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뮤지엄 전시 1관에서 열리고 있는 ‘장 미셸 바스키아: 과거와 미래를 잇는 상징적 기호들’ 특별전에서 바스키아의 걸작들만큼이나 주목을 받는 존재가 있다. 올 7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국보 제285호 울산 울주군 반구대 암각화의 탁본이다. 가로 8.3m, 세로 3.9m의 규모에서부터 분위기를 압도한다. 먹빛으로 떠오른 형상들이 수천 년 시간을 뛰어넘어 관객들의 발길을 붙든다.
반구대에 새겨진 무당 형상
신화 활용한 바스키아의 ‘엑수’
공동체 치유자로서의 의미
생생한 날 것의 미학도 공유
“암각화, 한국미술 속의 바스키아”
신석기 시대 암각화가 어떤 사연으로 현대미술의 아이콘 바스키아의 작품 옆에 걸리게 된 걸까. 이 조합의 아이디어를 낸 이동국 경기도박물관장은 “한국미술 속의 바스키아를 찾아보자는 생각에서 한 기획”이라며 “바스키아와 반구대 암각화는 시공을 초월해 연결된다”고 말했다.
전시 중인 탁본은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소장품으로, 이 관장이 서예박물관에 재직 중이었던 1990년대 초반 울산의 서예가 이권일 선생과 함께 현장에 가서 직접 뜬 탁본이다. 이 탁본이 서예박물관 외부 전시에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 관장은 바스키아와 반구대 암각화에서 ‘샤먼(shaman)’이라는 공통점을 짚어냈다. “반구대 암각화에는 고래·사슴·호랑이·멧돼지 등의 동물뿐 아니라 사지를 쫙 벌린 채 춤을 추는 샤먼, 즉 무당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바스키아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가면과 왕관은 바스키아 자신이 샤먼임을 상징한다. 바스키아는 자본주의 사회의 부조리와 인종차별 등 현대 문명의 폐해를 그저 고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치유하고 해결하고자 했던 샤먼 중의 샤먼이었다.”
공동체의 생존과 번영을 기원한 선사시대 암각화의 주술적 의미가 바스키아의 작업에서도 발견된다는 분석이다. 두 경우 모두 그림이 미적 감상의 대상이 아니다. 이 관장은 특히 바스키아의 1988년 작품 ‘엑수(Exu)’를 주의 깊게 봤다. 엑수는 브라질의 요루바족 신화에 등장하는 신 이름이다. 작품 ‘엑수’ 속에 뿌려진 수많은 눈에서 중생의 고통을 치유하는 ‘천수천안관세음보살(千手千眼觀世音菩薩)’을 떠올리며, “바스키아는 현대 도시 문명에 병든 자신과 주위 사람들을 치유하는 신 ‘엑수’로 다시 태어난 것”이라고 분석했다.
추사 글씨, 백남준 작품도 전시
전시장에서 만난 반구대 암각화는 바스키아의 작품들과 시각적으로도 이질감 없이 어우러진다. 암각화의 동물 형상은 원형적이고 상징적이며, 바스키아의 작품에는 해체된 인체와 동물, 기하학적 기호가 뒤엉켜있다. 이 둘은 굵고 빠른 선, 단순화된 윤곽, 반복적 모티브 등 시각적 리듬을 공유한다. 생생한 날 것 그대로의 미학을 함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바스키아는 책 『아프리카 암각화(African Rock Art)』(1970)를 참고 자료로 자주 활용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이번 전시의 총괄기획을 맡은 이지윤 숨 프로젝트 대표는 “암각화의 다양한 이미지들이 바스키아에게 직관적 표현과 원시적 형상의 미학을 일깨워줬다”고 설명했다.
전시 제목의 일부인 ‘상징적 기호’ 차원에서도 암각화와 바스키아는 일맥상통한다. 반구대 암각화는 문자 이전의 기호 체계를 보여준다. 암각화 속 동물과 사람은 사실적인 묘사로 그린 그림이 아니다. 그림이라기보다 표식에 가깝다. 두려움과 욕망의 조건을 도식화해 새겨넣었다. 바스키아의 작품에 등장하는 왕관, 해부학적 인체, 반복되는 단어 등도 단순한 그림이 아니다. 흑인으로서의 정체성, 도시의 폭력성 등을 압축해 표현한 일종의 기호다. 이를테면 암각화의 고래는 동물이 아니라 생존의 상징이고, 바스키아의 왕관은 장식이 아니라 권력의 은유로 쓰였다. 반구대 암각화와 바스키아의 이미지가 수천 년의 간극을 뛰어넘어 동시대적인 것으로 읽힐 수 있는 이유는 그 본질이 ‘상징적 기호'이기 때문이다.
전시장에는 반구대 암각화뿐 아니라 훈민정음해례본 영인본과 추사 김정희의 서체, 백남준의 비디오아트 작품도 함께 전시돼 있다. 예술언어로서의 문자와 그림, 기호와 전자신호 등을 한눈에 펼쳐 보이는 기획이자, 서구 현대미술과 우리 역사유물이 조화의 접점을 찾은 현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