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필수재’였던 쿠팡이 전 국민의 스트레스가 됐다. 3370만 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됐는데 그 정보가 어디서 어떻게 범죄에 활용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서글픈 건 쿠팡과 거래하는 많은 소상공인이 고객 항의와 이탈을 겪으면서도 쿠팡에서 ‘방을 뺄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런 일이 터지면 맨 먼저, 가장 크게 고통받는 건 약자들이다. 현대 자본주의의 약점이다.
쿠팡의 힘은 독점이다. 쿠팡은 약 2000만 명이 이용하는 새벽 배송 시장을 사실상 장악했다. 컬리 등 몇몇 업체가 있지만 상대가 되지 않는다.
쿠팡 사태는 독점의 폐해 드러내
민주당, 사법 장악 위한 입법 추진
정치의 독점, 결국 민주주의 위협
그런데 독점이 산업에서만 일어날까. 독점이 정치에서 극단적으로 나타난 형태가 독재다. 국회 의석 과반수를 차지한 정당이 입법권력을 독점하기도 한다. 지금 더불어민주당이 보여주는 모습이다. 대법원과 일선 법관들, 변호사협회, 법학자들이 한목소리로 사법부 독립과 삼권분립을 무너뜨린다고 지적하는 내란전담재판부와 법 왜곡죄 등을 민주당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일 수 있는 것도 입법권력을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정한 법관에게 특정한 재판을 맡기고(내란전담재판부), 판결과 수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판검사를 처벌하게 하는(법 왜곡죄) 민주당의 사법 개편안이 헌법이 보장한 ‘법 앞의 평등’과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심대하게 침해한다는 데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산업에서의 독점은 독점 기업의 배를 불리는 대신 소비자 후생을 갉아먹고 시장경제의 효율성을 망친다. 정치를 어떤 한 진영이 독점하면 대립과 반목의 극대화와 민주주의 파괴로 치닫는 길이 열린다. 그런 위기를 막는 안전장치였던 절제와 배려, 대화와 타협은 사라졌다.
쿠팡의 독점엔 선제적인 조 단위의 투자가 주효했다. 하지만 그런 투자가 결실을 맺기까지는 나쁜 정치가 큰 역할을 했다. 2010년대 초반 정치권이 골목상권과 재래시장을 살리겠다며 만든 유통산업발전법이 대형마트의 휴일·심야 및 새벽 영업을 규제했기 때문이다. 토종 대형마트들은 세계 최대 유통업체인 월마트도 물리쳤던 저력이 있지만, 규제에 날개가 꺾였다. 거기에다 코로나 사태로 폭발한 온라인 배송 수요는 쿠팡이라는 독점기업 탄생의 토대가 됐다.
민주당의 독점은 유권자 선택의 결과였다. 2024년 4·10 총선에서 민심과 담을 쌓은 윤석열 정권을 견제하려는 민심이 분출했고, 그에 힘입어 민주당은 170석이 넘는 압도적 의석을 차지했다.
문제는 ‘독점 그 이후’를 예상하지 못했다는 데 있다. 쿠팡은 국민의 개인정보를 안전하게 보호하지 않았고, 정보 유출 후 국민을 안심시키지도 못했다. 진정성 있는 사과와 대책도 없다. 그런데도 소비자들은 쉽사리 쿠팡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민주노총이 느닷없이 택배기사의 건강권 보호를 앞세워 새벽 배송 제한 주장을 들고 나왔을 때 소비자들이 더 반발했을 정도다. 이미 ‘쿠팡 없는 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일상이 쿠팡에 포획됐기 때문이다.
총선 압승으로 의회 권력을 독차지한 민주당의 행보도 유권자들을 기막히게 한다. 그들의 사법부 겁박과 위헌성 가득한 사법 개편은 좀 더 나은 민주주의를 갈망했던 국민의 기대를 저버렸다. 정치권력이 삼권분립을 파괴하고 사법부를 장악하는 것은 후진국 독재정권에서나 봐왔던 일 아닌가. 쿠팡은 소비자를 배신했고, 민주당은 유권자를 배반했다.
독점의 폐해가 이토록 무섭다. 자유방임을 신봉했던 19세기 후반 미국에서 세계 최초로 독점규제법(셔먼법)이 제정되고, 기업(AT&T 등)을 강제로 쪼개는 일까지 벌어진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독점의 폐해 시정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그나마 경제에선 공정거래 당국이라도 있다지만, 정치에선 다수 집권당의 입법 폭주를 막을 장치가 없다. 정치에서 ‘견제와 균형’이 깨지고 독점이 기승을 부릴 때 민주주의는 어떻게 지켜야 하나. 지금 한국의 민주주의는 위기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