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조합법 2조 개정에 이어 최근 국회에서 입법예고된 시행령 개정안을 보면 우려가 앞선다. 이번 개정은 사용자 개념과 노사 교섭 구조를 뿌리부터 다시 짜는 중대한 변화다. 서울과 인천에서 지방노동위원장을 역임하며 현장을 두루 경험한 필자의 눈에 개정안은 법적 정합성, 현장 집행 가능성, 산업경쟁력 측면에서 미흡하다. 교섭의 세 축인 사용자 범위, 교섭단위, 교섭대상의 동시 확대가 얽히면 현장에서 갈등이 더 복잡해지고 노동시장 난맥상만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교섭창구 단일화 원칙 허물어
불필요한 분쟁과 소송 늘어나
시행령·지침 꼼꼼하게 다듬길
노조법 시행령 개정안은 “원청도 사용자”라는 법 개정 취지를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에 그대로 적용했다. 그러나 2011년 7월부터 도입된 교섭창구 단일화는 ‘단일 사업장·단일 사용자’를 전제로 설계됐다. 이번에 사용자 개념이 원청·하청으로 이원화됐는데, 제도는 단일 구조 위에 그대로 얹으려 한다. 그 결과 어떤 사안을 누가 교섭해야 할지조차 불명확해지고, 동일 쟁점에 대해 원청과 하청이 중복으로 교섭하는 기형적 구조가 생긴다. 이는 노사 분쟁과 불필요한 소송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
2010년 1월 국회에서 개정돼 이듬해부터 도입된 복수노조 제도의 핵심은 단일 창구를 통해 교섭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 개정안은 교섭창구 단일화 원칙 자체를 흔들었다. 하청별, 직무별, 전체 하청 등 다양한 모델을 나열하면서 교섭단위 분리를 예외가 아닌 상시 규칙처럼 제시했다. 이는 2010년 당시 국회가 교섭창구 단일화를 “교섭질서 안정의 핵심 장치”라고 규정한 기존 취지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분리 기준조차 ‘이익대표의 적절성’, ‘노조 간 갈등 유발’, ‘노사관계 왜곡 가능성’ 등 지나치게 추상적이다. 지역별·사건별로 판단이 제각각 나올 가능성이 크다. 명확한 기준이 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재량만 늘어나면 매우 위험하다.
사용자성 판단 절차도 비현실적이다. 임금·근로시간·복지 등 하청 근로조건은 업체마다 다르다. 그런데 ‘실질적 지배력’ 하나만으로 원청을 하나의 사용자로 묶어 교섭하도록 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하청노조가 원청과 교섭하다 결렬되면 정작 하청사업주는 아무런 역할 없이 피해만 떠안게 된다. 책임과 권한의 구조가 엇갈린 상태에서 제도가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
게다가 ‘사용자성 판단위원회’는 노동위원회 심판위원회의 독립성을 침해할 수 있다. 노동위원회는 준사법기관이다. 외부 위원회가 사용자성 판단에 개입하는 구조는 심판의 중립성과 전문성에 흠집을 낼 수 있다.
이번 노조법 개정에서 가장 간과된 쟁점은 교섭 대상 확대다. 개정법은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경영상의 결정에 관한 불일치’까지 교섭범위로 봤다. 이는 생산설비 자동화, 조직·사업 재편, 공장 이전, 디지털 전환 등 핵심 경영전략이 모두 노사 교섭 테이블에 오를 수 있다는 의미다. 노조가 반대하면 기업은 사실상 어떤 중요한 결정도 할 수 없게 된다. 일본·독일 등은 경영권 핵심 영역을 교섭 대상에서 명확히 제외하는데 한국은 그보다 더 넓은 범위까지 허용했다.
원·하청 구조에서는 이런 문제가 더 커진다. 원청이 여러 하청노조와 동시에 교섭해야 한다면 기술전환이나 공정혁신 같은 미래 전략은 시작조차 하기 어렵다. 원청과 하청노조가 단체협약을 체결했는데 하청이 계약 종료나 폐업으로 사라지면 그 협약의 효력
은 어떻게 되는가. 이번 개정안은 이런 기본적 질문에도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교섭 구조를 뒤흔드는 중대 사안에 대해 사회적 논의가 충분치 않았는데도, 법은 이미 개정됐다. 그렇다면 시행령과 정부 지침이라도 정교하게 설계해야 한다. 이미 진행된 만큼 시행령과 지침을 더 꼼꼼하게 만들라는 현장의 목소리가 크다. 지금 상태라면 ‘자녀 용돈만 관리하던 아버지’가 갑자기 ‘옆집 아이까지 책임져야 하는 구조’로 바뀐 셈이다. 설계가 어그러졌다.
결국 교섭구조, 고용 유연성, 임금체계, 원·하청 구조라는 본원적 문제를 정면으로 다뤄야 한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이를 위한 장이 돼야 한다. 구조 논의 없는 시행령 개정은 혼란만 키우고, 그 비용은 미래세대에 전가된다. 지금이야말로 본격적인 사회적 대화를 시작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