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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20번 넘게 만나면 뭐하나…노란봉투법·상법 요지부동

중앙일보

2025.12.11 12:00 2025.12.11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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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칠승 더불어민주당 코스피5000특별위원회 및 경제형벌민사책임 합리화 태스크포스(TF) 단장과 박일준 대한상의 상근부회장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11일 오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더불어민주당 코스피5000특위 및 경제형벌민사책임 합리화 TF-경제 8단체 간담회를 하고 있다. 뉴시스
‘실용적 시장주의’를 표방한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반년 사이 재계와 대통령·여당 사이에 공식 회동이 20차례 이상 이뤄진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1·2차 상법개정안부터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까지 기업들이 우려를 나타낸 법안들이 줄줄이 통과되면서 재계 내부에선 불만의 목소리가 쌓여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코스피5000특별위원회와 경제형벌민사책임합리화 태스크포스(TF)는 11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경제8단체 부회장단과 정책 간담회를 가졌다. 여당이 추진하는 자사주 소각 의무화 등 상법 개정과 배임죄 폐지가 주요 의제였다. 이들이 만난 건 지난 9월 9일 이후 두 번째다.

여당은 기업이 새롭게 취득한 자사주는 1년 이내에,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자사주는 1년 6개월 이내에 의무적으로 소각하도록 하는 3차 상법 개정안을 연내 처리할 방침이다. 자사주가 대주주의 지배력 강화 수단으로 쓰이지 못하게 해 주주 가치를 제고하겠다는 취지다. 반면 재계에선 자사주 소각을 강제하면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무방비하게 노출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이날 비공개로 진행된 간담회에서도 경제단체 부회장단은 추진 속도를 조절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오기형 코스피5000특위 위원장은 간담회를 마치고 기자들과 만나 “(재계에서) 처분 기간을 연장하거나 처분 절차를 유연하게 해달라는 등의 의견도 있어 적정한지 여부를 체크하겠다”면서도 다시 한번 자사주 소각 의무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여당은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추진하면서 반대급부로 재계가 요청한 배임죄 폐지 등 보완 입법을 제안했다. 하지만 정작 코스피5000특위 간사를 맡은 김남근 민주당 의원은 “여러 점검할 이슈가 많이 있어 자사주 소각 의무화와 배임죄 폐지를 묶어서 처리하는 데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다”며 보완 입법은 뒤로 밀릴 가능성을 시사했다.

최근 재계와 여당 간 회동은 이례적으로 많았다. 지난 6월 4일 이재명 정부가 출범한 이후 최소 11차례로 확인된다. 6월 25일 김병기 민주당 원내대표와 경제6단체 부회장단 간 간담회를 시작으로 코스피5000특위와의 상법 개정 간담회(6월 30일), 환경노동위원회 여당 위원들과의 노동 정책 간담회(7월 14일), 정청래 당대표와 소상공인연합회 등 경제단체들과의 릴레이 간담회(9월 3·4·8일), 김 원내대표와 경제6단체장 간 간담회(9월 3일) 등이 있다. 대부분 여당이 추진하는 법안에 대한 재계 우려를 전달하는 자리였다. 제임스 김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 회장도 지난 8월과 11월 두 차례 국회를 찾아 김 원내대표와 정 대표를 각각 만났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6월 1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청사에서 열린 6경제단체와 기업인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구광모 LG그룹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이 대통령,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왼쪽부터).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여기에 이재명 대통령과 재계 총수들 간 크고 작은 회동도 10차례 이상 있었다. 지난 6월 13일 5대 그룹 총수와 경제6단체장과 상견례를 가진 이 대통령은 지난 7월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겸 대한상의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등 주요 그룹 총수들과 각각 일대일로 만찬 자리를 가졌다. 재계 총수들도 한미 관세협상을 측면에서 지원하며 적극 협조했다. 지난달 16일 대통령실에서 열린 관세협상 후속 민관 합동회의에선 국내 투자·고용을 확대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대통령과 여당이 재계와의 소통을 확대하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정작 기업에 부담을 지우는 법안은 거침없이 통과되면서 ‘보여주기’에 그치는 것 아니냐는 불만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이사의 주주 충실 의무, 집중투표제 의무화 등을 도입한 1·2차 상법 개정안과 원청에 대한 하청 노조의 교섭 요구를 허용한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 등이 대표적이다. 3차 상법 개정안과 정년연장 법안 역시 이른 시일 내에 통과될 가능성이 크다.

익명을 원한 재계 관계자는 “겉으로는 ‘친시장’을 외치며 간담회 하자고 매번 부르지만, 정작 문제점을 얘기해도 ‘알겠다‘고만 말하고 끝난다”며 “재계를 들러리로 세우기만 하는 것 아니냐”고 토로했다.



나상현.김수민([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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