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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중·일 갈등 장기화 가능성 대비해야

중앙일보

2025.12.10 07:28 2025.12.10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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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국 21세기안보전략연구원 동아시아센터장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9년 1월 포괄적 대만 정책을 발표한 이후 ‘대만 유사시’는 동아시아 국가들에 안보 변수로 떠올랐다. 대만 문제의 핵심은 대만 유사시 미·일 양국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대한민국은 수출입 물류의 약 40%가 대만해협을 지나므로 이 지역에서 무력 충돌이 발생하면 경제에 직접적 영향을 받는다.

일 총리 ‘대만 유사시’ 발언 이후
중, 전방위 위력 과시로 관계 급랭
한국, 동맹과 실용외교로 대비를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일본 총리는 지난 11월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대만이 중국의 무력 공격을 받으면 일본엔 ‘존립 위기 사태’라고 언급하며 일본의 개입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 발언에 격분한 쉐젠(薛劍) 주 오사카 중국 총영사가 “우리에게 달려드는 그 더러운 목을 베지 않을 수 없다”며 극단적 어휘를 SNS에 올려 파문을 일으켰다.

앞서 지난 10월 30일 경주에서 열린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기간에 시진핑 주석과 다카이치 총리가 처음 만났으나 분위기가 냉랭했다. 다카이치 총리의 존립위기 사태 언급 이후 중·일 관계는 급랭하더니 최근엔 군사적 위력 행사로 이어지고 있다. 외교 관계는 물론 경제·문화 교류에도 악영향을 주고 있다.

일본은 아베 신조 정부 시절부터 대만 유사시를 상정하고 전략을 연구하며, 안보 관련 법제를 제정하면서 전략 환경의 변화에 대응해왔다. 일본은 대만 유사시를 3단계로 상정하고 있다. 1단계는 중국이 대만을 침공했을 경우다. 이 경우 미국은 군사 개입 및 병력 전개를 결단해야 하는 시기다. 일본은 중요 사태를 인정하고, 미군은 남서 여러 섬 지역에 임시 거점을 설치한다. 자위대는 미군의 후방 지원에 나서게 된다. 2단계는 미·중 사이에 전투가 시작되는 경우다. 이 단계에서 일본은 동맹인 미국의 요청에 따라 ‘존립 위기 사태’를 인정하고 자위대는 집단적 자위권 차원에서 무력행사에 들어가게 된다. 3단계는 중국이 주일 미군 기지나 자위대 기지를 공격하는 경우다. 일본은 무력 공격 사태에 맞서 개별적 자위권을 발동하며 자위대가 중국군에 무력으로 대응하게 된다. 이 경우 미국·일본·대만이 중국에 맞서 전면 전쟁을 벌이게 된다. 다카이치 총리의 의회 발언은 2단계를 상정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런 일본의 입장은 2차 아베 정권 시기에 일본이 ‘전쟁하는 국가’로 변신한 데 따른 것이다.

중·일 양국의 최근 대립은 1972년 국교 정상화 시절부터 배태한 문제다. 중국이 주장하는 ‘하나의 중국’을 중·일이 서로 다르게 해석했기 때문이다. 중국은 대만이 중국의 일부라고 줄곧 주장해왔고, 반면 일본은 중국의 견해에 애매한 태도를 유지해왔다. 당시 일본은 중국이 대만을 통일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입장이었지만, 평화적인 해결이 전제조건이었다. 따라서 중국이 대만을 무력으로 침공한다면 중·일이 채택한 공동성명은 깨지게 된다.

최근의 중·일 갈등은 한국에 적잖은 시사점을 준다. 첫째, 이웃 나라 총리 발언을 철회하라며 제재를 가하고 위력을 과시하는 중국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느냐다. 한국은 이미 사드 사태 당시에 유사한 압력을 경험했다. 한·중 간에 유사한 갈등이 생기지 않도록 상호 존중의 실용외교를 추진해야 할 것이다.

둘째, 대만 유사시가 ‘한국 유사시’ 또는 ‘한·미 동맹 유사시’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최악의 사태를 피하려면 한·미는 유사시를 가정한 사전 협의를 통해 한·미 동맹이 실질적으로 작동하도록 해야 한다. 미국 싱크탱크가 진행한 대만 유사시 시뮬레이션을 보면 미·일 동맹의 협력 없이는 미군이 중국에 패한다는 연구가 있었다. 그만큼 주한미군의 역할이 중요하다. 다양한 시나리오를 만들어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셋째, 중·일 갈등의 장기화에 대비해 경제안보를 강화해야 한다. 한국의 기술·서비스·공급망을 강화해 취약점을 보완해야 한다. 반도체·희토류 등 전략물자를 국가안보의 무기로 이용하는 판이니 공급망 마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대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양안 통일을 천명한 중국이 국가목표 달성을 강행하고 이에 맞선 미·일 동맹의 힘이 밀려 균형이 깨지면 대만 유사시는 한반도에 곧바로 안보 위협으로 몰아닥칠 수 있다. 중·일 갈등이 던지는 중요한 질문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종국 21세기안보전략연구원 동아시아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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