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고환율에 다급한 정부, 수출기업이 쟁여둔 달러까지 본다

중앙일보

2025.12.09 07:45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달러당 원화가치가 1470원대에서 좀처럼 내려오지 않자, 정부가 전방위 대응에 나섰다. 기획재정부는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수출 기업의 외환 상황을 본격적으로 점검하기로 했다. 보건복지부는 국민연금이 ‘달러빚’(외화채 발행)을 내는 걸 검토하고 있다.

이런 고강도 조치를 두고 기업의 자율성을 침해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례가 없는 국민연금의 외화채 발행도 장기적으로 국민의 노후 재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가 있다.

9일 기재부 관계자는 “수출 기업의 외화 자금 현황을 모니터링하기 위한 TF를 발족한다”며 “기업들로부터 어떤 자료를 제출받을지 검토 중이며 필요할 경우 인센티브(혜택) 등 제도 개선 논의까지 열어두고 있다”고 말했다. 기재부는 산하 국제금융국에 외환 수급 전담 TF를 설치하고 인력을 보강할 계획이다.

정부는 기업의 환전 흐름과 해외 투자 현황을 정례적으로 점검하며 관리할 예정이다. 기업의 ‘달러 쟁여두기’로 외환시장이 위축되고 있으니 직접 들여다보겠다는 의도다. TF에선 수출 기업에 다양한 제도적 혜택을 주는 방안도 논의될 전망이다. 달러 환전에 적극 나서거나 국내 설비 투자를 늘리는 기업에 대한 정책자금 지원 한도를 늘리고 우대금리를 제공하는 방안 등이다. 세제 혜택도 거론된다. 일례로 해외 자회사 등으로부터 받은 배당금에 대한 비과세 혜택(익금 불산입) 비율을 현행 95%에서 100%로 확대하는 식이다.

복지부도 외화채 발행의 필요성과 타당성을 검토하기 위한 연구용역을 최근 발주했다. ‘무(無)부채’를 유지해 온 국민연금의 채권 발행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국민연금이 직접 시장에서 달러로 채권을 발행해 ‘달러빚’을 내는 것인데, 직접 현물환 시장에서 달러를 확보해야 하는 부담이 준다.

정부는 증권사에 대한 관리도 강화한다. 금융감독원을 중심으로 증권사의 해외 투자 상품 판매 과정에서 투자자 설명 의무 이행 여부, 위험 고지의 적정성, ‘빚투’(빚내서 투자)를 부추기는 마케팅 관행 등을 내년 1월까지 집중 점검하기로 했다.

이런 조치를 두고 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는 “기업 입장에서는 해외 투자나 원자재 수입 등 다양한 목적을 가지고 환전을 미루는 것인데, 이를 정부가 지나치게 간섭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국민연금의 외화채 발행과 대해서도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채권을 발행하면 결국 그간 내지 않던 이자를 내야 하는데 국민 노후를 위한 연금 수익률 극대화란 목표와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현직 총리가 한은 총재와의 간담회 일정을 사전에 공개하고 만난 것도 드문 일이다. 이날 만남은 김 총리의 제안이 계기가 됐다. 이런 정부의 강도 높은 대응에도 외환시장 반응은 시큰둥했다. 이날 달러당 원화가치는 5.4원 하락(환율은 상승)한 1472.3원에 마감하며, 다시 한번 1470원대 아래로 내려갔다.

강인수 교수는 “서학개미(해외 주식에 투자하는 개인)나 기업이 잘못 판단했다는 식의 접근보다는 한·미 관세협상이나 대내외 금리 차처럼 구조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장기적 관점에서 대응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김연주([email protected])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