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12월 첫 임시국회 본회의가 열린 11일, 3박4일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 대결에 돌입했다.
이날 국회 본회의에서는 정기국회 마지막 날인 지난 9일 상정된 가맹사업법 개정안(가맹사업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재석 241명 찬성 238명 기권 3명으로 통과됐다. 법안은 프랜차이즈 가맹 본부를 대상으로 한 가맹점주 단체의 교섭력을 강화하는 내용이 골자다. 전광판에 국민의힘 의원 대부분도 찬성표를 던졌음이 표시되자 민주당 의석에선 “찬성할 것을 두고 필리버스터를 했느냐”는 고성이 터져 나왔다. 지난 9일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이 법안에 대한 필리버스터에 나선 것을 겨냥한 것이다.
이어 전날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민주당 주도로 처리된 하급심 판결문 공개법(형사소송법 개정안)이 상정됐다. 법안은 현행법이 대법원에서 확정된 판결에만 허용하는 판결문 열람·복사를 확정되지 않은 형사 사건까지 확대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국민의힘이 이 법안에도 필리버스터를 신청한 만큼 민주당은 24시간 뒤인 12일 국회법에 따라 이를 강제 종료시키고 법안을 처리할 것을 예고했다.
민주당은 국민의힘이 필리버스터를 예고한 ▶대출 금리에 법적 비용을 넣지 못하도록 하는 은행법 개정안 ▶경찰이 대북 전단 살포를 막을 수 있도록 하는 경찰법 개정안도 하루에 하나씩 이같은 방법으로 상정·처리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들 법안은 국민의힘이 규정한 ‘민주당 발 8대 악법’이 아니지만 국민의힘은 “‘8대 악법’을 막기 위해 모두 필리버스터로 대응하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식 ‘사법개혁법안’과 필리버스터 중지법 등을 ‘8대 악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지난 9일 민주당 출신 우원식 국회의장이 나경원 의원 필리버스터를 “의제에서 벗어난다”며 마이크를 끄고 강제 중단 시켜 촉발된 여야 충돌의 여파는 이날도 이어졌다. 우 의장은 곽규택 국민의힘 의원이 이날 상정된 형사소송법 개정안에 대한 필리버스터에 첫 주자로 나서자 이틀 전 소동을 먼저 언급했다. “나 의원이 가맹사업법에는 찬성하지만 8대 악법 철회를 요구하기 위해 필리버스터를 시작한다고 했는데, 이를 그대로 두고 보는 건 의장에게 국회법 위반행위를 눈감으라고 요구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신경전은 단상에 오른 곽 의원이 ‘61년 만에 국회의장이 필리버스터 방해한 곳’이라고 적힌 스케치북을 마이크 앞에 내걸며 본격화됐다. 민주당 석에서 고성이 터져 나오자 우 의장은 “피켓을 내리는 것도 국회법을 지키는 것”이라며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말라”고 쏘아붙였지만, 토론을 중단시키지는 않았다.
하지만 곽 의원이 토론 중 상정된 법안이 아닌 내란전담재판부법 관련 비판을 꺼내 들자 우 의장은 곧 “안건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또 국회법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곽 의원은 이에 “그러죠. 뭐”라고 답한 뒤 스케치북을 한장 넘겨 ‘국회의장님, 또 마이크 끄시게요?’라는 문구를 내건 채 토론을 이어갔다. 이 과정에서 곽 의원은 “영화 ‘러브 액추얼리’에 나오는 장면을 본떴다”고도 했다. 곽 의원은 필리버스터를 약 세 시간 이어갔고, 이후 김남희 민주당 의원이 찬성 토론 주자로 나섰다.
최은석 국민의힘 원내수석대변인은 이날 오후 국회 의안과에 ‘우 의장 사퇴 촉구 결의안’을 제출한 뒤 “국회의장으로서 자격이 전혀 없다”며 “민주당과 야합해 국회 본회의장을 본인의 당권·대권이라는 정치적 욕심을 위한 무대로 악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민주당은 나 의원 등을 국회 윤리위원회에 제소하겠다고 맞불을 놨다.
민주당은 14일까지 은행법·경찰법 개정안을 순차 처리한 뒤, 21일 다시 본회의를 열어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법과 사법개혁 법안 일부 처리까지 하겠다고 벼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