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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혜의 마음 읽기] 리히터, 단테, 보편성

중앙일보

2025.12.09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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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혜 글항아리 대표
한 인물에 대한 연대기는 그 사람의 개별적 삶(주관성)과 그가 속한 시대의 객관성을 모두 아우르기에 매력적인 형식이다. 물론 역사학자들은 연대기 작가가 문학 취향을 강하게 드러낼 뿐 역사적 사건의 원인이나 세부 사항을 제대로 입증하지 못한다며 비판적으로 보지만, 어떤 인물과 시대를 통째로 읽고 싶어하는 대중에게는 연대기만큼 좋은 형식도 없다. 지난주 파리에서 본 게르하르트 리히터(사진) 회고전은 작가가 한 시대의 풍경과 현상을 표현하는 가운데 대중을 자신의 연대기로 완전히 끌어들이는 힘을 발휘했다. 각 나라의 시립미술관들이 대개 19세기 말 현대성의 폭발을 예고하는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고, 루브르 같은 국립박물관은 1000년 동안의 중세를 일별하도록 성화(聖畫)의 교습소 같은 역할을 한다면, 회고전은 우리의 현재가 어떤 보편성을 이뤄내고 있는지 목격하게 해준다.

당대의 현실을 깨닫게 해주는
리히터 회고전과 단테의 문체
예술의 보편성은 강박의 산물

보편성은 중심이 아닌 변방에서도 자라날 수 있다. 열린 태도를 갖추고 있기만 하다면, 창작자는 지리적 중심지로 이동하지 않고도 자기 안에서 보편성을 싹틔울 수 있다. 변방의 문화적 열등감은 뛰어난 타자들을 흡수하려는 열망을 키워 종종 발전의 바람직한 토대가 되고, 예술과 학문은 거기서 역사를 다시 쓴다. 유럽의 변방 루마니아에서 미르체아 커르터레스쿠가 “어떤 문화적 공간에서든 어떤 시기에든 읽을 수 있는” 이야기를 써냈듯이 말이다. 그의 소설이 더욱 빛나는 이유는 어둡고 형이상학적인 방식을 통해 삶을 탐스러운 열매로 키워냈기 때문이다. 그 과실은 복숭앗빛이 아니고 검은빛이지만 거기서 흘러나오는 과즙은 세상을 완벽한 아름다움으로 물들이며, 현실보다 훨씬 더 강력한 리얼리티와 진실성을 띤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교과서에서 보편성을 띠는 작품들을 읽고 배워왔지만, 직업인이 되는 순간 이 단어를 ‘대중성’으로 치환한다. 이를테면 책을 쓰거나 만드는 이들은 널리 읽히고 싶다는 욕구가 생기면 보편성을 추구하기보다 대중성을 위해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고 생각하며, 문턱을 없애는 일부터 한다. 즉 이야기를 입히고, 일상 소재를 다루며, 쉽게 쓰고, 발랄한 생기를 더하는 것이다. 작가와 편집자들은 자기 식대로 대중성을 해석하며 난해한 요소를 제거하는 데 사활을 걸지만, 시대를 지배하는 흐름은 방해물을 없애거나 시류를 좇는 데서 나오지 않는다. 많은 대중적인 작품이 개인의 우연적 사례에 그치며 객관적 타당성을 얻지 못하는 이유다.

탁월한 대중성의 사례로는 가령 피카소의 작품을 들 수 있다. 그는 매체를 자유롭게 다루는 기량으로 빛나는 시대정신을 구현한다. 방법론에서 자기 한계를 뛰어넘지 못하거나 중년 이후 반복되는 작품 세계를 보이는 이들과 달리 피카소는 드로잉과 붓질과 조형 기술을 넘나드는 무한한 감각의 스펙트럼을 구축했고, 주제와 형식(기법) 사이의 일치를 달성하면서 자기 자리를 확고히 한다. 살바도르 달리와 같은 화가가 자기 세계를 만들었을지언정 보편이 될 수 없었던 것과는 대조된다.

다시 말해 보편성과 대중성은 종종 치환되지만, 보편성이 훨씬 더 크고 영속적인 개념이다. 보편성을 이뤄낸 작가들은 처음에는 엘리트의 문화유산을 흡수하지만, 권위를 갖고 나면 엘리트주의를 떨쳐버리면서 감각의 촉수를 대중에게로 뻗는다. 대중성은 반드시 상업적 요소를 끌어안을 수밖에 없다. 근대 유럽의 상인 계급이 귀족 사회를 무너뜨리며 펼친 세계가 소설의 시대를 열었고, 집요한 상인의 감각을 내재화한 미국인들이 창의성 있는 문화의 물질 기반이 되어주듯이 말이다. 가끔 학자들이 교수가 되지 못하고 아카데미 바깥에서 상업적 역량을 발휘하게 되었을 때 개안(開眼)되는 경험을 했다고 말한다. 대중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강박이 고도의 정신적 기량을 키워 문체를 바꾸고, 기법을 달리해 더 효율적으로 되도록 밀어붙이기 때문이다. 14세기에 쓰인 『신곡』의 작가 단테의 문체도 바로 그런 맥락에서 만들어졌다. “문체는 절대적 의미에서는 개인적인 것과 보편적인 것의 완전한 융합이다”라는 존 머리의 말처럼 단테는 권력에서 밀려나 대중과의 접점을 만들어가는 와중에 강력한 리듬과 단순명료한 구조, 고도의 고상함이 풍기는 자신만의 문체를 개발해냈다. 이 문체는 리얼리티를 단단히 붙잡아 앞으로 다가올 세계를 그리도록 해준다.

물론 이런 보편성도 시간이 흐르면서 보수적으로 변하며 가뭇없이 퇴락의 길을 걷곤 한다. 대중의 힘을 얻었다는 것은 곧 권력이 되었다는 뜻으로, 그동안 쌓아온 에너지는 탕진되고 그 모든 예술과 상업의 창조적 힘은 경직되거나 디테일이 진부해지면서 자기 운명의 종말을 예고한다. 그렇게 새로운 세대의 대중을 끌어들일 힘이 남아 있지 않을 때 창작자들은 역사가 되거나 대개는 잊히고 소멸하면서 새로운 비전을 품은 세대에게 주도권을 넘겨주게 된다.

이은혜 글항아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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