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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에펠탑 충돌, 그들이 막았다…항공기 인질 테러 진압 작전 [이철재의 밀담]

중앙일보

2025.12.08 12:00 2025.12.08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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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12월 24일 알제리 알제 공항. 활주로에서 이륙을 기다리던 에어 프랑스 8969편가 알제리의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인 GIA 테러범 4명에게 점거당했다. 긴 대치 끝에 알제리 당국은 25일 8969편의 이륙을 허가했다. 테러범들은 여자와 어린이는 내보냈지만, 2명의 인질을 사살했다.

에어프랑스 8969편 인질을 구출하려고 기내로 진입하는 프랑스 GIGN 대원들. 90sanxiety@인스타그램

8969편은 도착지인 프랑스 파리까지 갈 연료가 부족해 급유를 받으려 중간인 마르세유 프로방스 공항에 내렸다. 프랑스 당국은 시간을 질질 끌며 연료를 내주지 않았다. 납치범들이 제시한 최후통첩 시간이 다가오자 프랑스 당국이 재빨리 움직였다. 최정예 대테러 부대인 GIGN을 투입한 것이다.

전광석화 같은 진압작전 끝에 테러범 4명을 모두 제거했다. 물론 GIGN 대원 9명과 승객 13명이 다쳤지만, 사망에 이르진 않았다.



세계 최강의 항공기 테러 진압 부대


이 사건은 항공기 인질 테러 진압 작전의 교과서라 불린다. 우리는 이런 작전을 펼칠 수 있을까? 8969편 사건의 교훈은 무엇이고,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까?

747 이코노미석을 그대로 옮긴 재능대 기내 실습실. 이철재 기자

6일 인천 재능대 제물포캠퍼스에 20여명이 모인 배경이다. 재능대는 보잉 747 이코노미석을 그대로 따라 만든 시설을 갖고 있다. 승무원을 양성하는 이 대학의 항공서비스과 학생이 실습하는 곳이다.

20여명은 주로 대한민국 군·경찰·기관에서 근무하고 있다. 일부는 얼굴이 찍힐까 마스크로 가렸다. 이날 미국 LA 경찰서 경찰특공대(SWAT) 출신의 찰스 조가 최신 항공기 인질 테러 진압 전술 교관이었다. 그는 13년간 LA 경찰특공대 저격수로 활동한 뒤 지금은 사격장과 컨설팅 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찰스 조는 “LA 경찰특공대는 항공기 인질 테러 진압 작전으론 미국 최고 수준”이며 “연방수사국(FBI)는 물론 미 해군 특수전개발단(팀6), 미 육군 델타포스와도 합동 훈련을 자주 연다”고 말했다.

LA 경찰특공대는 천혜의 조건 덕분에 항공기 인질 테러 진압 전술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 LA에 멀지 않은 모하비 사막의 모하비 공항은 ‘비행기 무덤(Airplane Boneyard)’로 유명하다. 이곳엔 폐기한 민항기들로 가득하다. LA 경찰특공대는 공항 운영사의 협조를 받아 마음껏 다양한 기종에서 실전에 가까운 진압 훈련을 벌인다.

LA 경찰특공대 출신 교관 찰스 조. 인스타그램@tricellusa

LA 공항에 주기한 민항기에서도 자주 훈련한다. 또 자체 훈련장에 폐기 항공기 동체를 가져다 놓았다. 최강이란 타이틀은 거듭된 훈련에서 나온 셈이다. 변변찮은 훈련 시설이 없어 대학에 협조를 구하는 한국의 현실과 대조됐다.



긴 통로의 운송수단엔 튜브형 공격이 제격


이날 찰스 조는 튜브형 공격(Tubular Assault)을 가르쳤다. 튜브형 공격은 버스·기차·항공기와 같은 튜브 모양, 그러니까 좁고 길쭉한 통로를 가진 운송수단을 신속하게 확보하고 정리하는 공격 전술이다. 이들 운송수단에서 위협을 재빠르게 제압하려면 정확한 곳으로 진입하고 좌석·구역을 선형으로 소탕해야 한다. 튜브형 공격에 특화한 전술·장비·훈련이 필요하다. 튜브형 공격은 1984년 LA 올림픽을 앞두고 LA 경찰특공대가 확립한 공격 전술이다.

6일 인천 재능대에서 튜브형 공격 강의 참가자들이 항공기 인진 테러 진압 작전 실습을 하고 있다. 진입 직전 대기하고 있는 모습. 트리셀유에스에이

찰스 조는 “항공기는 안을 들여다보기 어렵기 때문에 버스나 기차보다 더 어려운 환경”이라고 설명했다. 버스·기차의 경우 진압작전 때 창문을 담당하는 경계조를 둔다. 그러나 항공기는 창이 좁은 데다, 동체는 지상보다 높아 창문을 살피기 어렵다.

찰스 조는 무엇보다 “한국 측에선 항공기 인질 테러 진압 작전의 전술에 대해 물어보지만, 가장 중요한 요소는 정보”라고 강조했다. 이어 “테러범이 몇 명인지, 어디에 있는지, 어떤 무장을 했는지 등을 파악해야 한다. 8969편 사건에선 프랑스 GIGN 대원은 공항 직원으로 위장해 물·음식을 기내에 가져다주는 척하면서 내부 상황을 살펴보면서, 도청장치와 추적기를 몰래 달아 실시간으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항공기 안의 정보를 확보했다. 이제 뭘 해야 할까. 찰스 조는 두 가지를 고려해 진압작전을 짜야 한다고 밝혔다.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요소는 항공기 진입 방법이다.

8969편 사건에선 옥에 티가 하나 있다. 프랑스 GIGN 대원은 탑승 계단 차량(스텝카) 3대에 나눠 타고 탑승구를 열고 진입하려 했다. 그런데 항공기 탑승구를 열면 앞으로 튀어나와 옆으로 열리는 방식이다. 그대로 문을 열려고 하면 스텝카의 계단에 걸렸다. 그래서 스텝카를 항공기에서 조금 떨어뜨린 상태에서 문을 열어야 했다.

탑승구를 열다 동체에 매달린 GIGN 대원. 90sanxiety@인스타그램

이런 걸 잘 알지 못한 GIGN은 그대로 진입하려 했다. 결국 앞쪽 탑승구 진입조의 선두 대원은 탑승구를 열자 육중한 탑승구 무게 때문에 덩달아 끌려가면서 스텝카에서 떨어질 뻔 했다. 다행히 이 대원은 다리 한 쪽을 스텝카에 걸치고 동체에 매달렸다.

찰스 조는 “기내로 진입하는 방법이 여러 개 있는데, LA 경찰특공대는 폭발물로 탑승구를 강제로 여는 방법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LA 경찰특공대는 다양한 항공기로 실험한 결과, 폭발물 진입이 가장 빠르고 가장 확실한 진입방법이라고 결론을 내렸단다. 이런 결론은 수많은 실험과 훈련의 결과였다. 모하비 사막의 ‘비행기 무덤’과 가까운 환경 덕분이었다.

찰스 조가 준비한 동영상을 보면 폭발 후 탑승구 문은 기내 쪽으로 퉁겨졌다. 그러면서 비상탈출 슬라이드도 부풀어 기내 쪽으로 부풀어 펼쳐졌다. 찰스 조는 “테러범은 도망 우려 때문에 인질로 잡은 승객을 탑승구 근처에 두지 않는다”고 말했다.

항공기는 탑승구 외 비상구도 있다. 비상구도 진입 통로로 쓰인다. 그런데 날개 쪽 비상구는 뺀다. 동체로 다가가려면 날개 위를 걸어가야 하는데 날개 위가 아주 미끄럽기 때문이다.

또 다른 고려 요소는 투입 인원이다. 되도록 많으면 좋다고 한다. 한 명의 진압 대원이 두 줄의 구역을 감시할 수 있다. 사람으로 치면 최대 5명까지다. 그런데 진입 후 기내는 좁고 어두운 데다, 여기저기서 비명을 들리는 혼란한 상황일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테러범을 승객으로부터 가리고, 테러범이 반항하거나 도주하는 걸 즉시 제압하려면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로하다.


그런데 보잉 747-8i(대한항공 기준)의 경우 2층 368석이다. 1층 프레스티지석과 이코노미석은 세 구역의 좌석이 두 개의 통로로 나뉘었다. 에어버스 A-380은 2층 470석이다. 항공기의 좌석과 인질의 수에 따라 투입 인원을 결정해야 한다.



물 흐르듯 움직여 기내를 신속히 제압


폭발물로 문을 강제로 열고 진입했다. 이제 뭘 해야 할까.

6일 인천 재능대에서 튜브형 공격 강의 참가자들이 항공기 인진 테러 진압 작전 실습을 하고 있다. 기내를 소탕하고 있는 모습. 트리셀유에스에이트리셀유에스에이

제일 먼저 진입하는 대원은 경계·엄호(Long Cover)를 맡는다. 강제 개방한 탑승구 근처에서 총구를 겨누고 엄호한다. 그다음 진입한 대원은 반대편으로 경계·엄호를 맡는다. 이후 진입 순서에 따라 홀수 번 대원은 탑승구 가까운 열로, 짝수 번 대원은 탑승구에서 먼 열로 신속히 들어가면서 소탕작전을 편다.

속도는 생명이다. 그래서 제대는 물 흐르듯 움직여야 한다. 만일 중간에 승객 가운데 숨은 테러범이 갑자기 무기를 든다면 그 대원은 제대에서 빠져나와 승객석으로 들어가 테러범을 무력화하면서 흐름을 막지 말아야 한다. 대원이 테러범의 공격으로 쓰러진다고 하더라도 제대는 그 대원을 넘고 가야 한다.

대원은 승객에게 “머리 숙이고, 손 올려(Head down, hands up)”라고 낮지만, 분명하게 공지해야 한다. 진입 작전 때문에 가뜩이나 긴장한 승객에게 다그치는 어투로 말할 경우 패닉에 빠져 통제에 잘 안 따라 줄 수 있다.

제대의 선두(Point)가 담당 구역의 끝에 닿았다면 명령이나 지시를 기다리지 말아야 한다. 대 테러 작전의 철칙은 ‘일을 찾아라(Go look for work)’이다. 대원 각자가 갑자기 일어나거나 순간적으로 바뀌는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처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8969 사건에서 GIGN 대원은 일부가 엄호용으로 MP5 기관단총을 썼고, 대부분 대원은 SIG P228이나 마뉘랭 MR 73 권총으로 무장했다. 항공기 기내는 좁다. 관통력이 센 5.56㎜ 소총탄은 목표물을 뚫고 그 뒤의 사람까지 다치게 할 수 있다. 그래서 튜브형 공격에선 권총과 권총탄을 장전한 기관단총이 ‘국룰’이었다.

그러나 세월이 바뀌면서 국룰도 달라졌다. 찰스 조는 “LA 경찰특공대는 튜브형 공격에서 주무장이 HK416”이라고 말했다. 돌격소총인 HK416의 장점이 있다. 표적지시기 등 각종 액세서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다. 특히 녹색 광선이 나가는 표적지시기는 다른 대원이 주시하는 구역을 알려줘 아주 유용하단다.


찰스 조는 “관통력 문제는 블랙힐스 70그레인(4.5g) 탄으로 해결한다”고 말했다. 이 탄은 탄두 전면이 화산 분화구처럼 파여 있어(할로 포인트), 착탄한 뒤 납작하게 찌그러진다. 관통력은 약지만, 살상력이 세다.



항공기를 무기로 만드려는 테러조직


2001년 9·11 테러 때 알카에다 테러범은 4편의 민항기를 납치했고, 이 중 3편이 월드트레이드센터와 펜타곤에 돌진했다. 가미카제식 공격이었다. 8969 사건에서도 테러범의 최종 목적은 프랑스 파리의 에펠탑에 충돌하는 것이었다. 이제 항공기 인질 테러범은 교섭 과정에서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거나 수감 동료 석방을 요구하진 않는다. 항공기를 무기로 만들어 사회에 최대의 충격을 주는 게 목적이 됐다.

인질 구출 작전이 끝난 뒤 에어프랑스 8969편 항공기. 총격전이 치열하게 벌어졌다는 걸 보여준다. 90sanxiety@인스타그램

그래서 요즘 기내 배치 항공보안관은 하이재킹이 일어나면 제일 먼저 조종석을 지킨다. 조종사도 테러범이 인질의 목숨을 위협하면서 조종석 문을 열라고 해도 무시하는 게 원칙이다. 더 큰 피해를 막으려는 조처들이다.

다행히 한국은 항공기 인질 테러 사건을 겪지 않았다. 그러나 아직 안 겪었다고 해서 앞으로 안 겪는다는 보장은 없다. 항공기 인질 테러 진압 전술의 최신 경향을 참조해 한국형 튜브형 전술을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이철재([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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