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A씨는 2022년 말 코로나19에 감염됐다. 일주일여 앓은 뒤 고열·기침·몸살 등의 증상은 사라졌지만, 이후 기억력과 후각이 부쩍 떨어졌다. 그는 “대화 중에 사람이나 사물 이름이 바로 떠오르지 않아 애를 먹었다”라며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나아지기는 했지만 3년이 지난 지금도 완전히 회복되지는 않은 느낌이다”라고 말했다.
코로나19 감염 뒤 A씨처럼 집중력·기억력 저하 증상을 겪게 되는 원인을 국내 연구진이 과학적으로 규명해냈다. 마치 머릿속에 안개가 낀 것 같은 증상 탓에 ‘브레인 포그(Brain Fog)’라 불렸던 이 후유증은 전 세계 인구 1억5400만 명 이상이 겪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10일 질병관리청 국립보건연구원은 쥐에게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스파이크 단백질(S1)을 코를 통해 투여한 결과, S1 단백질이 뇌에 도달해 신경세포 간 연결 기능을 방해하는 등 인지 장애를 일으키는 기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S1 단백질은 기억 형성에 중요한 NMDA 수용체 유전자 발현을 감소시키고, 치매·파킨슨병과 관련된 독성 단백질의 축적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질병청은 2022년 8월부터 국내 만성 코로나19 증후군 양상, 원인 기전 규명과 치료제 발굴을 위한 연구를 이어오고 있다.
2020년 이후 전 세계 코로나19 누적 확진자는 7억7000만 명 이상이다. 이 가운데 약 20~30%가 피로, 집중력 저하, 기억력 저하와 같은 지속적인 신경학적 후유증을 겪고 있다. 그동안 S1 단백질이 퇴행성 변화를 유발한다는 가능성이 제기돼 왔지만, 직접적인 작용 기전은 밝혀지지 않았다.
그런데 국립보건연구원 연구팀의 동물 실험(수중 미로 실험)을 통해 S1 단백질을 투여한 쥐가 대조군보다 숨겨진 플랫폼을 찾는 데 더 많은 시간이 걸리는 등 학습·기억력이 떨어진 사실이 확인됐다. 개방 공간 행동 실험에서도 낯선 환경에서의 불안 행동이 증가해 코로나19 감염 후 나타나는 인지 저하와 유사한 양상이 관찰됐다.
또한 투여 6주 후 뇌(해마)에서 신경세포 수 감소와 함께 퇴행성 뇌 질환에서 나타나는 타우 단백질, 알파시누클레인과 같은 병리 단백질의 축적이 확인됐다. S1 단백질로 인한 장기적인 뇌 손상 가능성도 제기된 것이다.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코로나19 감염 이후 기억력 저하 등의 증상이 계속된다면 병원을 찾아 인지기능 검사 등으로 현재 상태를 확인해보는 게 좋다”라고 말했다. 연구를 주도한 국립보건연구원 고영호 박사(질병청 뇌질환연구과장)는 “고혈압·당뇨 등 치매 유발 위험 요인을 가지고 있다면, 기억력 저하 증상을 가볍게 넘겨선 안 된다”라고 설명했다.
치료 가능성도 제시됐다. 연구팀은 같은 조건에서 메트포르민을 함께 처리한 실험에서 신경세포 기능이 회복되고 독성 단백질 축적이 줄어드는 효과를 관찰했다. 메트포르민은 당뇨병 치료제로 널리 사용되고 있는데, 이 약에 의한 신경세포 보호 효과 가능성이 확인된 것이다. 고영호 박사는 “향후 임상 연구를 통해 집중력·기억력 저하 등과 같은 만성 코로나19 증후군 치료제로서 메트포르민의 가능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