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도 지하에 고속도로를 뚫는 사업이 여럿 추진되고 있다. 10일 국토교통부와 한국도로공사(이하 도공)에 따르면 ‘제2차 고속도로 건설계획(2021~2025년)’에는 경부(용인~서울)·경인(인천~서울)·수도권제1순환(구리~성남)·영동고속도로(용인~과천) 등의 지하고속도로 사업이 반영돼 있다.
이들 사업의 지하 구간은 총 80.2㎞에 달하고, 사업비는 12조원을 훌쩍 넘는다. 이 중 수도권제1순환선 퇴계원 분기점~서판교 분기점 사이에 30.5㎞의 지하도로를 뚫는 사업이 규모가 가장 크다. 사업비가 4조 6500억원이며, 지난 7월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했다.
상습 정체구간인 경부고속도로 기흥IC와 양재IC 사이의 지하에 26.3㎞의 지하고속도로를 뚫는 사업도 3조 8000억원의 사업비가 투입될 예정이다. 경인과 영동고속도로 지하도로 사업에도 각각 1조 3800억원과 2조 7500억원이 책정돼 있다.
여기에 서울시 등 지자체 차원에서 추진하는 지하도로 사업들도 있다. 양재IC에서 고양시를 잇는 양재고양지하도로 사업이 민간제안방식으로 진행되고 있고, 길이 7.5㎞의 신월여의지하도로는 지난 2021년 4월 개통해 운영 중이다.
호주와 일본에서 주민 민원 해소, 주변 재개발 등을 이유로 지하도로 사업을 벌이는 것과 달리 우리나라는 대부분 도로 용량을 늘려 차량 소통을 보다 원활하게 하기 위한 목적이다. 그래서 기존 도로 밑에 또 하나의 도로를 뚫어 ‘2층 고속도로’를 만드는 것이다.
도공의 문정원 지하고속도로추진단 부장은 “지하도로는 교통 혼잡 개선 같은 직접 효과 외에도 지상 교통량의 지하 전환, 지상부 공간 활용 등 간접 효과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규모 지하고속도로 사업이 성공하려면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 그중에서도 관건은 안전이다. 지하도로는 지상도로와 비교해 폐쇄감 등으로 인해 주행환경이 불리하고, 안전사고에도 취약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길이가 30㎞에 육박하는 장대 지하도로에서는 지상도로와는 차원이 다른 치밀한 안전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현재 국내에서 가장 긴 도로터널은 인제양양터널로 약 11㎞다.
김현 한국교통대 교통에너지융합학과 교수는 “지하고속도로는 단순히 도로를 지하로 이전하는 사업이 아니라 운전자·인프라·교통체계가 모두 새롭게 작동해야 하는 신개념 교통시스템”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특히 “운전자는 지하에선 외부 시야가 단조롭고 조명 패턴도 일정해 속도감 상실, 착시, 지각 왜곡 등이 쉽게 발생한다”며 “차량 속도·차로 유지와 위험 예측을 자동으로 지원하는 첨단 안전운전 지원체계가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이진우 연세대 교통공학과 교수도 “지하 구간에선 차량 간 속도 차이로 인한 사고에 특히 유의해야 한다”며 “가변형 구간단속을 통해 실시간 교통상황에 따라 제한속도를 달리하고, 위험물 수송차량은 지하도로 진입을 제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사시 효율적인 방재대책도 필수다. 조계춘 한국터널지하공간학회장(KAIST 교수)은 “밀폐된 장대 터널에서 화재가 발생하면 연기 제어, 피난 유도, 구조 동선 확보가 생명과 직결된다”며 “사고 발생 가능성을 체계적으로 제어하는 능동적 방재 설계가 핵심”이라고 말했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한 화재감지와 자동제연, 조명 및 빛 환경의 고도화 등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지하도로 내부는 물론 주변도로와의 원활한 연계 및 교통 관리 역시 쉽지 않은 과제다. 이동민 서울시립대 교통공학과 교수는 “지하도로와 주변 접속도로에서 혼잡이 발생하지 않도록 지하고속도로 맞춤형 교통관리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현 교수도 “진출입구에서의 교통혼잡 문제를 효과적으로 관리하지 못하면 지하도로 전체의 효율이 크게 떨어지게 된다”며 “AI 기반 램프 미터링(유입량 제어), 혼잡 예측 기반 가변속도 운영 등 지상·지하 통합연계형 교통관제가 요구된다”고 제안했다.
지하 깊숙이 들어갈수록 GPS(위성항법 시스템)가 연결되지 않아 운전자가 내비게이션을 사용할 수 없는 것도 해결해야 할 문제로 지적된다. 운전자의 내비게이션 의존도가 갈수록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추진 주체가 다른 지하도로들이 서로 연결되는 경우 거버넌스를 단일화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김창용 K-고속도로 연구단장은 “경부 지하고속도로와 양재고양지하도로처럼 추진 주체가 다른 사업들이 묶이는 지점에서는 큰 틀에서 혼선과 오류가 없도록 의사결정체계를 분명히 정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원활한 지하도로 사업을 위해선 주로 교통과 환경 개선 측면에서 사업을 평가하는 현재의 투자평가체계를 바꿔 향후 지하고속도로로 인해 생기는 다양한 사회적 편익이 반영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와 함께 통행료 현실화와 차등화 등을 통해 교통량 자체를 줄이는 ‘수요관리’ 방안도 필요하다. 증가하는 차량 수에 맞춰 도로를 무한정 늘릴 수 없기 때문이다. 호주 뉴사우스웨일즈대의 미에드 사베리 교수는 “도로별, 차량별 차등 요금제 등에 의한 교통량 조절은 강력한 수요관리 수단이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