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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교 윤영호, 예고했던 與 실명 공개 없었다…"히든카드 숨긴 것"

중앙일보

2025.12.10 03:55 2025.12.10 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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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전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에게 청탁할 목적으로 명품 가방과 목걸이를 전달한 혐의를 받는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이 지난 7월 30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를 마친 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 뉴스1
통일교 측에서 지원한 더불어민주당 정치인들의 실명을 공개하겠다고 예고했던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이 10일 법정에서 명단을 밝히지 않았다. 검찰은 윤 전 본부장에게 징역 4년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사건을 심리하는 서울중앙지법 형사27부(부장 우인성)는 내년 1월 28일 선고를 진행하기로 했다.



법정서 폭로 점쳐졌으나 선처 호소로 마무리

10일 경기 가평군 설악면에 위치한 통일교 천정궁. 뉴스1
당초 이날 재판에서는 통일교가 금품을 건넨 민주당 전·현직 의원들의 실명이 공개될 거라는 관측이 나왔다. 윤 전 본부장은 지난 5일 재판에서 “국민의힘만이 아니다. 민주당도 여러 차례 어프로치(접근)했다고 여러 차례 증언했다”며 통일교에서 접근한 정치인 중에는 현직 장관도 있다고 폭로했다. 그는 재판장에게 “실명을 거론해도 되나”라고 묻고 승인을 받았으나 “파장도 있을 거고 그래서 고민된다”며 말을 아꼈었다.

이후 윤 전 본부장이 수사 단계에서 민주당 정치인 2명이 통일교로부터 금품을 받아갔다고 증언한 게 뒤늦게 알려지면서 특검 측 ‘편파 수사’ 논란에 불이 붙었다. 법조계에 따르면 윤 전 본부장은 지난 8월 특검팀 조사에서 “2018~2020년 전재수 해양수산부 장관(당시 국회의원)에게 현금 4000만원, 까르띠에·불가리 시계 2개를 전달하고 한일 해저터널의 협조를 요청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한다. 임종성 전 의원 역시 현금 3000만원을 받아갔다고 진술했다. 정치후원금·출판기념회 책 구매 등 방식으로 지원한 민주당 정치인도 15명에 달한다고 했다.

이후 윤 전 본부장 측이 언론에 “결심 공판에서 내용을 소상히 밝힐 예정”이라고 밝히고 그가 실명을 폭로하기로 마음을 굳혔다는 보도도 나오면서 이날 실명 공개가 점쳐졌으나 선처를 호소하는 것으로 재판이 마무리됐다. 이날 결심공판 후 변호인은 “윤 전 본부장이 마음을 바꾼 것인가”“따로 말씀하지 않은 이유가 있는 건가” 등 취재진의 질문에 별다른 답을 하지 않았다.



이재명 “여야, 지위고하 막론하고 엄정 수사”

이재명 대통령이 10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제6차 한-태평양도서국 외교장관회의 참석을 위해 방한한 태평양도서국 외교장관 일행을 접견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이재명 대통령은 논란에 불이 붙자 이날 “특정 종교 단체와 정치인의 불법적 연루 의혹에 대해 여야, 지위고하와 관계없이 엄정하게 수사하라”고 지시했다고 대통령실이 이날 밝혔다. 통일교가 국민의힘뿐 아니라 민주당 인사들에게도 금품을 제공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이 대통령이 정면 돌파를 선택한 것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정교유착에 대해 이 대통령이 엄중하게 보고 있다”고 부연했다.

이에 이날 오후 특검팀에서 사건 기록을 넘겨받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인계 즉히 특별전담수사팀을 편성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특별전담수사팀은 ‘3대 특검(내란ㆍ김건희ㆍ순직해병)’이 수사를 완료하지 못한 사건을 이어받아 수사하는 경찰 특별수사본부와는 별개의 조직이다. 수사팀장은 박창환 중대범죄수사과장(총경)이 맡는다. 그는 지난 6월 28일 내란특검팀(특별검사 조은석)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의 첫 피의자 신분 소환 조사를 담당했다.

앞서 특검에서 윤 전 본부장의 진술을 토대로 이를 뇌물 혐의 사건으로 본 만큼 경찰 역시 금품 수수의 구체적 대가성 여부 등을 중심으로 수사를 진행할 전망이다. 경찰청은 “일부에서 제기된 공소시효 문제 등을 고려해 신속한 수사 착수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뇌물죄의 공소시효는 수뢰액별로 3000만원~1억원은 10년, 1억원 이상은 15년이다.



특검 “대의민주주의 부정 중대 범죄”…징역 4년 구형


민중기 특별검사가 지난 7월 2일 서울 종로구 KT광화문빌딩에 마련된 사무실 앞에서 현판 제막을 한 뒤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날 윤 전 본부장은 한 손에 노란색 대봉투를 든 채 법정에 들어왔다. 그는 무표정으로 정면을 바라본 채 재판 시작을 기다렸다. 최후 진술에 나선 윤 전 본부장은 봉투에 들어 있던 입장문을 꺼내 “교단, 언론, 법적인 그리고 이로 인해 산산히 부서진 가정적인 문제로 절망 속에서 매일매일을 후회와 아쉬움 속에서 보내고 있다”며 눈물을 흘렸다. 그러면서 “교단에서는 여전히 일탈행위, 개인의 탐욕 등의 표현을 사용하며 꼬리자르기를 하고 있다”며 “신변의 위협을 받고 있는 가족을 지키고 나머지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보석을 허가해 주시기를 간절히 부탁한다”고 했다.

특검팀은 윤 전 본부장에게 징역 4년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정치자금법 위반 공소사실에 징역 2년, 나머지 범행(청탁금지법 위반·업무상횡령·증거인멸교사 등)에 징역 2년을 구형했다. 특검 측은 “본 건은 막대한 자금력을 이용해 정치세력과 결탁해 선거 및 정치에 개입하고 공권력을 부당하게 이용한 사안으로서, 대의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중대 범죄”라며 “공적 업무수행의 공정성과 그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흔들리는 중대한 결과가 초래됐다”고 했다.

변호인 측은 “통일교는 정파를 초월해 남북 화합을 촉구하기 위해 서밋을 개최했고, 한학자 총재도 평화주의 이념에 따라 양당 후보에 제안하도록 피고인에게 지시했다”며 “공소사실처럼 통일교가 어느 특정 정당에 접근한 건 아니라고 보이는데, 피고인은 세간에 오해가 있어서 당혹스러울 따름이라고 한다”고 했다. 아울러 정치자금법 위반 등 사건 수사는 위법 수집 증거에 근거해 이뤄졌으므로 무죄가 선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법조계 “히든카드 숨겼다”…정치인들 "무관" 입장문

'건진법사 청탁 의혹'의 핵심 인물인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이 지난 7월 구속전피의자심문을 위해 서울중앙지법에 출석하는 모습. 연합뉴스

재판부는 내년 1월 28일에 이 사건을 선고하겠다고 했다. 세간의 관심을 모았던 명단을 두고 윤 전 본부장이 침묵한 대해 한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사실 민주당 측에도 금품을 제공했다는 주장은 또다른 사건으로 입건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불리한 주장”이라면서 “특정 정당이 아닌 정치권 전체에 접근을 시도했는데 수사가 편향적으로 이뤄졌다고 주장하기 위한 전략일 수도 있다. 어쨌든 윤 전 본부장으로서는 히든카드를 숨긴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통일교로부터 금품을 수수했거나 통일교 인사와 접촉한 것으로 지목된 정치인들은 잇따라 해명을 내놓았었다. 전재수 장관은 지난 9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고 “의정활동은 물론 개인적 영역 어디에서도 통일교를 포함해 금품을 받은 사실이 없다. 전부 허위사실”이라고 반박했다. 임종성 의원은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한학자 총재를 만난 적도 없고 통일교 측에서 돈을 받은 적도 없다. 윤영호도 모르는 사람”이라며 “왜 그런 이야기를 하는지 황당하다”고 부인했다. 또 다른 금품 수수자로 지목된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11일 오전 입장문을 내겠다”고 했다.

통일교 간부의 녹취록에서 통일교와 접촉한 정황이 나온 여권 인사들도 대응에 나섰다. 이종석 국가정보원장(당시 이재명 선대위 평화번영위원장)은 이날 입장을 내고 “‘북한 문제에 대해 할 얘기가 있다’며 면담을 요청해와 지인 대동하에 세종연구소 연구실에서 한 차례 만난 바 있다”며 “그러나 그 이후 어떠한 접촉이나 교류도 없었다”고 해명했다. 녹취록에 등장하는 정진상 전 민주당 당대표 정무조정실장은 연관성을 부인했다. 김지호 민주당 대변인은 이날 “최근 통일교 측이 정 전 실장과 접촉했다는 보도와 관련해 정 전 실장은 ‘해당 내용은 전혀 사실이 아니며 통일교 측과 어떠한 접촉도 없었다’고 밝혀왔다”고 전했다.




최서인.김성진([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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