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 전 강원도 영월 농민회 간사 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돼 1심에서 무기징역을 받았던 A씨(60)가 2심에 이어 대법원에서도 무죄를 확정받았다. 과학 수사를 바탕으로 20년 만에 기소되고 핵심 증거인 ‘피 묻은 족적’ 다툼이 벌어지면서 세간의 시선을 끌었던 사건은 다시 미제 사건으로 남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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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mm 샌들 족적…1심 인정, 2심 불인정
대법원 3부(주심 이숙연 대법관)는 11일 살인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씨에게 “A씨가 공소사실과 같이 피해자를 살해한 것으로 인정하기에 충분할 만큼의 증명이 이루어지지 못했다고 판단하여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단에,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하여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난 잘못이 없다”고 밝혔다.
영월 농민회 간사 살인 사건은 2004년 8월 9일 영월군 영월읍 농민회 사무실에서 모 영농조합법인 간사 B씨(당시 41세)가 목ㆍ배 등을 찔려 숨진 사건으로 범인을 찾지 못해 장기 미해결 강력사건으로 꼽혔다. A씨는 초기 용의선상에 있었으나, 사건 당일 영월 미사리 계곡에 있었다는 사진이 제출되면서 사건이 미궁에 빠졌었다.
그러다 수사가 다시 활기를 띤 건 10년 만인 2014년이다. 강원경찰청 미제사건 전담수사팀이 기록을 다시 검토했고, 2020년 6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부터 당시 사건 현장의 피 묻은 족적과 A씨 족적 특징점 17개가 99.9% 일치한다는 결과를 받았다. 이를 바탕으로 경찰은 사건을 송치했고 검찰은 3년 7개월 보완 수사를 진행했다.
검·경 수사 과정에서 A씨가 당시 교제 중이던 30대 중반 여성 C씨가 피해자 B씨를 “좋아한다”고 말하자 범행을 계획하고 알리바이도 만든 것으로 판단했다. 즉, 장기 미제 사건은 족적흔 분석 등 과학 수사를 바탕으로, 남녀 관계가 얽힌 치정이 범행 동기로 특정됐다. 결국 사건은 발생 20년만인 지난해 7월 재판에 넘겨졌다.
지난 2월 1심은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250mm 크기의 밤색 샌들 족적이 결정적 증거로 채택됐다. 재판부는 “A씨는 수사기관에 샌들을 제출하는 과정에서 바꿔치기를 시도하거나 돌려받은 샌들을 즉시 폐기하는 등 수상한 행동을 했다”며 “간접 증거와 정황, 범행 동기, 수법적 특성으로 볼 때 살인의 유죄 심증의 보강증거도 충분하다”고 덧붙였다.
이어 “여러 정황과 간접 증거를 통해 범행 현장에 샌들 족적을 남긴 사람이 범인으로 강하게 추정되는데, A씨가 아닌 다른 사람이 몰래 샌들을 신고 범행했을 가능성이 극히 희박하고, 우연일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며 “20년간 미제로 남은 살인 사건이 족적 등에 대한 과학적 수사와 치밀한 재판 심리를 통해 유죄가 인정된다”고 했다.
하지만 지난 9월 2심에서 무죄로 뒤집혔다. 총 5번의 족적 감정 결과 3번의 감정은 ‘일치한다’는 결과가 나왔지만, 2번은 ‘동일성을 인정할만한 개별적인 특징점이 없다’고 판단한 결과에 주목했다. 족적 감정 결과가 완벽하지 않은 이상, “지문ㆍDNA 등 다른 보강자료 없이 오로지 족적 감정 결과만으로는 범인으로 보기 부족해 보인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