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방울 대북송금 사건을 둘러싸고 제기된 ‘술 반입’ 의혹과 ‘진술 회유’ 의혹의 핵심 관계자들이 11일 모두 구속을 면했다. 서울고검 인권침해점검 태스크포스(TF)는 이들의 신병을 확보한 뒤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에 대한 본수사와 대북송금 재판 과정에서 제기된 진술 회유 의혹으로 수사를 확대할 계획이었지만, 첫 단계에서 제동이 걸리며 향후 수사에도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서울중앙지법 남세진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날 박모 쌍방울 전 이사, 방용철 전 부회장, 안부수 아태평화교류협회장 등 3명에 대한 구속영장을 모두 기각했다. 재판부는 이들의 영장 기각 사유로 “구속의 사유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점을 공통적으로 제시했다.
서울고검 TF는 지난 5일 박 전 이사와 방 전 부회장에게 업무상 횡령·배임 혐의를, 안 회장에게는 횡령 혐의 등을 적용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박 전 이사에게는 위계공무집행방해 혐의까지 추가된 상태였다. 이번 영장에서 TF가 이들 3명에 대해 범죄 사실로 적시한 주요 쟁점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안부수 회장에 대한 쌍방울그룹의 금품 제공(횡령·배임)’이고, 둘째는 ‘수원지검 조사실 소주 반입(위계공무집행방해)’ 여부다.
TF에 따르면 방 전 부회장과 박 전 이사 등은 안 회장 딸에게 오피스텔을 제공하고, 허위 급여 등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약 1억원가량의 금품을 지원했다. 이에 대해 법원은 구속 필요성은 인정하기 어렵다고 보면서도 “범죄 혐의 상당 부분 소명”(방용철) “피의자가 객관적 사실관계를 인정하고 있다”(안부수)고 판단해 금품 제공 정황 자체는 상당 부분 드러난 것으로 봤다.
TF는 쌍방울 측이 대북송금 재판 당시 핵심 증인인 안 회장을 매수하기 위해 금품을 제공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안 회장은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가 대북송금 재판에서 유죄 판단을 받는 데 결정적 영향을 미친 핵심 증언을 한 인물이다. TF는 쌍방울 관계자들이 안 회장에게 금전적 지원을 하며 진술을 바꾸도록 회유했다고 의심하지만, 이번 구속영장에는 실제 회유 과정이나 허위 진술의 구체적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
김성태 전 회장은 지난 9일 “증인 매수가 아닌 인간적 도리 차원의 지원”이라며 회유 의혹 전반을 부인했다. 신병확보에 실패한 가운데 이 부분 수사도 전진이 쉽지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특수수사 경험이 많은 변호사는 “신병 확보 이후 금품 제공이 진술 회유로 이어졌는지 확인하는 추가 수사가 필요했는데, 이 고리가 끊긴 상황이 돼 수사팀 입장에선 난감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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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어 술파티 의혹도 제동
‘연어 술파티’ 의혹 수사 역시 동력이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해당 의혹은 2023년 5월 17일 이화영 전 부지사가 김 전 회장, 방 전 부회장 등과 함께 조사실에서 외부 음식과 술을 마시며 회유를 받아 허위 진술을 했다는 내용이다.
TF는 최근 박 전 이사가 2023년 5월 17일 수원지검 인근 편의점에서 소주 4병과 생수 3병을 구매한 정황을 확보했다. 또 소주를 생수통에 옮겨 담아 조사실로 반입된 것으로 보고 위계공무집행방해 혐의를 적용했다. 그러나 박 전 이사 등은 “술 구매와 반입은 전혀 다른 문제이며, 검찰청 반입은 없었다”며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법원은 이날 박 전 이사의 영장을 기각하고 “현 단계에서 범죄 혐의 및 구속 사유에 대한 소명이 충분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수사 경험이 많은 부장검사는 “술을 샀다는 사실만으로 위계공무집행방해를 적용하기 어렵다”며 “수사팀에서 최소한 술이 반입됐다는 추가 정황을 제출했을 텐데, 이 정황만으로는 ‘구속 필요성’을 설득하지 못했다고 본 듯하다”고 설명했다.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도 “설령 술이 조사실에 들어갔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곧바로 허위 진술을 만들었다고 단정하긴 어렵다”며 “수사 단초가 돼야 할 ‘반입 사실’부터 다시 규명해야 하는 상황이라 수사 난도가 상당히 높아졌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