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노트북을 열며] 정치가 살린 도쿄, 정치에 앓는 서울

중앙일보

2025.12.09 07:14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전수진 편집콘텐트국 기자
“정치에 흔들렸다면 오늘의 도쿄는 없었다.” 일본 건축가로 도쿄 구도심 재개발에 관여했던 안 마사토시(安昌寿)가 2020년 언론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종묘 일대 세운지구 개발을 두고 서울시와 중앙정부가 맞붙은 일명 ‘종묘 대전’을 보며 이 말이 새삼스러웠다. 서울은 어떤가. 정치에 흔들리는 것을 넘어 휘둘린 지 오래다.

안 마사토시가 언급한 “오늘의 도쿄”란, ‘잃어버린 10년’ 동안 쇠락한 도심의 화려한 부활이다. 일본 정치와 행정, 민간이 손을 잡고 함께 일궈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郎) 총리가 2001년 취임하면서 도시재생특별촉진법을 통과시키며 상전벽해의 시동을 걸었고, 이 엔진은 2009년 민주당으로 정권 교체가 되었을 때도 꺼지지 않았다. 정권은 바뀌어도 정책은 바뀌지 않은 덕에 도쿄는 살아났다. 지난달 도쿄를 세계 도시 부(富) 지수에서 1위로 선정한 한 매체는 “도쿄의 능력은 다른 도시들과 비교할 수 없다”고 평했다.

규제에 묶여있던 도쿄역 인근이 마천루의 숲으로 상전벽해한 모습. [사진 지지통신]
사례는 차고 넘친다. 도쿄도청이 먼저 제안한 민관협력(PPP)으로 터널 위 고층 쇼핑몰을 올렸고(긴자 식스), 호텔·초등학교·버스터미널이 공존하며(도쿄 미드타운 야에스), 사용하지 않는 용적률을 팔 수 있는 공중권 개념을 도입해 스카이라인을 조금씩 그러나 확실히 바꿨다. 지난달 중순 둘러본 도쿄역 인근, 일본인이 신성시하는 왕궁(皇居) 인근에도 타워크레인이 여럿 하늘을 찌르는 가운데 현지인과 관광객 모두 쾌적한 산책을 누리며 시간과 돈을 썼다.

서울은 어떤가. 정책은 보이지 않고 정치만 보인다. 세운지구 개발을 두고 핵심 질문은 실종됐다. 시민에게 어떤 공간을 만들어 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 말이다. 건축가들의 팩트 기반 갑론을박은 설 자리를 찾을 수 없다.

세운지구 개발은 여권 대 야권, 중앙정부 대 지방정부의 갈등과 자존심 대결의 장으로 변질됐다. “해괴망측, 반드시 막아야 한다”(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와 “일방적 폄훼, 강한 유감”(오세훈 서울특별시장) 등 험한 언사가 난무한다. “민생 챙겨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본지에 한탄한 세운지구 주민의 말을 양측 모두 뼈아프게 들어야 한다(중앙일보 11월 24일자 4면). 편 가르기 정치로 도시 재생의 골든타임도 놓치고 있는 건 아닌가.

건축엔 ‘사는 것’이 아닌 ‘사는 곳’에 대한 철학이 담겨야 한다. 그 철학이 낳은 아름다움을 누릴 권리가 모든 국민에게 있다. 영국의 전설적 총리 윈스턴 처칠은 말했다. “우리는 건물을 짓고, 건물은 우리를 짓는다.” 한국 정치인들은 어떤 삶을 지을지 관심이나 있는 것일까.





전수진([email protected])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