어떤 권력도 그보다 상위에 있을 수 없다. 주권은 배타적이다. 외부자의 개입은 곧 내정 간섭이다. 주권은 영속적이다. 정권은 바뀌어도 주권이 확고해야 국가가 유지된다. 주권은 하나여야 하며, 두 개면 내전이다. 주권이 양도되면 식민지다. 주권은 버릴 수도 없는데, 버리면 무국적자로 살아야 한다.
정당과 당원은 권리의 관계일 뿐, 국가와 국민처럼 주권의 관계가 아니다. ‘소비자 주권’이나 ‘당원 주권’이라는 표현을 쓸 수는 있다. 다만 소비자나 당원의 권리를 중시하라는 ‘은유’일 뿐, 실제로는 주권 관계가 아니다. 당이 싫으면 당원은 떠날 수 있다. 정당은 자유롭게 선택해도 되지만 국가는 그럴 수 없다. 태어나면서부터 당원인 사람도 없다. 당원이 되는 일은 강제가 아니다.
루소는 주권을 가리켜 ‘자유를 위한 강제’라 했다. 기아·질병·전쟁·재난으로부터의 자유를 위해 우리는 조세와 국방 등의 의무를 감수한다. 그렇듯 주권의 본질은 강제다. 안전한 자유를 위해 국민은 국가와 주권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정당과 당원의 관계는 그와 다르다. 국민이 아니게 되면 삶이 위험해지나, 당원이 아니어도 얼마든지 자유롭다.
정청래 대표는 ‘당원 권리’가 아니라 ‘당원 주권’이라는 무리한 합성어로 무리를 한다. 당의 주요 사안을 당원 총투표로 결정하려 한다. ‘당원 주권국’ 설치도 서두른다. 자신을 따르는 팬덤 당원의 권력을 최대화하고 싶다는 뜻이자, 자신을 따르지 않는 의원들에게는 ‘말 안 들으면 당원들이 가만두지 않을 것’이라는 협박이다.
당원 참여의 열기는 큰데 당의 제도가 못 따라간다고 정청래는 말한다. 황당하다. 민주당에는 ‘참여’가 없다. 참여(participation)란 부분(part)이나 협력(partnership)과 어원이 같다. 역할을 달리 가진 부분들이 서로를 존중하며 공동의 미래를 위해 협력하는 활동을 참여라 한다. ‘내가 주권자이니 내가 원하는 대로 해야 한다’라며 함부로 하는 것은 참여가 아니다.
민주당은 참여가 아니라 동원으로 움직인다. 누가 선거 운동을 하는가. 당원이 아니다. 동원된 사람과 그들을 고용하는 데 필요한 돈으로 선거 운동을 한다. 참여의 열기가 넘치는 정당이라면, 유권자들과 눈도 마주치지 않고 기계적으로 구호만 반복하는 유급 운동원을 돈 주고 살 일이 없다. 당의 지역 활동에는 당원들이 참여할까. 하지 않는다. 지역 행사는 ‘핵심 당원’이 주도한다.
핵심 당원이란, 지역위원장의 무리한 동원에도 불이익을 걱정해 응해야 하는 지방의원들과 지역 대의원 및 각종 이권 관련자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들은 권리당원 매집을 포함해 당 홍보 및 행사 실적을 지역위원장에게 보고해야 한다. 그들은 당이 주최하는 집회나 시위에도 동원된다. 지역위원회별로 인원이 할당되고, 현장에서는 출석 체크가 이루어진다. 국회에서 열리는 집회에도 의원실은 물론 시도당별로 나눠서 인원을 동원한다.
권리당원의 참여가 두드러질 때가 있긴 하다. 당 대표나 대선 후보를 선출할 때다. 2022년 대선 경선은 72만 명(투표율 51%)이 참여했다. 올해 4월 대선후보 경선은 68만 명(투표율 60%)이, 8월 당 대표 경선은 63만 명(투표율 57%)이 참여했다. 권력의 향배와 관련된 사안에서는 어느 당이나 열기가 높다. 그렇지 않을 때 당원 참여는 크게 낮아지는데, 민주당도 예외가 아니다. 이번 당헌·당규 개정안에 대한 민주당 권리당원의 투표율은 16.8%였다.
당원 주권을 일상화해서 당을 운영할 수 있는 정당은 없다. 바로 이 대목에서 정 대표는 실수했다. 그를 따르는 팬덤 당원이 의원들을 협박하는 데는 충분한 수이지만 당원 전체로는 소수다. 그들에 의존해 총투표를 밀어붙인 게 잘못이었다. 정청래는 정당성을 잃었고 친명 팬덤은 기회를 얻었다.
권리를 주권으로 둔갑시킨 당원 주권론은 억지스럽다. 권력화된 팬덤 주도의 정당은 미래가 없다. 하지만 당도 정청래도 포기할 수 없다. 당원 주권은 민주당의 정체성으로 굳어졌다. 실현도 포기도 불가능한 당원 주권론이 결국 민주당의 덫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