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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美 "韓, 조율된 메시지 내라"…대북 유화책 속도조절 요구

중앙일보

2025.12.08 12:00 2025.12.08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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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2월 28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왼쪽) 북한 국무위원장이 베트남 하노이의 소피텔 레전드 메트로폴 호텔에서 회담 도중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다. 연합뉴스
미 측이 최근 한국 정부에 대북 제재 유지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한국의 외교·안보 라인과 정례적인 만남을 갖자고 제안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율된 메시지'를 강조하는 취지로, 범여권에서 경색된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대북 유화책을 연일 내놓고 있는 가운데 사실상 속도 조절을 요구하는 기류가 감지된다.

8일 복수의 소식통에 따르면 케빈 김 주한 미국 대사대리는 지난달 25일 정동영 통일부 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대북 메시지와 관련해 이런 제안을 내놨다. 한 소식통은 "미국 측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대화 제의로 대북 정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상황에서 여러 메시지가 혼재될 경우 불필요한 혼선이 빚어질 수 있다며 조율된 메시지 발신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외교가에서는 조율된 메시지라는 표현에 주목한다. 이는 곧 지금은 한·미 간 대북 메시지에 온도 차가 있다는 뜻일 수 있어서다.

일각에서는 김 대사대리가 대북 제재 유지와 북한 인권 문제를 강조해야 한다고 설명한 것도 이를 염두에 둔 것일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미국이 협상력 확보를 위해 써야 할 수단인데, 한국이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끌어내려 이를 섣불리 거론하는 것에 대해 우회적으로 우려를 표명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한·미 간에는 트럼프 1기 행정부 때 제재 문제로 갈등을 빚은 전례도 있다.

지난 9월 1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공개한 이재명 대통령 취임 100일 기념 인터뷰가 실린 미국 타임지.연합뉴스
이와 관련,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9월 외신 인터뷰에서 대북제재 완화를 언급하면서 "북한의 핵 개발 중단 조치에 대해 일부 보상(compensate)을 해줄 수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 "'무기 개발 중단, 감축, 궁극적 비핵화'라는 세 단계를 밟는 것을 대가로 부분적인 제재 완화 또는 해제를 위한 협상"을 지지한다면서다.

트럼프 대통령이 2기 들어 제재를 거론한 건 단 한 차례인데, 북한이 대화에 응하도록 하기 위해 무엇을 제공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우리는 제재를 가하고 있다. (관계 개선) 시작을 위해선 큰 것"이라고 답한 정도다.(10월 27일 일본행 기내)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지난달 25일 오전 서울 웨스틴조선 호텔에서 열린 '한반도 평화경제 미래비전 국제세미나'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사진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연합뉴스
김 대사대리가 통일부 장관을 만나 제재 문제를 거론하고, 조율된 메시지를 강조한 것도 의미심장하다는 지적이다. 외교·안보 부처 장관과의 면담인 만큼 원론적 언급일 수 있지만, 통일부는 제재 관련 주무 부처가 아닌 데다 정 장관은 한·미 연합훈련 연기를 공개적으로 주장하는 등 내각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대북 유화책을 제시해왔기 때문이다. 정 장관은 지난 7월 국회에서 "북·러 동맹 속에서 지금 유엔 등의 제재는 사실상 무력화됐다"며 "제재가 인도적 측면에서 북한 주민에게 고통과 부정적 영향을 주는 것은 그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특히 정 장관은 김 대사대리를 만나기 몇 시간 전 행사에서 "미국의 승인과 결재를 기다리는 관료적 사고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게 한반도 문제의 특성"이라고 공개 발언했다.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해 한반도 정책에서 '자기결정권'을 발휘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이 지난 7일 이재명 정부 6개월의 성과를 보고하는 기자간담회에서 "한반도 비핵화 추진을 위해 생각할 수 있는 카드는 많지만, 한·미 연합훈련의 경우 카드로 직접 고려하고 있지는 않다"고 선을 그었는데, 미국 측의 이런 분위기와 무관치 않을 수 있다.

이와 관련, 김 대사대리는 이날 외교부에서 박윤주 1차관과 면담을 가진 직후 기자들과 만나 "정동영 장관과 미·한 간에 긴밀한 조율(tight coordination)이 매우 중요하다는 데 뜻을 함께 했다"고 말했다. 관련 질문이 나오지 않았는데 먼저 거론한 것으로, 외교부를 방문한 자리에서 통일부 장관과의 면담을 언급한 것도 다소 이례적이었다.

김 대사대리는 또 "군사훈련은 군의 생명과 같다"는 안규백 국방부 장관의 발언을 소개하면서 "(안 장관이) 연합 군사훈련 공조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했다"고도 말했다. 앞서 김 대사대리는 지난달 21일 안 장관을 예방해 한반도 및 지역 정세와 한미 동맹 발전 방향을 논의했다. 김 대사대리는 최근 공개된 미 국가안보전략보고서(NSS)에 북한에 대한 언급이 빠진 것을 의식한 듯 양국 정상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에 합의했다는 점도 다시 확인했다.



정영교.심석용([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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