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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도 사랑도 뜨거웠던 ‘한국의 엘리자베스 테일러’ 김지미

중앙일보

2025.12.09 21:51 2025.12.09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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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부산 국제영화제를 찾은 배우 김지미. 송봉근 기자
'한국의 엘리자베스 테일러'로 불리며, 한국 영화 역사에서 가장 화려한 여자 스타로 군림했던 배우 김지미(본명 김명자)가 별세했다. 85세.

한국영화인총연합회는 10일 "김지미 배우가 미국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이장호 감독이 알려왔다"고 밝혔다. 고인은 2000년 한국영화인협회 이사장직을 마지막으로 활동을 마친 뒤, 2002년 미국으로 이주해 캘리포니아 패서디나에서 거주해왔다. 최근 대상포진 바이러스에 감염된 후 몸이 약해진 상태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고인은 전쟁의 상흔이 남아있던 1950년대 중반, 기지개를 켜던 한국 영화계에 혜성처럼 나타나 80년대까지 스크린에서 꾸준히 활약했다. 수십년 간 '미(美)의 대명사'이자 '은막의 여왕'으로 군림하며, 대체 불가능한 연기와 아우라를 스크린에 새겨 넣었다.

자신이 제작까지 겸한 '명자 아끼꼬 쏘냐'(1992·이장호)까지 그가 출연한 작품은 700여 편에 달한다.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던 60~70년대에는 한 해에 30여 편의 영화를 찍느라 하루에도 몇 편씩 겹치기 촬영을 해야 했다. "충무로의 모든 시나리오는 김지미를 거친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데뷔 무렵의 배우 김지미. 사진 중앙포토
1940년 충남 대덕에서 태어난 고인은 덕성여고 2학년 때 명동 다방에 놀러 갔다가 김기영 감독의 눈에 띄어 영화 '황혼열차'(1957)로 데뷔했다. 악극단이나 연극 무대에서 활동하다 영화에 뛰어든 선배들과 달리, 영화로 연기를 시작했다. 예명 '지미(芝美)'의 의미처럼 난초를 닮은 청초함이 돋보인 배우였다.

'별아 내 가슴에'(1958·홍성기)의 흥행으로 스타가 된 고인은 '비 오는 날의 오후 3시'(1959·박종호), '장희빈'(1961·정창화) 등에 출연하며 1960년대 한국 영화 르네상스 시기를 화려하게 수놓았다.

영화 '장희빈'(1961)에 출연한 배우 김지미.
영화 '토지'(1974)에 출연한 배우 김지미. 사진 중앙포토
영화 '여자하숙생'(1969)에 출연한 배우 김지미. 사진 중앙포토
영화 '불나비'(1965)에 출연한 배우 김지미. 사진 중앙포토
김수용·임권택·김기영 등 거장 감독들과의 작업은 그의 연기 세계를 더욱 폭 넓고 깊게 만들었다. '토지'(1974·김수용)에서 대지주 가문의 안주인 역을 맡아 파나마 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과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영화 '만추'의 리메이크작 '육체의 약속'(1975·김기영)에서 사랑에 빠진 죄수 역할로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이산가족이 된 아들을 찾아 나선 중년 여성을 연기한 '길소뜸'(1985·임권택)에선 현대사의 비극을 담아낸 절절한 연기로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영화 '길소뜸'(1985)에 출연한 배우 김지미. 사진 중앙포토
고인은 비극적 운명의 가련한 여자, 숱한 남자를 유혹해 파멸시키는 팜프파탈, 모진 풍파를 헤쳐나가는 강인한 여성, 현대적이고 진취적인 여성 등 다양한 여성 캐릭터를 소화했다. 지순한 사랑을 하는 여성,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전통적 여성을 연기했던 최은희, 문희 등 다른 여배우들과 차별화된 연기 궤적을 보였다.

살인 사건들의 중심에 선 묘령의 여인을 연기한 '불나비'(1965·조해원)는 그의 팜므파탈 매력을 보여주는 대표작이다. 불교계의 반발로 제작이 중단된 '비구니'(1984·임권택)에선 과감한 삭발 연기를 보여주기도 했다.

제작 중단된 영화 '비구니'(1984)에서 삭발 연기를 선보인 배우 김지미. 사진 중앙포토
그는 데뷔 60주년을 맞아 한국영상자료원이 2017년 마련한 '매혹의 배우, 김지미 특별상영전' 기자간담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60년 간 어림잡아 700편의 영화에 출연했고, 700가지 인생을 살았다. 그렇게 대단한 것은 아닌데, 요즘 들어 내 자신도 기특하다는 생각을 간혹 한다. 영원히 여러분 가슴 속에 남는 배우가 되고 싶다."

고인은 세련되고 도시적인 이미지와 윤곽이 뚜렷한 눈과 코, 입술 등 서구적인 얼굴 덕분에 '한국의 엘리자베스 테일러'로 불렸다. 이는 잦은 결혼과 이혼 등 사생활과도 연관된 별명이다.

그는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도 자유로운 연애와 결혼 등 주체적인 삶을 살았던 '신여성'으로 평가받기도 했다. 18세 때 12살 연상의 감독 홍성기와의 결혼과 이혼, 유부남 스타 배우 최무룡과의 열애로 간통죄 구속에 이은 결혼과 이혼, 7살 연하의 톱 가수 나훈아와의 동거와 결별, 심장 전문의 이종구 박사와의 결혼과 이혼 등으로 대중의 관심을 모으며, 늘 화제의 중심에 섰다.

전 남편인 배우 최무룡과 즐거운 한 때를 보내고 있는 배우 김지미. 사진 중앙포토
사실혼 관계였던 가수 나훈아와 포즈를 취한 배우 김지미. 사진 중앙포토
최무룡의 부인인 배우 강효실의 고소로 최무룡과 함께 수갑을 차고 구치소에 갇힌 상황에서도 사진 기자를 위해 포즈를 취하기도 했다. 고인의 자유분방한 성격과 화려한 스캔들을 상징하는 장면이다. 최무룡과 이혼할 때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최무룡과 강효실의 아들인 배우 최민수는 김지미를 어머니처럼 모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화계의 유명한 여장부로 통했던 고인은 제작자로도 왕성히 활동했다. 1986년 영화제작사 지미필름을 설립한 뒤 '티켓'(1986·임권택), '아메리카 아메리카'(1988·장길수) 등 7편의 영화를 제작했다. 한국영화인협회 이사장(1995), 스크린쿼터 사수 범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1998), 영화진흥위원회 위원(1999) 등 영화 행정가로도 일했다.

백상예술대상·청룡영화상·대종상 등을 수십 차례 받은 고인은 2010년 '화려한 여배우'라는 타이틀로 '영화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고, 2016년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2019년에는 신영균예술문화재단이 시상하는 '아름다운 예술인상'(공로예술인 부문)을 수상했다.

2019년 참석한 부산 국제영화제 오픈토크에서는 "배우로서, 인생으로서 종착역에 가까워지고 있다. 여러분 가슴 속에 영원히 저를 간직해주시면 고맙겠다"는 사실상의 고별 인사를 전했다.

한국영화인총연합회는 "한 시대를 대표한 배우이자 영화인"이라며 "그의 존재 자체가 한국 영화의 역사였다"고 추모했다. 장례는 영화인장으로 치러진다.



정현목([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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