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총액 150억 달러(약 22조 원)의 파라마운트 스카이댄스가 시총 4000억 달러(약 588조원)의 넷플릭스와 정면으로 맞붙었다. 넷플릭스와 인수 계약을 체결한 워너브러더스 디스커버리에 적대적 인수·합병(M&A)을 본격화하면서다. 워너브러더스 인수 결과에 따라 영화, TV, 스트리밍을 아우르는 미디어 시장이 재편될 수 있다.
파라마운트는 8일(현지시간) 워너브러더스 주요 주주들을 상대로 주당 30달러에 현금으로 주식 매입을 제안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데이비드 앨리슨 파라마운트 최고경영자(CEO)는 “주주들에게 주식 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직접 제안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넷플릭스는 5일 워너브러더스의 스튜디오와 HBO 맥스 스트리밍 사업을 720억 달러(약 105조원)에 인수하기로 합의했다. 주당 인수가격은 27.75달러로 파라마운트보다 낮다. 파라마운트도 입찰 경쟁에 참여해 회사 전체를 1080억 달러(약 158조원)에 인수하는 안을 냈지만 워너브러더스 이사회는 만장일치로 넷플릭스를 선택했다.
넷플릭스는 파라마운트의 도전에도 자신감을 내비쳤다. 이날 테드 사란도스 넷플릭스 공동CEO는 “완벽히 예상했다”며 “이 거래(넷플릭스의 워너브러더스 인수)를 성사시킬 확신이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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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버스터급' 커진 워너브라더스 인수전
지난 2022년 디스커버리와 합병한 워너브러더스는 미디어 업계에선 ‘알짜배기’로 통한다. 우선 오랜 기간 할리우드 터줏대감으로 자리 잡아 온 만큼 콘텐트 기반이 탄탄하다. 넷플릭스가 워너브러더스를 인수하게 되면 해리포터 시리즈, DC코믹스, 프렌즈 등 강력한 팬덤을 지닌 글로벌 IP를 확보할 수 있다. 넷플릭스가 인수전에 사활을 거는 것도 이 때문이다. 넷플릭스는 그 동안 저작권 확보에 어려움을 겪어 오리지널 IP 제작에 집중했다. 그러다가 이번에 아예 스튜디오를 사들이는 쪽으로 노선을 변경한 것이다.
반면 파라마운트가 워너브러더스를 인수하면 업계 1위인 디즈니의 아성을 넘볼 수 있다. 파라마운트는 넷플릭스와 달리 워너브러더스의 TV 사업까지 인수 제안에 포함했다. 그러면 파라마운트의 CBS에 워너브러더스의 CNN이 합쳐지면서 막강한 미디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파라마운트는 최근 보수 성향 인터넷매체 프리프레스를 인수하고 이곳 창립자인 바리 와이스를 CBS 보도국장으로 임명해 미 공화당 정부의 입맛에 보도 기조를 맞췄다.
하지만 양쪽 모두 인수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넷플릭스가 인수에 성공하면, 워너브러더스의 HBO 맥스가 계열사에 들어오게 된다. 미국 구독형 스트리밍 시장의 약 30%를 차지하게 되면서 미 법무부 지침상 반독점법 위반으로 간주될 수 있다. 넷플릭스는 법적 문제로 계약이 불발될 시 58억 달러(약 8조원)의 위약금을 지불하기로 했다. 일각에선 이 때문에 넷플릭스가 구독료를 인상할 수 있다는 우려를 벌써 내놓고 있다.
파라마운트는 체급에서 넷플릭스에 한참 밀린다. 워너브러더스와 비교해도 시가총액이 절반에 못 미친다. 믿는 구석은 있다. 파라마운트 CEO인 데이비드 엘리슨은 오라클 창업자 래리 엘리슨의 아들이다. 아버지 래리 앨리슨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오랜 친구다. 여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사위 재러드 쿠슈너도 인수전에 가세해 ‘인맥전’에선 파라마운트가 우세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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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슨家, 트럼프 사위까지 총동원
실제로 파라마운트의 자금 조달안을 보면 래리 엘리슨 외에도 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UAE)·카타르 국부펀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사위 재러드 쿠슈너의 사모펀드 어피니티 파트너스 등 면면이 화려하다. 파라마운트는 “워싱턴에서 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이런 부분은 약점이 되기도 한다. 워너브러더스 이사회는 파라마운트의 입찰에 해외 투자자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고 우려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워너브러더스 관계자는 “이사회의 최우선 순위는 빨리 계약을 체결하고 규제 당국의 조사를 견뎌낼 수 있냐는 것이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에 말했다.
또 데이비드 앨리슨 CEO가 ‘아빠 친구’만을 믿고 안심할 처지는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파라마운트가 소유한 CBS의 간판 프로그램 ‘60분’에 공화당의 마조리 테일러 그린 하원의원이 출연한 것을 두고 불만을 표출했다. 그린 의원은 지난 대선에서 부통령 후보로 꼽힐 만큼 트럼프 대통령의 강력한 지지자였지만, 제프리 엡스타인 관련 문건 공개를 주장하며 사이가 틀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여지를 남겼다. 트럼프 대통령은 “(넷플릭스의 계약이) 문제가 될 수 있다”며 “승인 여부에 관여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넷플릭스와 파라마운트 중) 누구도 나의 친구는 아니다”라고 했다. 최종 결정은 트럼프 대통령의 몫이란 얘기다. 미 언론들이 미디어 공룡들의 인수전을 보도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심기를 살피는 기사를 쏟아내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