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한국형 국부펀드를 설립해 인공지능(AI) 대전환 등을 위한 장기 투자를 해나가겠다고 11일 밝혔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이재명 대통령이 주재한 업무보고에 참석해 “내년 상반기 중 한국형 국부펀드 설립을 추진해 국부를 체계적으로 축적하고 증식해 미래 세대로 이전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세계적 국부 펀드인 싱가포르의 ‘테마섹’, 호주의 ‘퓨처 펀드’ 등을 벤치마킹하겠다고 했다.
현재 한국에서 법적으로 유일한 국부펀드는 한국투자공사(KIC)다. 기재부와 한국은행으로부터 외환보유액 등 외화 자산 일부를 위탁받아 운용하기 때문에 고위험·고수익 투자가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구 부총리는 운용 규모와 방식에 대해 “초기엔 물납 주식 등 작은 재원으로 시작해서 수익률을 높여 규모를 키워보자는 것”이라며 “KIC와 달리 정부가 국내든 해외든 자유롭게 투자할 수 있고, 민간 전문가들이 의사 결정에 참여할 수도 있는 상업적 베이스로 운영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국부펀드가 이 대통령의 ‘K엔비디아’ 구상을 뒷받침하는 수단이 될 거란 기대도 나온다. 이 대통령은 “엔비디아 같은 거대 첨단 미래 기업을 하나 만들어서 (지분을) 70%는 민간이 가지고, 30%는 국민 모두가 나누면 세금에 의존하지 않아도 될 것”이란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다만 전문가들은 이날 출범한 150조원 규모의 국민성장펀드 등 다양한 정책 펀드와 이해 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해 성과를 내지 못하는 정책펀드가 여전히 많은데, 정부 주도 펀드가 국민 경제에 더 도움이 될 거란 확신은 부족하다”며 “글로벌 반도체 수요 등 시장 상황이 급변하는데 공공부문이 이를 쫓아가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기재부는 1300조원 규모의 국유재산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한 구상도 내놨다. 우선 양질의 국유재산은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효용성이 낮은 재산은 처분하되 할인 매각은 원칙적으로 금지할 계획이다. 특히 300억원 넘는 국유재산을 매각할 땐 국회 상임위원회 사전보고를 거치도록 했다. 부처별로도 매각 전문 심사기구를 신설하는 등 관리체계도 개편한다. 구 부총리는 “국유재산이 1300조원이 넘는데 1%만 수익이 나도 1조3000억원”이라며 “적극 관리해 가치를 극대화하고 미래세대에 부를 이전하겠다”고 했다.
대규모 수출·수주를 지원하는 전략수출금융기금도 신설한다. 개별 기업 차원에서 추진하기 어려운 원전·방산·에너지 등 대규모 해외 수주사업을 정책적으로 지원하고, 수익이 나면 국가 재원으로 활용한다는 구상이다.
반도체 등 첨단산업 투자 활성화를 위해 지주회사 규제도 손질한다. 지주회사의 손자회사가 국내 증손회사의 지분을 100% 보유해야 하는 현행 규정을 ‘50% 이상’만 확보하면 되도록 완화한다. 기업의 자금 조달과 투자 유치가 용이해지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규제가 완화되면 SK하이닉스 등의 경우 손자회사가 새로운 증손회사를 설립할 때 필요한 최소 자본금이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특수목적법인(SPC)을 활용한 투자 유치나 시설 임차 등도 용이해진다. 이를 위해 ‘국가첨단전략산업법’에 반도체 업종에 관한 특례 규정을 마련한다.
정부는 지주회사 규제 완화가 공정거래법에서 정한 금산분리(산업자본의 금융자본 지배 금지) 원칙을 훼손하는 건 아니라는 입장이다. 구 부총리는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부분에는 자금 조달을 할 수 있도록 금융적인 측면에서 좀 규제를 완화해 주겠다는 측면”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