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기가 1년 이하인 예금 상품의 금리가 2년 이상 장기 예금보다 높은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보통 만기가 긴 예금 상품의 금리가 더 높지만, 들썩이는 시장금리 탓에 은행이 조달 비용이 비교적 낮은 1년 이하 예금으로 자금 수혈에 나섰기 때문이다. 주식과 부동산 시장에 돈이 몰리면서 장기 예금 상품의 인기가 예전만 못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9일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6개월 만기 정기예금 상품의 평균 금리는 연 2.86%(최고우대금리 기준)다. 2년·3년 만기 상품의 평균 금리(연 2.43%)보다 0.43%포인트 높은 수치다. 1년 만기 예금 상품의 평균 금리(연 2.84%)도 2년·3년 만기보다 0.41%포인트 높았다.
NH농협의 ‘NH올원e예금’은 6개월 만기 금리가 연 3%로, 2·3년 만기 금리인 2.5%보다 0.5%포인트 위다. KB국민의 ‘KB Star 정기예금’과 신한은행의 ‘쏠편한 정기예금’ 6개월 만기 상품 금리는 각각 연 2.8%, 2.75%로 1년 만기보다 0.05%포인트 낮았지만, 2·3년 만기(2.4%)와 비교하면 0.35~0.4%포인트 높았다.
우리·하나은행 역시 6개월 만기 상품에 2·3년 만기보다 0.4%포인트 높은 금리(연 2.8%)를 적용했다.
인터넷전문은행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나타났다. 케이뱅크의 ‘코드K 정기예금’은 6개월·1년 만기 금리는 연 2.86%, 2·3년 만기의 경우 2.45%로 책정됐다. 카카오뱅크도 6개월·1년 만기 2.85%, 2·3년 만기 2.4%로 최대 0.45%포인트의 금리 차가 났다.
보통 은행들은 만기가 더 긴 상품의 금리를 높게 책정한다. 은행이 고객 예금을 오래 보유하고 굴릴수록 이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환·금융시장 불안과 맞물려 국고채 금리가 뛰고 은행채 금리도 덩달아 급등했다. 이 때문에 은행이 비교적 부담이 큰 채권 발행 대신 예금 상품 금리를 올려 자금을 끌어오는 쪽을 선택하는 추세다.
금융투자협회 채권정보센터에 따르면 9일 기준 3년물 국고채 금리는 연 3.084%로, 연중 최고치를 찍었다. 국고채 금리 상승은 은행의 자금 조달 금리(은행채 금리)도 끌어올린다.
같은 날 은행채 5년물(AAA·무보증) 금리는 3.564%로 올해 가장 높았다. 은행권 관계자는 “은행채 금리가 급등한 상황에서 연간 결산 지표도 맞춰야 해 자금 유동성 수요가 높아진다”며 “조달 비용을 감당하기 위해 단기 예금 상품으로 자금 확보에 나선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보다 장기 예금 상품 선호도가 낮아진 점도 금리 추월 현상을 부추기고 있다. 대신 부동산 시장과 증시, 암호화폐 시장에 돈이 몰리는 상황이다. 앞으로 금리 인하·동결 사이클이 계속될지 알 수 없어 나중에 은행에 돈을 맡기는 게 이득이란 인식도 투자자 사이에서 커졌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 투자 상품이 다양해지며 고객들이 예전처럼 수년 동안 돈을 예금에 묶어두는 것에 부담스러워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실제 한국은행 통계시스템에 따르면, 만기 1년 미만 정기예금 잔액은 지난 1월 말 402조3517억원에서 9월 말 426조7042억원으로 24조3525억원(6.05%) 증가했다. 같은 기간 만기 2년 이상 3년 이하의 잔액이 2조447억원 감소한 것과 대조된다. 만기 1년 이상 2년 미만 예금의 잔액도 같은 기간 15조5679억원 증가하는 데 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