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전자입국신고서(E-Arrival Card)에 대만이 ‘중국(대만)’으로 표기된 것을 두고 대만 정부의 항의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대만 외교부가 “한국과의 관계를 전면적으로 검토하겠다”고 경고한 데 이어, 10일에는 라이칭더(賴清德) 대만 총통이 직접 나서 한국 정부의 조치를 촉구했다. 우리 정부는 현재까지 별도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10일(현지시간) 대만중앙통신에 따르면 라이 총통은 이날 한 공식 행사에서 한국 측 대응을 묻는 취재진 질문에 “대만과 한국은 경제·무역·민간 교류가 매우 밀접하다”며 “이러한 관계 속에서 한국도 대만 국민의 의지를 존중해 주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총통이 한국·대만 간 갈등을 직접 거론한 것은 이례적이다.
천밍치(陳明祺) 대만 외교부 정무차장 역시 “한국은 대만에 큰 무역 흑자를 보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비우호적 조치를 취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지적했다.
논란은 한국이 올해 2월 도입한 전자입국신고서에서 비롯됐다. 기존 종이 신고서와 달리, 국적·출발지·목적지를 시스템이 제시하는 목록 중 선택하는 방식으로 바뀌면서 대만이 ‘China(Taiwan)’, 즉 ‘중국(대만)’으로 표기돼 있다는 것이다.
대만 외교부는 3일 공식 성명을 통해 “사실과 다를 뿐 아니라 대만 국민에게 혼란과 불편을 초래한다”며 수정을 요구했다. 주한 대만대표부가 여러 차례 문제를 제기했지만 “한국 정부의 긍정적 답변을 아직 받지 못했다”라고도 했다.
대만 정치권은 거세게 반발했다. 집권 민진당의 중자빈(鍾佳濱) 입법위원은 “대만의 주권을 존중하지 않은 것”이라며 한국 정부를 비판했고, 국민당의 마윈쥔(馬文君) 입법위원도 “전략적 반격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부 학자들은 “최근 한국의 대중(對中) 입장이 중국에 기울고 있다”는 정치적 분석까지 내놓고 있다.
다만 대만 사회 내부에서는 과도한 대응에 대한 우려도 존재한다. 대만 관광업계는 “한국 관광객이 연간 100만 명이 넘는다”며 양국 관계 악화를 경계했고, “한국 제재가 현실적으로 큰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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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표기 문제 없어…하나의 중국이 국제적 합의”
중국은 이번 사안을 두고 “문제없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국무원 대만사무판공실의 천빈화(陳斌華) 대변인은 10일 정례 브리핑에서 “하나의 중국 원칙은 국제사회의 보편적 합의”라며 “대만이 중국의 일부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대만 측 문제 제기에 대해선 “민진당 당국이 꾸미는 계략”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