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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쇼트트랙, 길리 종언하세

중앙일보

2025.12.10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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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동계스포츠 강국으로 이끈 쇼트트랙은 내년 2월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에서도 한국 선수단의 가장 확실한 메달 후보 종목이다. 한국 쇼트트랙 대표팀 남녀 에이스 김길리(왼쪽)와 임종언이 밀라노에서 메달 사냥에 앞장선다. 전민규 기자

“저희 둘이 같은 ‘영유’ 선후배 사이예요.”

10일 서울올림픽파크텔에서 만난 한국 쇼트트랙 국가대표 김길리(21·성남시청)와 임종언(18·노원고)은 재미있는 인연을 들려줬다. 김길리는 “어느 날 대표팀 코치님이 딸을 서울 송파구 유아 대상 한 영어학원에 보낸다고 하셨다. 나와 종언이가 서로 ‘어? 나도 거기 다녔는데’라고 말하면서 뒤늦게 알게 됐다”고 했다.

내년 2월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을 두 달 앞두고 둘은 한국 남녀 쇼트트랙 에이스다. 3살 차이의 두 사람은 초등학생 때 한국체대 훈련장에서 같은 선생님 밑에서 쇼트트랙을 배웠다. 임종언은 “당시 길리 누나는 남자 선수들이랑 훈련했다. 키가 커서 내가 아래에서 위로 올려봤다”고 하자, 김길리는 “꼬마 종언이가 키가 이렇게 클(1m75㎝) 줄 몰랐다”며 웃었다. 소속사(700크리에이터스)도 같은 둘은 최근 유튜브에 함께 출연해 삼겹살 김밥을 만들며 케미스트리를 뽐냈다.

한국 쇼트트랙 대표팀 남녀 에이스 김길리(왼쪽)와 임종언이 밀라노에서 메달 사냥에 앞장선다. 전민규 기자
김길리는 올 시즌 4차례 월드투어에서 여자 1500m를 2차례 제패했다. 임종언은 남자 1000m와 1500m 정상에 올랐다. 3차대회 혼성계주 결승에서 임종언이 강하게 밀어주고 김길리가 ‘부스터’를 누르듯 치고 나가 우승하는 장면이 압권이었다. 김길리는 “1번 주자 (최)민정 언니가 스타트를 끊어 체력을 많이 쓰다 보니, 나와 민정 언니가 중간에 순번을 바꿔 종언이가 푸시해주는 게 전략”이라고 했다.

둘 다 스피드가 강점이다. 트랙 한 바퀴(111.12m)를 임종언은 7초8, 김길리는 8초4에 주파한다. 임종언은 “길리 누나는 (수퍼카 람보르기니에 빗댄) 별명 ‘람보르길리’에 걸맞게 빠르다. 난 면허가 없어 누나 차를 얻어 타고 진천선수촌에 내려간 적이 있는데 운전할 때도 속도를 즐기더라”고 했다.

한국 쇼트트랙 대표팀 남녀 에이스 김길리(왼쪽)와 임종언이 밀라노에서 메달 사냥에 앞장선다. 전민규 기자
김길리는 “별명 덕분에 올해 3월 람보르기니 국내 행사에 초청받아 시승도 해봤고, 내 드림카이기도 하다. 종언이도 밀라노에서 잘해서 페라리에서 연락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임종언은 영화 ‘F1 더 무비’를 보고 F1(포뮬러원)에 빠져 페라리 팀의 드라이버 샤를 르클레르의 헤어스타일을 따라했다. F1 운전 게임에서도 페라리를 고른다. 2023년 은사(송승우 코치)를 갑작스럽게 하늘나라로 떠나보낸 임종언은 “르클레르가 어릴 적 선생님이 돌아가시고 열심히 노력한 게 저랑 비슷한 서사에 끌렸다”고 했다.

김길리는 키가 1m61cm로 크지는 않지만 허벅지가 허리둘레와 비슷할 만큼 탄탄하다. 레그 프레스 100kg 이상을 든다. 시원시원하고 패기 넘치는 요즘말로 ‘테토녀(남성호르몬 테스토스테론과 여자의 합성어로, 주도적이고 당당한 여성을 뜻함)’다. 임종언은 “나도 테토남이다. 자신감이 넘치고 항상 밝다”고 했다.

김길리가 걸그룹 에스파의 카리나와 함께 찍은 스포츠용품 광고가 서울 여의도 쇼핑몰 대형 전광판에 내걸렸다. 임종언은 “길리 누나가 카리나 옆에 있지만 (외모가) 꿀리지 않더라”며 “난 블랙핑크 지수가 무대 위에서 보여주는 퍼포먼스를 좋아한다. 훈련 때 ‘꽃’을 즐겨 듣는데 올림픽 때 응원 메시지를 받고 싶다”고 했다. 김길리는 질세라 “난 남자다운 배우 우도환을 좋아한다”고 했다.
한국 쇼트트랙 대표팀 남녀 에이스 김길리(왼쪽)와 임종언이 밀라노에서 메달 사냥에 앞장선다. 전민규 기자

둘은 강력한 경쟁자를 넘어야 한다. 올 시즌 월드투어에서 금메달을 각각 6개와 5개를 딴 캐나다의 윌리엄 단지누(남자), 코트니 사로(여자)다. 임종언은 “단지누가 얼음판에서 스케이트를 밀고 나가는 속도는 그동안 느껴보지 못한 수준”이라고 경계했고, 김길리도 “코트니 사로는 체격이 큰 편이라 파워풀하다”고 했다.

영어유치원 출신답게 두 선수는 외국 선수들과도 어려움 없이 얘기한다. 영어로 소감을 밝히는 데도 익숙하다. 올 시즌 월드투어 1차대회에서 김길리는 여자 3000m 계주 우승 후 “Korea is strong”이라고 당당하게 말했고, 임종언은 남자 1500m 우승 후 “So happy”라고 소감을 밝혔다. 김길리는 “한국 여자계주가 오랜만에 우승했는데 우리는 아직 강하다고 말해주고 싶었다”고 했고, 임종언은 “너무 행복하고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헬맷에 백호가 새겨진 한국 쇼트트랙 애칭은 ‘코리안 화이트 타이거’다. 임종언은 “대한민국에서 겨울하면 생각나는 게 백호다. 중국 쇼트트랙의 상징은 용이고, 네덜란드는 사자고, 캐나다는 단풍잎”이라고 했다. ‘람보르길리’ 김길리는 “백호가 낙엽을 밟고 지나갈 것”이라고 했다. 최강 캐나다를 넘어서겠다는 각오다.



박린([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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