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영포티(young forty)’ 논란이 뜨겁다. 10년 전만 해도 영포티는 새로운 유행과 젊은 취향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40대를 뜻했다. 그러나 이제는 젊은 층 사이에서 인기를 끄는 상품이나 브랜드를 소비하며 겉으로만 젊은 척하는 중년층으로 통한다. 미국에는 40대에 접어든 밀레니얼 세대를 빗댄 ‘밀레니얼 크린지(millennial cringe)’란 표현이 있다. 스키니진, 부자연스러운 셀피 등 지나간 유행을 어설프게 따르는 중년층이 20대, 30대에게는 촌스럽거나 민망하게 여겨질 때 쓰인다.
진솔한 중년·시니어는 존경 대상
브랜드도 전통과 실험 모두 중요
시대 감수성과 통찰력 갖춰야
중년층 시장으로 확산한 제품이나 문화가 젊은 층으로부터 외면당하면 기업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애슬레저 붐과 스키니 패션의 유행 속에서 인기를 끌었던 레깅스는 젊은 세대의 루즈핏 선호로 성장세를 멈췄다. 그 여파로 올해 들어 룰루레몬의 주가는 절반 아래로 하락했고, 한국·중국의 스판덱스 생산업체들도 줄줄이 타격을 받았다. 최근 출시된 오렌지색 아이폰은 유행에 관심 많은 중년층이 선호한다는 이유로 영포티 전용 아이템이란 꼬리표가 붙었다.
계층·세대 구별, 소비시장 보편적 현상
부유층과 젊은 층이 견인하는 소비시장에서 계층·세대 간 구별 짓기는 보편적 현상이다. 부유층은 구매력과 예술적 취향으로, 젊은 층은 정보력과 실험적 성향으로 시장을 움직인다. 고급스러움과 젊은 이미지를 동경하는 많은 이들이 그 뒤를 따르면 트렌드 리더는 더 희소한 상품, 과감한 경험으로 이동한다. 2000년대 이후에는 남과 다름과 자기만족을 추구하는 탈(脫)대중적 힙스터(hipster) 문화가 젊은 세대의 가치관과 소비에 큰 영향을 미쳐 언더그라운드 예술, 골목 상권 등 비주류 문화의 부상을 이끌었다. 투박하고 촌스러운 어글리 패션은 정형화된 미의 기준을 파괴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미국의 맥주 브랜드 팹스트 블루 리본(Pabst Blue Ribbon, PBR)은 이러한 흐름을 가장 잘 활용한 사례다. 물보다 싼 가격으로 ‘노동자 맥주’로 불렸던 PBR은 버드와이저·쿠어스 등 대형 브랜드가 장악하던 1990년대 내내 매출이 하락해 사업 철수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PBR의 미미한 존재감은 강력한 무기로 작용했다. 힙스터 문화가 부상하던 당시 젊은이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고 가격까지 저렴한 PBR이 최고의 맥주로 여겨진 것이다. 자금 부족으로 변변한 광고 하나 내놓지 못한 것도 축복이었다.
PBR, ‘20대 맥주’로 재탄생했지만
PBR이 택한 전략은 ‘노 마케팅(No Marketing)’이었다. 대중 마케팅을 선호하지 않고 자신들만의 제품과 브랜드로 정체성을 드러내고 싶은 젊은 고객들의 심리를 제대로 파악한 것이다. TV 광고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PBR 애호가임을 공개적으로 밝히며 홍보 모델을 자처한 유명 밴드 키드 록(Kid Rock)의 요청도 거절했다. 대신 비주류 문화를 지원하는 다양한 활동에 집중했다. 소규모 인디 밴드 공연, 스케이트보드와 로컬 자전거 대회를 후원하고 지역 예술가들이 참여하는 아트 캔(Art Can) 대회를 개최했다.
PBR은 2010년대 중반까지 가파르게 성장하며 ‘20대의 맥주’로 재탄생했다. 맥주 업계의 할리 데이비드슨으로 불릴 만큼 팬들이 생겼고, 샌프란시스코의 한 스타트업은 채용 공고에서 신입사원에게 1년간 PBR 맥주를 무한 제공한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하지만 대중 마케팅을 자제했던 PBR도 유명세를 치르면서 희소성이 사라지고 성장이 정체되기 시작했다. 저칼로리 탄산주, 저알코올 맥주 등 1990년대생 신세대의 취향에 대한 대처도 미흡했다. 유행을 거부하는 젊은이들이 발견한 독특한 상품이 결국 유행이 되어 더는 선택받지 못하는 ‘힙스터 역설(hipster paradox)’을 비켜 갈 수 없었다.
젊음을 상징하는 브랜드도 고객과 함께 나이가 들면 신선감을 잃고 신세대에게 지루한 느낌을 주게 된다. 힙스터 역설을 극복하고 기존 고객과 새로운 세대를 모두 만족시키려면 전통을 유지하면서도 실험적 시도를 중단하지 않아야 한다. 119년 역사를 지닌 뉴발란스는 레트로 디자인을 활용하는 동시에 스케이트보드, 러닝 라인을 강화하는 등 활동적인 이미지를 더하며 브랜드 젊음을 유지한다. 최근에는 대표 상품인 1906 모델을 기반으로 스니커즈와 로퍼를 융합한 스노퍼(snoafer)를 출시해 호응을 얻고 있다.
그린 워싱, 소셜 워싱이 비난받는 이유 한국은 유행 확산 속도가 가장 빠른 시장 중 하나다. 밀도가 높고 연결성이 강한 사회 환경 속에서 서로를 쉽게 관찰하는 한국인은 남보다 먼저 새로운 것을 체험하려는 욕구가 강하다. 젊은 세대가 신상품을 경쟁하듯 소비하고 소셜미디어를 통해 취향을 공유하면 중장년층은 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다. 트렌드에 뒤처질까 불안한 마음으로 소비하는 사람도 많다. 인시아드(INSEAD) 데이비드 드부아(David Dubois) 교수는 새로운 발견을 즐기는 한국 소비자의 성향을 K브랜드 성공의 핵심 요인으로 분석했다.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민첩한 변신력과 변하지 않는 고유성의 조화를 이뤄야 한다.
영포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무엇보다도 진정성을 중시하는 청년 세대의 심리를 반영한다. 인기 제품과 브랜드, 유행어를 사용하며 외관의 젊음을 좇으면서도 사고방식과 가치관은 그렇지 않은 기성세대는 진정성 없는 모습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반면 자신의 신념을 꾸밈없이 드러내는 중년, 삶의 경험으로 다져진 진솔한 이야기를 전하는 시니어는 오히려 존경과 공감의 대상이 된다. 기업에 대한 진정성의 잣대는 훨씬 엄격하다. 친환경 경영, 다양성 존중을 강조하면서 요식 행위에 그치는 그린 워싱, 소셜 워싱이 맹비난받는 이유다. 젊은 모습과 이미지를 가꾸는 것만큼 젊음과 시대 변화를 깊이 이해하는 감수성과 통찰력을 갖춰야 한다. 영포티 논란은 브랜드가 어떻게 젊음을 정의하고 구현할 것인가에 대한 의미 있는 메시지를 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